호프 자런 <<랩걸>>
육지에는 바다보다 600배나 되는 생명체가 살고 있다. 사실 그 격차는 주로 식물로 인해 생겨난다. 바다의 평균적인 식물은 약 20일 정도 사는 단세포 생물이다. 육지의 평균적인 식물은 100년 넘게 사는 2톤짜리 나무다. 9쪽
과학자들도 나무들이 사람이 아니고, 감정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사람에 대한 감정이 없다는 말이다. 우리를 향해서는. 241쪽.
수십 년 동안 식물을 연구한 후 나는 결국 그들은 우리가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 그리고 결국 이전보다 더 깊이 그 사실을 이해하고 끝날 운명을 타고났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깊은 의미에서 식물과 우리가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우리 자신을 식물에게 투영하는 것을 그만둘 수 있다. 그렇게 해야 마침내 우리는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인식하기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399쪽
언젠가 과학분야 교수를 만나면 연구 결과가 잘못될까 걱정이 되느냐고 물어보라. 연구가 불가능한 문제를 선택했거나 연구 과정에서 중요한 증거를 간과했을까 걱정이 되는지 물어보라. 지금도 여전히 찾고 있는 해답이 가지 않은 여러 길에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지 물어보라. 과학분야의 교수에게 무엇이 가장 걱정인지 물어보라. 길게 걸리지도 않을 것이다. 그녀는 당신을 빤히 바라보면서 한 마디로 답할 것이다. "돈이요." 179쪽.
전 세계 공공기관 및 사립기구들에서는 과학계 성차별의 역학에 대해 연구하고 그것이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결론지었다. 내 제한된 경험에 따르면 성차별은 굉장히 단순하다. 지금 네가 절대 진짜 너일 리가 없다는 말을 끊임없이 듣고, 그 경험이 축적되어 나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되는 것이 바로 성차별이다. 262쪽.
내가 이런 부류의 동료 과학자들과는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배운 지는 오래다. 그들은 나도 그들과 동등한 학자로서 이 현장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연구 자금을 댄 기관에서 나를 인정했다는 사실은 별 상관이 없다. 그들의 눈에 나는... 20킬로그램 정도의 짐도 들지 못하는 지저분한 작은 여자아이에 불과했다. 281쪽
결혼한 사람들 사이에서 서른이 넘은 싱글여성은 커다랗고 순한 집 없는 개에게 향하는 것과 같은 동정심의 대상이 되곤 한다. 부스스해 보이는 외모와 자급자족적인 성향 때문에 주인이 없다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지만... 피부병 같은 것에 걸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는 집 앞 포치에서 밥이라도 먹게 해 줄까 고려해 보지만 얼른 그 생각을 접는다. 달리 갈 곳이 없어서 너무 귀찮게 치댈까 봐 걱정이 되어서다. 291쪽.
나를 사랑한다는 궁극적인 증거가 영웅적인 행동이 아니라 미소를 짓게 해주는 쉽고도 쓸데없는 행동들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는 깜짝 놀랐다. 누구에겐가 줘야 할 나의 사랑이 작은 상자에 너무 오랫동안, 너무 단단히 들어가 있어서 상자의 뚜껑을 열자 한꺼번에 쏟아졌다. 그리고 그 상자 안에는 더욱더 많은 사랑이 들어 있었다. 293쪽.
내가 자주 그렇듯이 어떤 문제 하나를 해결하지 못한 이유가 그것이 해결 불가능해서가 아니라 해결책이 관습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이 아이의 어머니가 되지 않기로 결심한다. 대신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그것은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알고 있는 일이고, 내가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326쪽.
하고자 하는 말의 심장부를 깨끗하게 관통하는 정확한 단어를 찾아내는 것보다 내가 더 좋아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396쪽.
과학계를 이루는 작지만 살아있는 부품으로써 나는 어둠 속에서 홀로 앉아 수없는 밤들을 지새웠다. 내 금속 촛불을 태우면서, 그리고 아린 가슴으로 낯선 세상을 지켜보면서 말이다. 오랜 세월을 탐색하며 빚어진 소중한 비밀을 가슴에 품은 사람은 누구나 그렇듯 나도 누구에겐가 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 염원을 품고 있었다. 39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