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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냥 Oct 06. 2023

이스탄불 첫 날 하루동안 생긴 일

멜하바(안녕하세요)~떼시큘레에데림(감사합니다)

이스탄불 첫날 아침.


시차는 6시간밖에 안 되지만 피곤으로 아무 의욕이 없는데..힝.. 배 고프다. 숙소엔 물과 짠 올리브, 맥주밖에 없으니 어떻게든 밖으로 나가야 한다. 이구 배고픔으로 겨우 움직이는 몸. 미워도 어쩔 수 없이 구글 지도를 보니 근처에 터키식 가정식 백반 격인 집이 있다.


잉글리제 다하 꼴라이(영어가 더 편해요)를 외우고 갔지만 잉글리제 따위가 뭔 소용. 젊은 부부와 그의 부모가 함께 운영하는 식당. 번역기를 돌리니 시간은 좀 걸리지만 나름 재밌는 대화가 이어진다. 여섯 개 음식이 큰 그릇이 담겨있는 곳에서 렌틸콩 수프와 닭가슴살 볶음, 고기완자 같은 걸 골랐다. 과하지 않은 양념에 따뜻하고 부드러운 음식. 빵까지 나오니 배 터지게 먹었다. 으홍홍홍홍 기분 좋아. 배부름으로 정서적 안정을 도모했으니 다음 배고픔까지는 안도한다. 갑상선 기능이상 때문에 허기 지면 어지러워서 배고파지는 게 불안하다.


이슬람 국가를 여행하며 맛본 렌틸콩 수프는 늘 훌륭했는데 여기는 더 훌륭하구나. 그리고 나온 터키시 커피. 산미 하나 없이 구수하고 진한 커피가 참으로 만족스럽다. 커피 어떻게 만들었냐 물으니 커피 브랜드와 사는 곳을 알려준다. 커피 값도 안 받고.

첫번째 눈맞춤한 고양이.

첫번째 터키시 커피. 할머니가 생각났던 커피잔.

밥집 주인장이 추천해줘서 구입한 커피.


네가 해준 밥이 내가 튀르키에(터키 국명이 바뀌었다는데 난 터키가 더 맘에 듦) 와서 먹은 첫 번째 밥이었는데 넘 맛있어서 행복했어. 고마워. 번역기가 돌려준 이 말이 함박웃음으로 돌아온다. 고마운 사람들. 아우 기분 좋아~.    


터키엔 고마운 사람들이 넘친다. 하도 여러 번 말하고 다니니 전혀 입에 붙지 않을 거 같던 외계어 테시큘레에데림이 외워졌다. 무표정한 데다 얼굴이 털로 과하게 덮인, 무섭게 생긴 아저씨도 멜하바~ 한마디에 표정이 환해진다. 얼굴에 막 망울을 터트린 예쁜 꽃이 피는 것 같이. 너무 신기해서 무섭게 생긴 아저씨들에게 일부러 인사 열심히 하고 다녔는데, 멜하바~는 마법의 주문 같았다. 지도를 들고 다닐 필요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은 내가 성실하고 차분하게 길을 알려주고 보여주고 심지어 데려다준다. 그들 덕분에 궁금한 거 하나씩 해결해 가면서 내가 가고 싶은 길로 조금씩 움직여갔다. 그렇게 교통카드도 사고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너고 필사본 도서관도 가고 이름도 모르는 맛있는 요구르트도 사 먹고 심카드도 샀다.


필사본 도서관은 그 유명하다는 아야소피아, 블루모스크, 갈라타탑, 돌마바흐체궁, 톱카프궁, 예레바탄 사라이 같은 곳을 다 제끼고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인데 넘 작고 내용물이 없어 왕 실망. 예기치 않은 신박한 기쁨은 다른 곳에서 왔다.

필사박물관의 필사한 책은 아름다웠지만 아무 설명도 없이 책 몇 권만 유리장 안에 갇혀 있어 둘러보기만 하고 나와야 했다.


심카드 사기를 더 늦추면 안 될 거 같아 몇 군데 가격 비교하다가 들어간 작은 통신업 가게 주인장과의 대화. 어디서 왔니? 남한? 북한? 까지 거친 후 질문이 이어지는데, 남한에서 왔다는 나에게 북한에 대해 더 많이 묻는다. 북한 사람들은 여행을 못 하니? 북한 사람은 잘 본 적이 없어,라고 하길래 흥미 돋기 시작. 남북한 관계에 대해 제대로 된 질문을 들어본 적조차 없었고, 김정은만 우스꽝스러움으로 비웃는 경우 정도만 본 나로서는 우선 의례적으로 대답 시작. 외교적, 정치적 이유로 북한 사람들은 여행이 자유롭지 않은데 아마 특별한 사람들은 여행할 수도 있을 거라 말한 후, 넌 북한에 관심이 많구나, 했더니 '응, 왜냐면 난 꼬뮤니스트니까'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크하하하하. 너 꼬뮤니스트? 나도 그래, 우린 꼼래드야!


국경을 초월해 만난 지 10분도 안 되어 동지적 관계를 형성한 우리는 터키 대통령 욕 좀 하고 체리주스도 함께 마시고 꼬뮤니스트들끼리 연대도 다질 겸 사진 촬영도 했다. 크하하하하하. 그 동지는 내게 처음에 심카드를 바가지 씌우려 했다가 오히려 가격을 내려줬다. 20기가에 700리라를 주고 동지에게 터키 돈으로 심카드를 샀다. 알고 보니 그것도 싼 건 아니었지만. 대화하다 보니 이 친구 더 잼나는 게 무슬림이고 알라를 믿는단다. 무슬림 꼬뮤니스트...하. 말이 되는 건지 암튼 자기는 꼬뮤니스트라니. 남한 아이돌그룹이나 케이팝보다 북한에 더 관심 많은 희한한 사람.



남한이 꼬뮤니스트 국가인지도 묻는다. 한국 종교 얘기하다가 나온 불교에 대해선, 부처님이 사람인지 신인지도 묻는다. 아우 재밌어! 이런 질문에 대답하는 일은 뇌주름에 전기자극이 상쾌하게 강화되는 기분이어서 신나게 떠들다 영업방해될 거 같을 때쯤 거기를 떠났다. 우연히 들른 구멍가게 같은 통신업체를 통해 터키에서 공산주의자가 판매하는 심카드를 가지고 다니는 몸이 되었다.


길을 걸으며 인터내셔널가도 흥얼거리다 하맘집 발견. 1인 60유로. 한 시간 반. 싸지 않은 가격. 유바바 닮은 몸집 좋은 언니에게 돈을 내고 났더니, 네팔에서 왔다는 언니가 안내해 주고 우간다에서 왔다는 언니가 목욕을 시켜줬다. 얼마나 멀티컬처럴한 지. 우간다 언니는 내 몸의 아직 검붉은 수술자국을 보고 위로해 주며 정성껏 씻기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거품을 끼얹고 아이처럼 만져줬다. 오랜 역사가 있다는 하맘집. 20,30명은 충분히 목욕할 만한 큰 공간을 혼자 차지하고 온돌대리석에 누워있었다. 이후 때밀기-거품목욕- 마사지 코스. 국민 대다수가 무슬림이라는 국가에서 코뮤니스트 만나는 일만큼 재미있는 경험.

대리석 온돌 침대와 천정. 그리고 수도 꼭지.


오는 길에 보스포루스 해협을 다시 건너기 전 이집션 바자에 들렸는데 우연히 낮에 터키식 가정식 백반집 아저씨가 알려준 커피 판매점 발견! 125g을 45리라에 샀다. 미친 듯이 꼬소한 커피 향. 얼마나 맛있을지. 집에 가는 길에 장을 보고 동네에서 빵 좀 굽는다는 집에 가서 에크멕과 카이막도 샀다. 단골 밥집, 빵집도 확보.  

단골 야채가게. 지금 철인지 복숭아가 정말 맛있다. 손바닥에 올려놓은 카이막. 시원하게 몽글몽글. 냉동해도 녹으면 금방 제맛으로 돌아온다. 이건 직접 만드신 듯 덩어리를 조금씩 덜어 파셨는데 그냥 마트에서 산 것도 맛있다. 물소의 우유로 만든 것이 제일 맛있다 한다.

 


이 모든 일이 터키 온 지 24시간도 안 된, 하루 만에 벌어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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