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가 들려주는 전시 이야기 - 프롤로그
어릴 적부터 그랬다. 결정은 빠른데 시작은 다소 느린 사람.
무언가를 결심한 뒤, 머릿 속에 펼쳐지는 계획을 종이에 하염없이 담았던. 두 눈으로 직접 보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성격에 뭘 해도 발로 뛰는 리서치 만큼은 둘째 가라면 서러웠던 나.
그 성격과 내가 하는 일은 꼭 닮았었다. 뭔가에 발을 담근다면 제대로 푹 넣을 각오를 하고 남들이 100을 한다면 120, 아니 200만큼 더 찾아봐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기 때문에. 성실함과 발빠름이라는 두 무기를 발판삼아 최대한 계획을 세우고 빈틈없이 준비하는 특성은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할 때 뿐만 아니라, 놀 때도 어김없이 발휘되었다.
이 성격을 바탕으로 약간은 과도한 계획과 무모한 지름으로 완성했던 다소 뜬금없는 내 삶 속의 다양한 전시 여행 이야기를 오늘부터 찬찬히 이 곳에 담아보려 한다. 가장 선명한 이야기부터 아주 차근하게, 국내외를 가리지 않은 탐방기를. 그 계획 만큼이나 재밌는 기록으로 남길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