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초년생 시절, 전 택배 터미널에서 근무했습니다. 아, 대전에 있는 허브터미널 그런 곳은 아닙니다. 서울 도처에 있는 서브 터미널 중에 하나에서 근무하고 그런 터미널 여러 개를 지점장님과 돌아다니며 일을 했었죠.
직장인이 되고 제일 기뻤던 순간이 ‘컨테이너 사무실’에 중고 책상과 피씨가 생겼을 때였습니다. 지금은 피씨를 늦게 준다고 떼를 쓰는 못난이 직장인이 되었지만 말입니다. 그땐 그게 정말 기뻤습니다. 제 자리가 할당 된다는 것 만으로도 기분 좋기에 충분했습니다.
택배 서브 터미널에 근무하면서 여러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대부분 배송지연 문제인데 해당 지역 담당 영업소도 나몰라라, 같은 소속의 택배 기사들도 나몰라라, 영업소장도 나몰라라… 결국 배송 지연된 물품의 배송은 퀵으로 보내거나, 그래도 안되면 제가 직접 들고 나가서 배송했어야 했습니다. 새로산 제 승용차로 말이지요.
썩은 오징어도 배송해보고, 40키로가 넘는 쌀도 몇 가마씩 ‘제 승용차’로 배송하고 했습니다. 때로는물량이 넘치면 택배 기사분들이 터미널에 물건을 미처 배송하지 못하고 놓아 둔 채, 퇴근합니다. 그 물건을 지키는 것도 제 일입니다. 제 승용차를 물건 옆에 대고차 안에서 잠을 잡니다.
하루에 전화를 200통씩 받아가며 택배 고객센터 직원들에게 고맙다는인사를 듣습니다. 다른 택배 기사들은 연락이 되지 않는데 저라도 연락이 되서 감사하다고 합니다. 고객님들께 욕을 먹는 건 콜센터 분들인데 말이지요.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이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 그때 당시의 일들이 기억에 너무 남습니다. 다시는 배송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일을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배송에 나섭니다. 택배 회사에서 이직한 회사에서는 냉장고 만한 전자 기기를 납품하기도 했고 신선물류 회사에서는 물건을 백화점에서 구매해서 가져다 드리며 죄송하다고 몇번이나 말하고 다녔습니다. 그래도 예전 택배 회사만큼 힘들진 않습니다.
시간은 흘러 다시 또 직장을 구할 때 입니다. 이번에는 어떤 일을 하게 될지 궁금합니다. 부디 예전보다 더 나은 일이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