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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서율 Feb 12. 2024

나는 어떤 사람인가

파흔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어

내 삶에 필요한 건 늘 위기감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전형적으로 루틴을 사랑하는 황소자리 A형 여자인 나는, 얼마나 고집이 셌는지 그냥 시류에 휩쓸려서 살았어도 될 것을 늘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그것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하기도 했지만, 불필요하게 세상과 충돌하게 만들기도 했었다. 변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은 칭찬이 아니었다. 누가 봐도 좋은 자신만의 미덕은 가지고 살아도 되지만 시대와 함께 변하지 않는 이는 꼰대에 다름 아니다. 처세는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른 채 대학교에 입학한 순간, 무한의 자유와 함께 무방비 상태로 세상에 내던져진달까.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렸던 우리 세대의 모두가 그랬으니까.


철이 들면서 - 아니, 철들지 않았을 때도- 내가 찾아 헤매던 건 딱 하나였다. 남들이 보기엔 아무 문제없는 집안에서 좋은 교육받고, 사랑받고 자란 아이가 '왜 그렇게' 얼굴에 그늘이 있었는지? 왜 그렇게 애정결핍처럼 사랑을 구걸하면서 살았는지... 행복해 보이지만 행복하지 않은 마음 하나 숨기려고 부단히 달렸지만, 살아보면 알듯이 내 마음자리 하나 편한 게 제일 인 것을 마흔 언저리에야 뼈저리게 깨달았으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적어보라는 이번 달 문인협회 주제를 듣고,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어서, 내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화두에 대해 써보는 것이다. 내가 타인에게 사랑받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었다. 인생 최초로 가졌던 꿈이 방랑시인이었던 아이는 현자가 아닌 자신이 늘 부끄러웠다. 보살이 될 만큼의 양보심이 없는 내가, 싫어하는 감정을 가지고 드러내는 내가 늘 별로였다. 거기에서 도피하려고 음악에도 심취했었고, 여행도 많이 다녔고, 불교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는 20대를 보내기도 했다. 그냥 또래처럼 사람들과 어울리며 어딘가 부서지고 또 치유되는 연애를 했으면 좋았을 것을. 누가 내게 준 것인지 모르는 자기 검열 속에서 스스로를 옭아매며 지냈었다. 그래서인지, '행복'이라는 추상 명사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했고, 그 결과로써 막연한 우울감에 시달리며 사회생활을 했다.


회사를 관두고 심리학과 대학원에 진학한 것도, 유학에 실패해서 해외로 나올 방도를 모색한 것도, 더 나아질 나 자신의 모습을 기대하며 했던 몸부림이었다. 방황 끝에 정착했을 때 나는 모든 것이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앞뒤로 허덕였던 감정들은 마음속에서 큰 파도를 쳤고, 그리고 파흔이라는 단어처럼 가슴에 켜켜이 파도 자국 같은 상처들을 새겼다. 그것들을 치유하는 방법은 딱 하나였다. 도망치지 않고, 감정을 마주 보고, 충분히 아파하며 나 자신을 존중했으면 되는 거였다. '신은 세월로 사람을 다스린다'더니 그 많은 좌충우돌의 시간들을 겪고 나서야 지금 여기에 올 수 있었다.


내일이 나아질 것이란 믿음은 그냥 막연히 가지면 안 되는 일 같다. 무조건적인 믿음은 시야를 흐리게 한다.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계획이 있어야 하고, 그 계획을 수행하는 데 내 마음이 괜찮을지를 가늠해 보고 덤벼야 한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것이지만 막상 해 보니 내가 견딜 수 없는 환경이나 사람, 일도 존재하니까 말이다. 그런 면에서 삶의 우선순위를 가질 수 있는 현재의 삶에 감사한다. 하지만 조금만 더,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조금만 더, 나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정중하게 삶을 꾸려나가고 싶다. 자기 성취 예언 같지만 말로 하고 글로 쓰면 그 에너지가 전달되는 것 같으니 이렇게 새해 있었으면 하는 일을 써 본다.


내게 가장 좋은 방식으로 시간을 쓸 수 있기를. 부디 그 안에서 혼자가 아니고, 내게 적어도 나쁜 마음으로 접근하는 이들이 없이, 친절하게 지낼 수 있기를. 사랑 까지는 아니어도, 친구처럼 위로가 되는 남자 사람 친구 하나쯤 생겼으면. 작더라도 자가인 내 공간이 생겼으면. 이상이 아닌 현실에 잘 발 디디고 씩씩하게 살아가길 계속하는 내가 되기를. 올해 버는 돈의 50%는 저축할 수 있기를. 그리고, 나와 가족들이 건강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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