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라는 건 더 이상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데 있다
고립 생활에서 깨어나는 중
하얀 도화지 같은 화면이 반갑다. 브런치에 글 쓸 수 있게 되었다며 엄청 설레어 한 순간도 잠시, 한 글자 자판에 쳐 넣기가 버거웠다. 잠들려다가도 하나의 문장이 생각나면 그걸 휴대폰 메모에 적으려고 스탠드를 켜는 나인데, 참 끈기도 없지. 그래서 그냥 좀, 가벼워지기로 했다. 상처가 있고 피가 흘러도, 모른 척 그냥 덮어놓고 살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나를 보듬으려고 시작한 지난번 첫 글에 너무 많은 눈물을 흘리고 나서 내가 내 시퍼런 마음에 질려버렸다.
사람은 누구나 누구 한 명쯤에게는 자기 속 이야기를 해야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생각해 보면 나는 가족에게도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하며 자랐다. 그냥, 미움받을 것 같아서 착한 아이인척 했고, 아무도 뭐라 하지는 않았지만 힘들다는 이야기 하면 내가 기댈 유일한 마음의 '언덕'이 사라질까 봐 두려웠달까.
그래서 나는 오늘, 모두가 각자의 즐거운 방식으로 휴일을 보내듯, 나의 일상인 요가를 다녀와서 사과 한 알을 깎아서 앞에 두고 오롯이 머릿속으로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그려보았다. 오늘 요가 선생님의 마지막 말, ' Remember who you are, remember what you are' 이란 말 - 나의 원천을 지울 수는 없겠지만 멀리 떠나왔어도 나를 지탱해 주는 힘은 내가 나라는 유일함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옆에 기꺼이 와서 나를 받쳐주던 준 받침대가 부서질까 봐서 제대로 응석 부리지도 못하고, 사랑했다던 사람의 마음의 서랍을 일일이 열어보지도 못한 채, 참아온 내 이야기들을 풀어놓을라치면 사라져 간 그는. '네가 그런 애인 줄 몰랐다'는 말로 마음을 할퀴고 간 사람. 내 마음속에서 나는 그에게 늘 외치고 있었다. '말 좀 이쁘게 하라고요. 기쁘건 슬프건 떠나건 예의는 지키라고요!'
'괜찮다, 괜찮다. 나는 그게 무엇이든 너의 이야기를 들어주리라' 하는 게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나는 언제든 그걸 들어줄 거라고 마음먹었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주는 비중이 커질수록, 그는 나를 양탄자처럼 밟고 지나갔다. 가장 기본적인 예의도, 고맙다는 말도 없이, 그냥 자신의 응어리가 풀리면 그렇게 사라졌다. 그건 물론, 그를 절실하게 잡지 않은 내 탓도 있겠지만, 그를 그렇게 길들인 내 탓도 있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한다는 마음은, 분명히 예쁘고 아름다운 감정인데, 누군가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는 나를 알아차리는 과정이 나는 이제, 두렵고 무섭다. 내 안의 서러움들, 내 안의 아팠던 것들을 풀어놓을 만큼 어떤 사람을 믿게 되면, 또 그렇게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릴까 봐서. 사랑했던 사람에게 진짜 내 모습을 부정당하고 나서는 내가 나를 예쁘게 봐주는 일이 너무 힘들었으니까.
세월이 그렇게 무심히 지나고 나면, 나는 다 괜찮아질 줄 알았지만, 전혀 아니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 내 목소리를 내지 않고, 내 몸과 마음을 내가 다독이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진짜 사랑해 주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이제는 세상에 없는 너바나의 보컬 커트 코베인이 말했듯 '거짓된 내 모습으로 사랑받느니 차라리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으로 미움받겠다' 란 말이 마음에 와서 박힌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 가는 거라지만, 아직도 나는 세상에 딱 한 사람만 무조건,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었으면 한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주고 받아들여주고 싶고, 나 또한 그렇게 받아들여지고 싶다. 그리고 특정한 대상이 없이 그런 희망을 품는 날 밤이면, 울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었다.
나는 필연적으로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걸. 그 세계에서만 비로소 온전히 나 자신일 수 있다는 것을. 세상을 버텨나가는 고단함과 서러움을 다 토해내고도 유일하게 버림받을 걱정이 없는 공간이 여기에 생겨서, 위안이 된다. 필연적인 모든 것은 꼭 아름다울 필요는 없지만, 기질적으로 내게 주어진 우울감을 글로써 극복해 보려는 노력 자체는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세상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고, 살면서 느낄 희로애락은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해 줄 것이다.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말 그대로 내가 태어나 살아있기 때문일 테니. 그 자체의 존엄성을 나 스스로가 존중해줄 수 있다면, 지금의 이 외로움도 그렇게 큰 괴로움은 아닐 것이다.
그리하여 이 밤에 나는 또 운다. 살고 싶어서, 혹은 아픈 나를 숨기며 만나온 그 사람을 생각하면서, 그저 그에게 쏟은 그 마음들은 내가 원해서였거나 혹은, 나도 보살핌 받고 싶다는 그런 외침이었을 것이라고 자위하면서. 이 눈물 뒤에 찾아오는 감정은, 이제 더 이상 내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더 이상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느껴지는 무한의 공포이긴 하지만.
그럴 때는 다시 노트북을 열어 브런치의 새하얀 화면을 채워나가리라. 마음속에 쌓인 것들을 내려놓고, 삶에 대한 희망으로 채우고 싶다. 그렇게 살다 보면 다시 가고 싶은 길을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시퍼런 나의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 타자 소리. 눈 앞에 놓인 커피가 차갑게 식어 시릴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