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 4월 어스름 동이 트기 전 새벽녘, 아직 엄마품이 좋기만 한 어린 나이의 그는 채 다 떠지지도 않은 눈을 비비며 인기척에 눈을 끔벅거린다. 주섬주섬 채비를 하시는 어머니의 녹찻물이 배인 옷가지의 냄새로 찻잎을 따러 가시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다시 잠들곤 했다.
열아홉에 시집오셔서 화엄사 스님들께 차 공양을 하시던 어머니는 이제 여든이 넘은 노인이 되셨고, 늘 어머니 곁에 함께였던 아이는 50의 중년이 되었다. 총총거리는 뜀박질로 어머니의 잰걸음을 따라잡던 아이, 그 아이의 작은 체구에는 경외로울만큼 커다란 가마솥과 그 안에서 익어가던 찻잎 소리와 진한 차향은 어머니와 함께한 일상이었다. 그래서 중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찻잎을 따고 그 잎을 고르고, 또 덖고 덖어서 찾는 이들에게 차를 내어드리는 일이 그에게는 특별할 것 없는 삶 자체였을 것이다.
지리산 자락의 구례를 떠나 살아본 적이 없다는 그에게 지리산의 야생 차밭과 찻잎을 덖어 차를 만들어 내는 일. 그리고 전통의 제다를 고수하며 어렵게 법제한 지리산 고차수 작설차.
그가 살아내 온 시간의 전부일지 모른다.
화엄사 길목의 황전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를 처음 만난 건 지리산 피아골 연곡사에서였다. 말없이 차를 내어주는 그에게 감사한 날이었다.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 골이 깊은 절의 찻집을 찾은 이유를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가지런한 생김새처럼 가지런했던 팽주의 동작 하나하나가 잊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