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선한량 Apr 15. 2024

어둠속의 대화

신선한 감흥의 여운이 가시기전에 뭐라도 끄적여야 할거 같아 블루투스 키보드를 펼쳐 신들리듯 두드렸다.  

이예주 로드마스터님을 만난 것은 칠흑같은 암흑속이었다. 

오늘 우리는 국립공원공단 주관의 장애인 인식 개선 전시체험을 위해 출장을 갔다.

국립공원 지방 사무소에서 온 직원들은 한조가 되어 간단한 안전행동 요령을 듣고 

암흑의 공간으로 들어섰다. 


어둠속에서는 한명의 목소리만 들린다. 

그녀였다. 밝고 또랑또랑한 목소리였다. 

조금은 앳된 목소리로 봤을때 30대 전후로 보여진다. 

그녀의 안내를 따라 난생 처음 어둠속을 손과 발의 감각을 따라 움직였다. 

선두에 서다보니 내 지팡이에 앞사람의 발이 걸리기도 하고 뒷사람의 인기척과 숨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동선을 따라 이동하면서 왼쪽 벽면을 손으로 더듬으면서 지팡이에 의지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갔다. 

오직 로드 마스터의 목소리에만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처음 당도한 곳은 보드랍고 보송보송한 벽면이 만져지는 곳이다. 어디인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녀가 소개하기 전까지는 

잠시후 희미한 조명이 켜지면서 이곳이 J화가의 화실임을 작가의 목소리로 알려준다. 

이곳은 어디인지 작가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공간인지를 자세히 일러준다. 그러면서 우리에게도 그런 장소가 있는지를 떠올려 보라고 제안한다. 

그렇게 우리는 로드마스터의 목소리에 이끌려 새로운 공간을 연이어 지나갔다. 

우리는 그야말로 6인조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매끈하고 도톰한 잎사귀와 울퉁불퉁한 몸통이 만져지는가 하면 사방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천장에서 폭포수가 쏟아지는 물소리가  흘러나온다. 

줄곧 왼쪽편에 이어진 줄을 잡거나 벽을 짚어야만 안심을 했다. 막다른 길 앞에는 혹시 굴곡에 넘어지지는 않을까 내심 조심스러웠다. 한치 앞을 분간할 수없는 어둠속에서 버스 입구의 계단을 딛고 올라서기도 하고

마침내 배를 타고 잘생긴 사람만 들어간다는 핸섬에 들어가기도했다. 중간에 마스터님이 건네준 작은 음료수를 마시며 여행의 목마름을 잠시 달랬다. 어떤 음료수인지를 음미해보라는 안내를  착실히 따랐다. 


직업상 자연이 활동무대인 나는 오감을 여는데 어색했다.  

하지만 지금시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에 예민해져갔다. 

아니 그럴수 밖에 없었다.  

같이 출장온 윤상호 해설사는 어둠속에서 오히려 그림이 그려진다고 했다. 

난로와 찬장이 그리고 테이블과 식탁이 마구 머리속에서 생겨난다. 

감각을 가로막았지만 상상력까지 막지는 못했다. 

오히려 상상의 날개를 달아준 계기였다. 



청각에 의지했던 우리는 그녀가 살며시 내민 온기를 손으로 붙잡았다.  

그제서야 이 어둠을 조금 더 감당할만 했다. 

보이지않는 우리는 서로가 감각의 연결선이 되어주었다.  

누군가 건네주는 인도의 손짓과 목소리가 어떤 상황에서는 '구원' 이란걸 몸으로 배운다. 

그런 우군이 내 주위에 있다면 벅찬 일상도 감당할수 있지않을까 감히 생각해본다. 

마지막으로 마스터에게 질문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근데 마스터님은 적외선 안경 같은 것을 쓰고 있으신가요?"

"아니요 사실 저희는 시각 장애인 입니다."

순간 여기저기서 탄식과 놀라움이 터져 나왔다. 

'못 보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사람을 인도했다고?'

'그녀가 건넨 손이 없었다면 그리고 목소리가 없었다면 ...'

'인당수에 빠진 딸을 기다리는 처연한 심봉사의 마음이 이러지 않았을까?' 

그녀의 음성은 마치 눈 앞의 광경을 보고 말하는 사람처럼 세심하고 정확했다. 

버스에 오를때는 머리를 숙이고 계단의 개수와 위치를 알려주었고, 목소리 만으로 나에게 와

정확히 내손을 잡아주었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전시체험을 위해 그들은 한달 여 동안 전문적으로 시뮬레이션 동선 교육을 받는다고 했다. 

암흑속에서 그녀는 우리를 인도하는 한줄기 빛같은 존재였다. 

'로드 마스터'라는 네이밍이 적절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로드 마스터 같은 사람이었나? 아니면 그런사람이 내게도 있었나?'

어떻게 청소년기를 보냈는지 모를 정도로 희미한 10대와 20대가 지나가고,

결혼과 직장생활의 긴 터널은 30대와 40대를 훌쩍 넘어 어느덧 50대를 바라보고 있다. 

난생처음 중년 사춘기가 시작되었다.  

포탈 검색창에 중년을 치면 "청년과 노년사이의 단계"를 이른다고 나온다. 사춘기를 검색하면 성인으로 넘어가는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 변화라고 요약되어 있다. 이어 '중년 사춘기'를 치면 '중년의 위기', '갱년기', '우울증' 의 단어가 넘실댄다. 마치 새로운 정체성이 새로 만들어지듯 방황이라는 이름으로 탐색을 하고 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그간 국립공원 레인저로서 다져온 나의 페르소나와 다른 또다른 내가 있었다. 

아니 그동안 자각하지 못했거나 원래 있었으나 모른채 무시하고 살아온 것이다. 

내 안에 살고 있는 '내면아이'와 포용의 대화를 자주 해줘야 한다는 칼융 심리학자의 말도 자주 눈에 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제시하고 알려주는 길대로 따라가는게 아니라 

내면의 부름에 따라 내 결에 맞는 내방식대로 살아가야함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MBTI 테스트 결과 INFP라는 성향은 나의 기질을 잘 말해주고 있다. 

현실주의자 아내가 보기에 나는 아티스트가 아니라 또라이다. 

독서와 글쓰기를 병행하고 아내를 속여가면서 인문학 교육을 수강하면서 꺼낸 본래의 자아상이다. 

육아와 직장인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나의 길을 홀로 간다는 것은 많은 제약이 따랐다.

직장과 가정에서 나를 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꾸역 꾸역 버텨온 나는 지금에 와서야 조금 알게된다. 

현재의 나를 이룬것은 나혼자가 아니라 가족을 비롯한 주변사람들과의 상호작용으로 오늘의 내가 된것이다. 

종교에서는 소명이라지만 난 나의 감각을 따라 살아가는 개인주의자 이다.  

그게 요즘 말하는 나답게 오늘을 살아가는 방법이다.


어찌보면 스스로에게 난 로드 마스터 였다. 

나를 이끌어줄 스승을 찾을수 없었다. 

어떻게 찾는지도 몰랐고 가르켜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렇게 먼길을 돌아왔다. 

나이만 먹었지 여전히 겁많고 소심하고 두려움 많은 중년 남자이다. 

다른사람을 의식하지 않는다고 호언장담 하지만 여전히 주변을 살핀다.  

타고난 나의 기질과 성격대로 살고자 한다. 

여전히 눈앞에 벌어지는 일에서 주저하지만 구상해오던 일은 더디지만 조심스럽게 던져본다.


엉뚱하고 독특하고 이상한 남자는 가끔 아내 앞에서 팬티 바람으로 꼴깝을 떨기도 한다. 

그런 나를 보고 아내는 혀끝을 찬다. 

"저 나이 먹고 저러고 싶을까?"

재밌는것은 그런 내가 싫지않다. 

꼴깝이든 지랄이든 염병이든 내 스타일대로 내 꼴린대로 이제는 살아갈거다. 


나에게 로드마스터가 되어 나를 인도하다 보면 나도 누군가의 로드마스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 세상 중년 사춘기를 겪는 모든 사람은 자기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거창하게 자아실현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된다.


헤르만헤세는 말했다.

"자기 답게 사는 것 외에 성장하고 진리에 이를수 있는 다른 길은 없다."

삶을 사랑하는 모든사람은 같이 모이면 된다. 

내가 있는 위치에서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 처럼 막춤을 추면된다. 

그런 모습을 모두가 좋아하지는 않겠지만 좀 지나면 그장단에 맞춰 춤추는 사람이 나타날 것이다. 

그들이 곧 내 사람이다.

내가 있는 현재의 위치에서 나의 업에서 출발하련다. 

오늘 난 '어둠속의 대화'를 다시 시작한다.

오늘은 방안의 불을 모두 끄고 더듬어보면서 나머지 감각으로 또 다른 일상을 상상해 보련다.  

나만의 로드마스터를 꿈꾸며 

작가의 이전글 나의 꽃을 피우기까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