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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leen Feb 06. 2018

결혼은 구속이 아니다.

오사카 촬영 출장(?)을 통한 또 하나의 배


1. 저는 지금 "소녀에 머물다" 촬영을 위해 오사카에 왔습니다. 완전 무계획으로 오직 작가님 촬영을 위해서만 결정한 오사카 행이 었는데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많았어요. 특히 촬영이 끝날 무렵, 스튜디오에서 하나 둘 모인 사람들 또한 모두 제 지인 또는 지인의 인연이 모두 작가님과 얽힌걸 보니 인연이 참 신기합니다.


2. 어제는 하루종일 스튜디오 촬영을 했고 그 자리에서 인화한 사진들과 모조타이프를 볼 수 있었어요.

 아 정말 그것을 뭐라 표현해야할까요.
눈물이 나올 만큼 너무나 감격스러웠습니다. 하얀 벽지 위엔. 실물사이즈보다 훨씬 큰 내 모습이 걸려있었습니다. 내 모습에 내가 위안 받을 수 있는 사진이라니... 포토샵과 보정 하나 없이 찍혀있는 그  모습은 정말 있는 그대로의 저 였습니다.

한 선물로 받은 이 사진을 마주보며 앞으로는 저를 마주보고 여러가지 대화를 할 수 있겠네요.

3. 오늘은 야외 촬영과 영상촬영도 할 수 있었는데 너무 추워서 패쓰-
대신 그간의 작가님 사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보통소녀 프로젝트의 작품 의도와 그 안에서 담고 있는 여성의 사회적 역할,지위,억압 등 심도있는 대화들을 나누었어요.

어쩌면 여성을 상품화하는 사진으로서 보일 수도 있는 사진.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소녀. 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또는 만들어진 이미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여성이 가져야하는 성적 가치관. 예를 들면 여자니까 이래서는 안돼. 와 같은 강압적인 사회적 시선에 대한 반발. 여성들의 숨겨야만 했던 욕구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하셨습니다. (알고보니 보통소녀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캐스팅 된 모델들이 아닌, 모두 자진해서 참여한 일반인 여성들이라고 합니다. 얼굴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세미누드 라는 사진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던 요인도 없잖아 있지 않았나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것 또한 남의 시선을 의식한 탓일지도 모른다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4.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지금의 아내 분을 만나기 전까진 비혼주의자를 고집하셨다는 것. 그런데 자연스럽게 인연이 맺어지고 아기가 태어나면서 새로운 가정이 생기면서 정말 너무나 행복하다는 말이었습니다. 왜 이 좋은 것을 여태까지 안 했지 라고 생각할 만큼.오히려 결혼 뒤에 자유를 느끼셨다고 합니다. 내 가정. 내 편인 사람이 생기니 아이러니 하게도 전보다 안정적이고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을 느낀다는 말이었어요.( 작가님은 엄청난 사랑꾼이셨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든 나를 지지하고 이해해주며 함께해주는 사람.그런 인연이 나타나고 자연스럽게 맺어지는 것이 진정한 인연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어차피 만날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되어있고 인연은 꼭 이루어진다고.
단지 이 사람이 내 사람이라는 확신의 눈을 가질 수 있도록 그 전의 연애를 통한 쓰라린 경험과 상처 덕분에 아내 분을 알아볼 수 있었다는 이야기에도 공감이 갑니다.

 5. 그러고보면 사진을 찍는 일도 음악도 예술은 참 연애하듯 일해야하는 것 같습니다. 그 무엇보다  애정을 가득 쏟아내는 행위. 내가 죽어도 남길 수 있는 추억 가득한 일기장과 같은 것. 이것이 우리 모두 열심히 사는 이유겠지요. 
대단한 거장이 아닌 보잘 것 없는 내 자신이 남긴 작품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

아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었구나.


요즘 들어 사랑과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위주로 글을 쓰게 됩니다. 봄이 다가오고 매서운 바람이 지나가면 나아질까요. 마음 속에 감춰둔 아픔이 조금은 무뎌지길 소원합니다. 말을 줄이고 삼키며 살고 있는 요즘. 대신 글을 쓰니 전보다  더 좋습니다. 저에게 글을 쓰는 일은 제 자신의 슬픔에 대해 스스로의 위안을  뜻하거든요.
그리고 보통 진심은 전달된다고 하는데 너무 애쓰고 애써도 어긋나는 것들을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냥 놓아버리기로 다짐했습니다.


저는 갑자기 3월에 미국을 가게 되었고 아마도 빠른 시일 내에 한국에서의 짐과 일들을 모두 정리하고 떠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빨리 미국에 가게 될 줄 몰랐는데 예상하지 못한 이 흐름 또한 나의 연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 해봐야지요.

정말로 한국에서의 많은 것들을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더군요. 과감해서가 아니라 그냥 지쳤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이것은 오늘 아침, 미련 없이 새 시작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메세지 한장을 받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봄이 오고 벚꽃이 필 무렵, 다시 오게 될 오사카.

그때 즈음엔 조금 더 달라진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서고 싶습니다.



지금 오사카는 한국 만큼 추워요.

돈 아낀다고 숙소도 싼 곳으로 대충 잡아서 트렁크도 못펴고 덜덜 떨고 있습니다.

타코야끼는 먹고 한국에 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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