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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사람 Oct 17. 2016

멀리서 바라보면 여전한,

그런 좋은 친구가 있다


 버스에서 잠이 들었다가 깨어 창밖을 바라봤을 때 여전히 도로변을 따라 펼쳐진 한강은 아름답다. 퇴근에 지친 사람들이 의자에 몸을 기대고 한강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기울인다. 다리 위의 불빛들이 까만 밤 한강 물위로 번진다.


 한참 지나친 것 만치 거리가 멀어진 것 같았는데, 고개 돌렸을 때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주는 것에게 고마움이 커진다. 기다려주는 풍경이 있다.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지는 여행지에서의 추억이나 멀어지는 청춘이나 첫사랑의 기억이든가.


 나에겐 무엇이 있을까. 나이가 들수록 웬만하면 마음 뜨거워지는 일 없어지는 나날들 속에 무엇이 우리의 마음을 붙들고 기다리려나.


 예전 직장에서 알게 되어 친구가 된 사람이 있다. 그 친구는 그림을 그리고, 내가 사는 곳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산다. 서로 멀어서 실제로 얼굴을 본 건 한 번뿐이었다. 그러나 마음의 연대가 있는 친구로 지내고 있다. 
멀리 있어서 좋은 친구가 있다. 멀리서 친구의 여백을 보고 채워줄 수 있는 여유도 생기기 때문이다. 많은 산 중에서 가장 오르기 힘든 게 사람이라고도 하는데, 산의 모양을 멀리서 관찰하고 등반을 시작하면 조급해질 이유가 없어지기도 한다.


 높고 험준한 산이라는 걸 이미 확인했다면,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다. 등반을 하다가 멈춰 서서 쉬어가는 시간을 아쉬워하지 않을 수 있다. 연락을 하지 않을 때 더 생각이 나고 마음 깊어지는 그런 친구가 있기 마련이다. 자연스럽게 나이를 나눠 먹으면서 편안하게 동행하는 감사한 인연이다.


 유선 상으로만 일하다 그 친구를 만난 건, 이직한 곳에서의 동료가 마침 그 친구가 사는 지역에서 결혼을 하면서다. 처음 만났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만나온 것 같은 반가움에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친구가 건네준 쿠키가 있었다. 분홍색의 네모난 박스에 회색 리본이 묶인 상자를 열자 여러 가지 쿠키들이 놓여 있었다.


 그중 기억에 남는 건 어릴적 슈퍼에서 자주 사먹었던 방울 모양의 빵을 닮은 거이었다. 겉의 바삭한 식감과 촉촉한 맛뿐만이 아니었다. 귀여운 사이즈라 입 안에 넣고 데굴데굴 굴리면서 먹다 보면 식감이 아주 묘했다. 서걱서걱하면서 씹히는 맛은 마치 코코넛 과자에서 느껴지는 오도독한 식감과 비슷했다. 좋은 버터를 쓴 것인지 방울빵의 작은 크기에서 나오는 풍미는 대조적으로 컸다.


 프리랜서인 친구에게 난 고정적인 수익이 되도록 늘 일을 맡기고 싶었었다. 그러나 친구를 만난 직장을 나온 후로 난 불안정한 곳에만 거처를 두다가 무직의 시간도 오래 갖게 된 시점이었다. 이후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짧은 인사만으로 우리는 어느 정도 불안정한 시기를 지나고 있음에 위로를 건네곤 했다. 그날 친구를 만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박스에 담긴 방울빵을 금세 다 먹었다.


 그때 그 쿠키 참 맛있었다고 내가 몇 번을 되풀이했었는지 추석즈음 친구가 그 분홍색 쿠키 박스를 보내왔다. 선교를 다녀오며 찍은 사진들도 함께였다.


 보내온 사진 중 마음에 울림을 준 건 그릇에 담긴 옥수수를 내미는 손. 선교지에서 만난 가족이 나눠준 옥수수라고 했다.


부족해도 마음으로 나눈 가족의 옥수수


 손님을 섬기는 모습에서 풍족하여 나누는 것이 아니라 부족해도 마음으로 나누는 것을 배웠다고, 친구는 사진 뒤에 적어두었다. 친구가 보내준 쿠키와 마음으로 나눈 옥수수가 나란히 책상에 놓여졌다. 쿠키를 먹으면서 친구에게 고마웠다. 옥수수를 건넨 가족들의 따뜻한 마음 곁에서 쿠키가 갓 구워진 것 마냥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과연 이토록 풍족한 쿠키를 먹으면서 나는 얼마만큼 나눌 마음의 여유를 갖고 있는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누는 가족들처럼 살아가는 오늘에 감사하는지 반성했다.

 
 며칠이 지나고, 늘 그렇듯 버스를 타고 한강을 지나는데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지진이 났다는 데 괜찮은지 궁금하다고 했다. 정작 지진이 난 곳에 살았던 건 친구였다. 나는 또 반성했다. 매일 아름다운 한강을 보며 출퇴근 하는 것에서부터 감사한 일의 시작이니까. 삶에 대한 감사가 없는 것은 크게 반성할 일이었다.


 오래 보아 익숙해진 풍경에서 배울 것들이 있다. 버티는 지혜. 견디고 그 자리에 서 있는 묵묵함이 든든한 산이 되어 삶의 배경이 된다는 걸 기억하자.


 옥수수를 건넨 가족의 마음이 멀리 비행기를 타고 친구를 통해 건너왔다. 그리하여 오늘은 또 무엇을 먹는가. 음식을 고르는 고민 앞에서 친구와 옥수수가 떠오른자 먹고 사는 일이 무언지 시소처럼 어떤 날은 떠오르고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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