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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bin Son Apr 09. 2022

결핍을 채우는 소설, 달려라 아비

나의 결핍은 무엇일까?

김애란 작가는 <비행운>라는 단편 소설집을 읽고부터 좋아하는 작가의 이름 리스트에 올랐다.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그 작가의 모든 작품을 찾아 읽진 않았다. 선물 받은 소설책 <달려라 아비>는 제목이 끌리지 않아서 테이블에 그냥 두었는데, 며칠 뒤 김애란 작가의 이름을 발견하자마자 그 책은 한순간 읽고 싶은 책이 되었다. 아, 역시 재밌다! 좋다! 를 연발한 책. 어떤 단편이 제일 재밌었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힘들 만큼 다 재밌다. 재밌다는 게 폭소의 의미는 아니고, 상황들에 대한 묘사라던가, 한 사람이 가진 힘듦과 어려움을 이겨내는 방법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 탁월했다. 누군가의 결핍을 이해하는 작가를 좋아한다. 결핍을 알아야 그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만들 수 있으니까. 부재를, 그리움을, 외로움을, 아픔을, 상실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상황으로 상상으로 은유로 해낸다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장이 맛깔스럽다.

각 단편들을 상실과 채움으로 정리해보았다. 나의 결핍은 무엇일까? 나는 어떻게 채우고 있을까? 


달려라 아비 


하루 밤의 정사로 아이를 낳고 사라진 남자. 피임약 없이는 안된다는 여자의 말을 듣고 약국이 있는 시내까지 한걸음에 달린 그때만은 열정적이었던 남자. 하룻밤을 위해 생애 가장 빨리 뛴 남자. 하지만 그 남자는 아이가 태어나고 사라졌다. 이야기의 화자인 딸에게 아빠에 대한 기억은 엄마가 전해줬던 '그 달리기' 뿐이다. 


주인공의 결핍: 사라진 아버지, 아버지에 대한 궁금증,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상실의 채움 : 달리기를 하러 아빠가 떠났다고 상상한다.(영화 포레스트 검프가 떠올랐다) 그 상상력이 분노와 미움을 사그라들게 했나 보다. 그리고 농담으로 자신을 키운 어머니의 존재. 대수롭지 않게 아버지의 부재를 이야기하는 엄마. 상실을 숨기지 않는 것, 그 자체로 이야기하는 것. 그게 결국 상실을 이기는 힘인 것 같다. 


"어머니는 우울에 빠진 내 뒷덜미를, 재치의 두 손가락을 이용해 가뿐히 잡아 올리곤 했다. 그 재치라는 것이 가끔은 무지하게 상스럽기도 했는데, 내가 아버지에 대해 물을 때 그랬다. 아버지가 나에게 금기는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자주 언급되지 않을 뿐이었다" 



"어머니가 내게 물려준 가장 큰 유산은 자신을 연민하지 않는 법이었다. 어머니는 내게 미안해하지도, 나를 가여워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가 고마웠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게 '괜찮냐'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정말로 물어오는 것은 자신의 안부라는 것을. 어머니와 나는 구원도 이해도 아니나 입석표처럼 당당한 관계였다. 



상상력과 농담은 삶의 무게를 가볍게 만든다. 내가 농담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를 이 책에서도 찾았다. 가벼운 농담과 불안에 떨지 않는 당당함은 삶의 상실을 잊게 하는 묘약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느낀다. 그리고 상상력이 가지는 묘미에 대해서도. 화자의 마지막의 말에도 그 힌트가 있다. 


"나는 결국 용서할 수 없어 상상한 것이 아닐까" 

나는 편의점에 간다


주인공은 혼자 사는 여자. 일상을 잘 살아간다는 위안을 위해 편의점을 간다. 삼거리에 존재하는 동네 편의점 세 군데를 나름 비교한다. 말 거는 편의점도 귀찮고, 자기를 알은체 하지 않는 곳의 단골이 되지만, 매일 일상의 자투리를 사러가는 자신을 몰라보는 알바생에게 묘한 서운함을 느낀다. 편의점에 의존하지만, 말을 걸면 피하고 싶고, 그렇다고 너무 관심을 주지 않으면 서운한 모습이 어쩌면 요즘 현대인의 모습인 것 같다. 너무 가깝고 싶지는 않지만, 또 만나고 연결되고 싶은. 편의점이란 공간은 외로움을 채우는 공간일 수 있겠다. 자신이 살아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일상을 구매하려고 가는 공간일 수 있으니까. 


주인공의 결핍: 온화하지 않은 일상, 외로움, 
상실의 채움 : 매일 편의점에 가 일상을 위해 무언가라도 하나 사 오는 것


"'약속과 우연과 재난이 이삿짐처럼 사라진 2003년 서울. 빈손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우리에게 편의점은 기원을 알 수 없는 전설처럼 그렇게 왔다"


"내가 편의점을 갈 때마다 어떤 안심이 드는 건, 편의점에 감으로써 물건이 아니라 일상을 구매하게 된다는 생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나의 식생활에서 성생활에 이르기까지 모두 '보고'있다. 왜냐하면 편의점이란 모든 것을 파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단편이 재밌었던 이유는 편의점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나랑 비슷하기 때문이다. 의점이 현대인의 비빌 언덕이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외진 여행길에서 편의점을 볼 때마다 반가웠던 느낌, 밤늦은 시간 출출할 때 맥주 하나 과자 한 봉지 살 수 있는 늘 열려있는 곳. 아무리 어두운 골목에서도 시골에서 빛을 내는 유일한 가게. 


이 세상이 모두 깜깜해져도, 나를 반길 곳 하나는 안전감을 주는 곳이지만, 나에게 전혀 관심 없는 곳. 특이한 현대인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편의점 주인이 지나치게 나를 알아보는 것도, 나를 모른 체 하는 것도 싫은 혼자이고 쉽지만 외롭지 않고 싶은 사람의 마음이 느껴졌던 단편이었다. 그래서 더 외롭게 느껴졌다.



영원한 화자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는 화자의 모습. 그리움을 드러내는 방식이 독특했다. 나는 누구다~라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스토리였다. 상대를 통해 나의 존재를 인식했던 상태에서, 오롯이 남았을 때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실감을 이겨내기 위해 '나는.. 누구다'라는 끊임없는 표현을 통해 자신을 기억해내려는 노력을 한다. 하지만,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없는 상태.  이별은 타인의 빈자리를 통해 곧 나 자신의 빈자리를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아닐까. 연인과의 이별을 맞이하면 가장 먼저 겪게 되는 것은 '나의 소실'을 마주하는 것이다. 내가 진짜 누구였지를 기억해내야 그 사람을 잊을 수 있으니까. 바로 이 단편은 그 과정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주인공의 결핍 : 연인의 상실, 그리움, 외로움  
상실의 채움 : 매일 나는 어떤 사람인지, 지나가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인지 서술함으로써 자신을 기억해내려고 한다. 

"나는 말을 줍고 다니는 사람. 나는 나의 수집가. 나는 나를 찌푸린 눈으로 보는 나에게 가장 버르장머리 없는 사람이다"

"나는 나의 편견을 아끼는 사람. 나는 그 편견을 얻기까지 달려갔다 다치고 온 길을 버릴 수 없는 사람이다"


"당신이 떠난 후 나는 몹시 우울한 나머지 한밤중 길에서 외계인을 만난 대도 전혀 놀라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자꾸만 내가 누군지 잊어먹어 갔다. 


"나는 이것저것을 긁어모으지만, 당신은 언제나 충분치 않다고 말한다. 나는 처음부터 다시 말한다. 그리하여 이것은 관심 없는 이성의 고백처럼 언제나 조금씩 지루해진다"


나는~으로 시작하는 것을 많이 수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타인이 나의 자리를 채웠다면, 그걸 이겨내는 방법은 수많은 나를 수집하며 나를 기억해내는 것이 아닐까. 화자의 말처럼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고 싶어서 말을 고르거나, 충분치 못하다고 말하는 사람 앞에서 이것저것 긁어모으고 싶지 않다. 타자를 사랑할수록 나라는 존재를 더 인식해야 한다. 



사랑의 인사


어릴 때 놀이공원에서 자신을 버리고 사라진 아버지. 주인공은 자신이 실종된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실종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때부터 주인공은 '사라진 것'에 대한 관심을 가지며, 수족관 관리사로 살아간다. 주인공은 수족관 안에서 잠수복을 입은 채 아버지를 만난다. 진짜 아버지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를 만났다는 생각한 주인공은 수족관 안에서 흐느껴 운다. 물고기들의 입뻥긋거림을 아빠라고 해석하며, 물 안에서 그동안 차올랐던 서러움을 내어놓는다. 사라졌던 아버지가 잠깐 나타나 사랑의 인사를 하고 떠난 것이라 믿는다. 슬프다. 


주인공의 결핍: 아버지, 세상의 편견, 버림받은 존재 
상실의 채움 : 세계의 불가사의- 미스터리 책을 보며,  아버지의 실종을 미스터리 사건으로 치부한다.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해양생물들을 보며, 몇백억 년 전에 비해 하나도 늙지 않는 자기보다 젊은 아버지를 만난다 생각한다.

"나는 조마조마한 가슴으로 아버지의 대답을 기다렸다. 잠시 후 아버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내게 한쪽 손을 가만히 흔들어주었다. 아버지가.... 웃고 있었다. 나는 그만 울컥해서 입안 가득 물고 있던 호흡기를 놓쳐버릴 뻔했다. 아버지는 나를 잊지 않은 것이다. 저런 미소는 오직 나를 잊지 않는 사람만이 지어볼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모든 것이 아버지의 선물이라고 화신 했다. 아버지, 그러니까 아버지는 나를 만나러 온 것이다. 내게 인사를 하러, 다만 한 번의 인사, 사랑의 인사를 하러 온 것이다.


누군가를 잊는 과정에 꼭 그 사람이 개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을 잊기 위해, 잘 보내기 위해, 용서하기 위해 다 저마다의 의식을 치러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이 물고기


찢어지게 가난한 풍경이다. 신문지가 벽지를 대신한 집, 곰팡이로 가득한 집에서 태어난 아이가 화자다. 부모 없이 신생아 때부터 하루 종일 집에 있어야 하는 아이가 하는 한 가지 놀이는 집 벽면을 상상력으로 채우는 것이다. 어른이 되고, 부모를 떠나 상경한 서울 옥탑방에서도 어린 시절처럼 벽을 채워나간다. 매일 포스트잇에 문장을 채우고 벽면을 붙인다. 벽면에 있는 문장들로 하루를 버티며 소설을 쓰는 그의 옥탑방은 부실공사로 갑자기 무너져 내린다. 벽에 생기기 시작한 금들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도 포스티 잇 때문이었다. 무너져 내린 옥탑방을 보며 망연자실해 있을 때, 포스트잇 한 장이 또르르 내려온다. 희망이라는 키워드로. 가난과 고독을 이겨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문장과 글이라는 것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소설. 


주인공의 결핍: 가난함, 장난감, 놀이거리, 함께 대화를 나눌 대상 
상실의 채움 :  집 안에 자신만의 세게로 다시 만드는 상상력, 글쓰기, 책, 문장

"그가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지거나 상상하는 일뿐이었다"

"매일 대수롭지 않게 봐오던 벽면들이었다. 그런데 장난감이라고 하나도 없던 그 방에서, 여섯 개의 면면은 그에게 새롭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는 방 안에서 잠자거나 상상하는 일 외에도 자신이 놀 수 있는 방법이 또 한 가지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지금 쓰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예 쓰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쓰기로 결정했다."


"그는 읽은 책에서 좋아하는 부분을 고랄 포스트잇에 적었다. 주로 죽은 작가들의 것이 많았는데, 한족 면을 채운 포스트잇들은 비석에 세워진 거대한 묘지처럼 보이기도 했다. 포스트잇이 붙여질수록 첫 번째 벽면은 곧 떠들썩해졌다."


"두 번째로 할 일은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쓰는 것이었다. 그는 다른 벽면에 그것을 채우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좀 더 작은 글자로 써져야 했다. 그는 하나의 규칙을 정했다. 그것은 한 포스트잇 안의 문장이 다음 포스트잇으로 넘어가야만 이해할 수 있는 불완전한 문장이 아닌, 하나의 완결된 문장으로 끝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세 번째 벽면은 좀 더 무질서했다. 그곳의 포스트잇들은 두렷한 문맥이 있는 것도, 완결한 형태의 문장으로 이뤄진 것도 아니었다. 그는 스치는 생각, 단어, 문장을 암호처럼 적었다"


"그는 침도 별로 없는 입을 열며 우리에게 처음으로 말했다. 그것은 어쩌면 희망 때문 일 것이라고"


종이 물고기. 이 편이 가장 인상적인 것은 고난을 이겨내는 한 사람의 방법이 너무나 문학적이었기 때문이다. 문장들의 힘으로 살아갈 그의 앞날을 나도 모르게 응원하게 된다. 그리고 나에게도 나를 일으키는 나의 말을 수집하고 싶다. 그가 채운 벽면이 종이 물고기가 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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