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밍웨이 May 22. 2020

타임슬립으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언제일까?

테니스에 미쳐 스스로가 참 좋았던 시절 이야기

타임슬립(Time slip) :시간을 과거로 거슬러 돌아가다.

 
일생에 단 한번, 타임 슬립(Time slip)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1999년,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어느 날, 테니스장에서 새카맣게 탄 얼굴로 시큼한 땀 냄새를 풍기며 운동을 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부모님의 우월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나는 어릴 적부터 친구들보다 얼굴 하나만큼 차이 날 정도로 큰 키를 가졌다. 타고난 신체 덕분에 짓궂은 남학생들도 내 주변에서는 얼씬도 못하였다. 큰 키는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나의 무기가 되었다가 ‘신체조건이 좋다’는 표현으로 운동을 시키기에 좋은 빌미(?)가 되기도 하였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의 교기(운동부)는 테니스였다. 4학년 겨울방학이 시작되기 전, 당시 테니스 감독 선생님은 학급마다 돌아다니며 테니스 선수 발굴에 혈안이셨다. 비인기 종목 운동이라 하려고 하는 학생도 시키려는 부모님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큰 키는 선생님의 눈길을 사로잡기 충분하였고 테니스와 인연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당시 운동이 좋아서라기 보다 선생님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좋았었다.


그렇게 시작한 테니스 선수의 길은 쉽지 않았다. 보통 운동선수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1, 2학년 때부터 시작한다. 나는 5학년 때부터 시작하였으니 격차를 줄이기 위해 성실함으로 승부를 보아야 했다. 수업을 들어가기 전 한 시간 남짓 연습을 한다. 부족하다는 마음이 들면 점심시간에도 하얀 실내화를 신은 채 혼자 할 수 있는 서브 연습을 한다. 학교 일과가 마치고 밤 9시까지 단체훈련을 하면 하루 일과가 끝난다. 초등학생에게 가혹해 보이는 생활처럼 보이지만 나는 온전히 테니스에 몰입(flow) 되어 있었다.


1년 동안 테니스에 미쳐있던 시간만큼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였고, 경남을 대표하는 선수가 될 수 있었다. 주변의 칭찬으로 우쭐해하기도 하였으나, 한편으로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불안하기도 하였다.


6학년 여름방학쯤, 전국 초등학교 테니스 대회가 열리는 제주도로 항하였다. 도내에서는 최고의 선수였지만 전국에서 뛰어난 선수들과 비교하면 사실 한참 부족했었다. 대회 경험을 쌓는 마음으로 참가하였다. 그러나 막상 경기에 들어가면 승부욕이 발동했다. 1차 예선경기를 6:1 큰 점수차로 이겼다. 예상치 못했던 승리에 자신감이 밀려오다 두려움이 뒤덮여 버렸다.


다음 경기 상대방이 전국 랭킹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엘리트 선수였기 때문이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것을...이미 졌다는 마음으로 경기에 들어갔다. 응원하고 있는 엄마와 코치 선생님 그리고 대회 관계자들의 시선은 이미 작아진 나를 숨어버리고 싶게 만들었다. 실력보다 심리적 패배를 안고 일찍이 집으로 돌아왔다.

경기가 끝나고 부끄러워 카메라에 눈조차 마주치지 못했던 순간



운동을 할수록 나의 성격이 드러 났다. 우선 나는 쫄보였다. 시합에 나가면 두둑한 배포가 필요하다. 성실함으로 연습을 한다고 해도 시합은 경쟁이다. 이기는 자가 더 잘하는 선수이다. 나는 이기려는 마음보다는 지면 어떻게 하지라는 마음으로 경기에 나갔었다. 둘째는 미련이 많았다. 원(one) 포인트를 잃으면 빨리 잊어버리고 투(two) 포인트를 가져올 전략을 짜야한다. 잃어버린 포인트에 집착을 하다 보면 한 게임을 통째로 잃게 된다. 알면서도 되돌릴 수 없는 것에 대한 미련과 그 속에 자책하고 있는 내가 보였다.

 
이런 성격은 운동선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될 무렵, 외부적 환경도 받쳐주지 못하였다. 당시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테니스 선수를 이끌어갈 인프라가 부족하여 타 지역으로 유학을 가야 하는 실정이었다. 13살짜리 초등학생이 감당하기에는 운동선수라는 청빛 꿈보다는 당장 부모님과 헤어져야 한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포기가 아닌 척, 그만둘 수밖에 없는 타당한 이유를 만들었고 테니스 선수라는 이름이 떠나 보냈다.

 
테니스 선수는 되지 못하였지만 20년이 지난 지금도 테니스를 치고 있다. 이따금 그 시절을 추억해본다. 평소 스스로에게 인색하지만 테니스 선수라는 이름 속 나의 모습은 자랑스러운 몇 안 되는 순간들이었다. 나에게 한순간도 부끄럽지 않았던 그 순간, 영화에서처럼 타임슬립으로 이 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을까?



다시 테니스에 미쳐보고 싶다.



유물이 되어버린 상장






출처 : https://unsplash.com/photos/OH5g9IgcMWs?utm_source=unsplash&utm_medium=referral&utm_content=creditShareLink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