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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린 Feb 20. 2022

[소비를 반성하다] 그 시절 가짜 나

코르셋 해방의 글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어요. 우리가 처음 만났던 때가 언제였나요? 지금의 저는 그때와 많이 달라져있나요?


한때 제가 화장품을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아모레퍼시픽같은 화장품 회사에 입사하는 것이 꿈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다들 놀라곤 합니다. 파운데이션은커녕 로션 바르기도 귀찮아하는 제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냐며 놀라기도 하더군요. 저보다 5살 많았던 어떤 언니는 제가 화장기 없는 얼굴로 돌아다니는 이유가 화장하는 법을 몰라서라고 생각했는지 선뜻 화장하는 방법을 알려주겠다고도 했어요. 우리 집에 한가득 쌓여있는 아이섀도 팔레트와 립스틱이 언니네 집에 있는 것보다 더 많을 것 같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어요.


대학교 새내기 시절 누구나 그랬듯 저 또한 꾸미기에 참 관심이 많았습니다. 특히, 화장품을 정말 좋아했어요. 새로 나온 화장품의 리뷰는 챙겨보고 매장에 가서 꼭 테스트를 해보곤 했지요. '하늘 아래 같은 색조는 없다'는 말을 교리로 여기며 병적으로 틴트와 립스틱을 수집하기도 했습니다. 당시에 저는 저의 맨얼굴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너무나 무서워했습니다. 얼굴에 보기 흉한 모공들이 정말 많았거든요. 마치 오렌지 껍질처럼요. 공부를 하거나 무언가에 집중하면 얼굴을 쥐어뜯는 버릇이 있었던 탓에 고등학교 시절 피부가 정말 안 좋았어요. 여드름을 쥐어뜯다 보니 트러블이 있던 자리 자리가 모공으로 깊게 패였죠. 이 모공들을 남들에게 보이는 것이 너무나 두려워 학교에 갈 때는 반드시 파운데이션을 발랐어요. 화장할 시간이 부족하다 싶으면 마스크를 쓰기도 했습니다.


이 시절 찍었던 사진을 보면 참 예쁘긴 한데요. 저는 이 시절을 정말 싫어하고 후회합니다. 어쩐지 가짜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타인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며 살았어요. 뚱뚱하면 대학 동기들이 날 친구로 삼아주지 않을 것 같았고, 화장을 하지 않은 맨 얼굴로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내 모공만 들여다 보는 것 같아 두려웠어요. 어떻게든 남들의 눈에 매력적인 여성으로 보이고 싶어 방학 때 마다 하기 싫은 다이어트를 하고 유명한 모공 프라이머는 모두 사서 테스트했었죠. 다른 사람들에게 욕망당하는 인간이 매력적인 인간인줄 착각하고 살았어요. 내가 원하는 모습보다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에 나를 억지로 구겨넣었죠. 그래서 그 시절의 나는 사실 가짜에요. 존재하지만 실재하지는 않는달까요?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살이 찌고 피부도 나빠졌지만 나는 지금의 나를  좋아해요. 내가 원하는대로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제가 좋아하는 인터넷 짤이 하나 있는데요. 외모 악플로 힘들어하는 bj 프란에게 그녀의 팬이 건네준 조언 댓글입니다. '나는 보여지기 위한 존재가 아니다. 예뻐보이기 위해 노력할 수록 사람들은 나를 그저  대상으로 여기고 끊임없이 평가를 쏟아낼거다. 평가에 충족되기 위해 계속해서 나를 예뻐보이게 드는 것은  끝없는 고통의 시작이다.'  댓글이 새내기 시절 저에게 해주는 조언같더라고요. 한동안  짤을 핸드폰 앨범 속에 넣어두고 자주 꺼내어 봤어요. 특히, 새내기 시절의 저를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있는 오래된 지인을 만나러    스스로가 초라해지고 부끄러워지는 느낌이 조금이라도 들기 시작하면  짤을 주기도문처럼 입밖으로 외우기도 하였죠.



코로나가 시작되자마자 재택근무를 했던 탓에 최근 3년 동안 살이 정말 많이 쪘는데요. 건강검진을 받았더니 각종 수치들이 많이 나빠졌더라구요. 이제는 진짜로 다이어트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건강을 위해 하는 다이어트요. 사실 아직도 조금 의심스럽긴해요. '너가 하는 다이어트가 정말 건강을 위해서 하는게 맞아?' '남들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건 아니고?' 하는 의심들 말이죠. 하지만 아무렴 어때요. 이 다이어트는 내 스스로가 원해서 하는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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