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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감정 쓰레기통에서 감정 정화조로 거듭나기

by 해요









살아오면서 나는 언제 부모님께 응석을 부려봤던가

아무리 과거를 되짚어봐도 손 끝에 잡히는 게 없다.

연로하셔서 기억이 흐려지신 탓도 있겠지만

당신의 기억에도 없으시다니

나 힘들다, 뭘 사달라, 뭘 하고 싶다

조르고 떼쓰는 일은 좀처럼 없었던 것 같다.


사실 나이를 불문하고

종족을 불문하고

모든 생명체는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



집에 언제 시한폭탄이 터질지 모르는데

아무리 어렸어도 내 잇속만 차렸다면

정말 이기적이거나 아둔한 아이였을 테지.



결국 군대에 가긴 했지만

나는 누가 봐도 늘 군기가 바짝 든 신병처럼

그 어떤 것에도 경계를 소홀히 하는 법 없이 살아왔다.


나를, 그리고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처사였다지만

살가운 애정과 관심 속에서 자란 티가 안 나고

악과 깡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온 티가 많이 나는 건

아무리 숨기려 해도 숨겨지질 않아 속상한 부분.










대가족의 막내로 태어났지만

친정어머니가 오래 병석에 계신 데다

양친을 일찍 여의신 어머니-


엄마는 결혼을 기점으로

배우자, 친인척들로 인해

통한의 세월을 보내셔야 했다.

나는 군중 속의 고독과

홀로 된다는 것의 무서움을 목도하면서 자라왔기에

엄마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남다른 편이다.



화병에 사로잡힌 엄마는

어린 나를 붙들고 하소연하기에 이르렀고

때로는 그 정도지나치기도 했다.


혹여나 엄마가 잘못되실까 봐

오로지 엄마의 자랑이 되고자

단 한순간도 한눈 팔지 않고

코피 터지게 공부해서

당당하게 전교 1등 성적표도 갖다 드리고

원하는 대학에도 갔건만

그걸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더 절절하게 들기 시작했다.


모든 건

우리 선택이 낳은 결과이며,


그 결과가 비록 실망스럽고

괴로운 현실을 초래했다 할지라도

그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선택한 자의 몫이라는 사실,


잃은 것도, 속상한 일도 많았다지만

고난길 도상에서도

웃음 지을 일은 때때로 있었다,

남은 삶을 어떻게 살지 여부 또한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이야기를

오랜 시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나누었다.



한때는 내 신세가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살아온

상처투성이 투사(鬪士) 같다는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하지만 내가

'감정 정화조'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 또한

순전히 지혜로운 어머니 덕분이라는 생각을 부쩍 많이 하게 된다.


딸의 간곡한 청에도

변함없이 과거의 회한에 사로잡혀

신세한탄만 하셨다면 지금의 내가 있었을까?



살아남기 위해

동도 트지 않은 새벽부터

중노동도 마다하지 않고

남편의 경제적 무능을 한 번도 탓하는 법 없이

세파에 맞서 몸소 실천하고 증명해 보인

엄마의 묵묵한 인생이 없었다면


우리 집안의 문제적 현상을 직시하고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었을까?



마음이 산산이 부서졌던 가족들을

한자리에 모아 따스하게 다시 품는 일은

사실 나 혼자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다.



동행의 마음가짐과 함께

모든 것은 때가 좌우하는 것이다.



식구들을 볼 때면

혹한의 세월을 버텨내고 살아남은

인동초를 마주할 때와 같은 감정이 피어오른다.




누군가를 위한다는 이유로

싑게 감정 쓰레기통을 자처하지도,

마지못해 당하지도 말자.



자기 희생이라고 생각하고 들인 경청의 노력이

때로는 상대가 자연스럽게 침전물을 가라앉히고

정화의 수순을 밟는 걸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사실.



내 안의 고통과 번뇌는

결국 자아의 성숙으로만 극복이 가능하니

때로는 한발짝 물러서는 것이 상대를 아끼는 길이 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쏟아내는 것만이, 받아주는 것만이 해소의 방편이 되는 건 아니다.


마음 속 찌꺼기들이 어지러이 춤추다 가라앉는 과정을 지켜보는 데도 시간을 들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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