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들 , 그 두 번 째
나는 향기나는 것들을 정말로, 정말로, 정 ㅡ 말로 좋아한다.
향기 .
그것은 어떠한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일기장과도 같은 것이고,
그것은 어떠한 사람을 기억하게 하는 추억과도 연결되는 것이다.
내 스스로 생각하기에 후각에 좀 예민한 편인데,
사람도, 장소도, 음식도, 전부 다 모두 향기로 기억하는 편이다.
아, 이거 그 때 그 사람에게서 났던 향수와 같은 향인데,
아, 이거 그 때 여행가서 먹었던 그 음식 향기인데,
아, 이 계절 딱 이 시점에만 느낄수 있는 코 끝 시리는 새벽의 차가운 공기의 냄새가 좋아
이런 식이다.
누구나 쉽게 인지하는 지하철 역에서의 델리ㅇ쥬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도 않는 빵 구워내는 냄새부터
고깃집 종류도 냄새만 가지고 제육볶음을 파는 집인지
양념갈비를 파는 집인지 맞출 정도의 개코라는 말이다.
... 본 이야기로 돌아와서 ,
내 코 끝에 걸려있는 수많은 향기들 중
오늘 이야기 하고 싶은 건, 향기로 마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홍차 이야기이다.
참고로 난 홍차에 대해 잘 모른다.
그냥 안 마셔본 홍차를 마셔보는 정도,
홍차에 우유를 섞으면 밀크티가 된다는 정도,
홍차를 차갑게 마시면 아이스티라는 그 정도,
그것이 편의점에서 파는 립톤아이스티나,
카페에서 파는 복숭아 아이스티와는 다르다는 것을 아는 정도이다.
내 머릿속에 "홍차"라는게 각인된건 초딩 시절이다.
집 바로 앞에 책방이 하나 있었는데
초딩시절 친구들과 노는 시간을 포기해가며
맞벌이인 부모님을 대신 해 다섯살 어린 동생을 돌보며
동생을 데리고 가서 하루 종일 내리 놀았던 곳이 바로 책방이었다.
덕분에 동생도 나도 왠만한 만화라는 만화는 거의 다 섭렵했는데
그 중에 하나 홍차왕자에 빠져 들게 되었던 것이다.
상상력이 너무나도 풍부했던 열 두 살의 어린 나는
둥그런 보름달이 뜨는 날 홍차를 우린 잔에 달빛을 비추면
그 찻잔에서 왕자님이 뿅 ! 하고 나타나
내 소원 세 가지를 들어준다는 정말로 동화같은 그 이야기에
완전히, 아주 완전히 포옥 빠져들어
어디서 맛 본 적도 본 적도 없는 홍차에 매력에 빠져
언젠가 내가 어른이 되면 여기 나오는 모든 홍차를 맛보리라
노트에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써 메모해두었던 기억이 난다.
아, 그리고 블렌딩 티는 왕자를 불러낼 수 없다는 것도 .
(섞이지 않은 티여야만 그 왕자님 혹은 공주님이 나타난다는게 만화 속 내용이다)
만화로만 읽는데도 어찌나 입 안이 향긋해지는것 같던지.
만화 속 주인공은 학교에서 홍차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했는데,
아주아주 작은 부실 하나를 예쁘게 단장해서
틈나는대로 친구와 함께 그 곳에서 홍차를 우려내어 즐기는 것
오직 동아리 활동이라고는 그것뿐이었다.
간혹 홍차에 어울리는 스콘이나 쿠키를 굽기도 하고
때로는 우유를 더해 밀크티 라는 것을 만들어 먹기도 했는데
홍차 자체의 대한 맛을 알리가 없던 초딩인 나는
만화를 볼 때마다 그 맛이 아주 달콤하고 향긋할 것이라고
머릿속 상상의 방에 향기로 새기고 또 새겨 두었었다.
사실 그 당시에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지금처럼 이렇게 홍차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곳은
당연히도 없었거니와
그나마 "차"라는 것을 집에서 접하는건
기껏해야 집에서 끓여마시는 동서 보리차와
(당시에는 물을 사마신다는 것 자체를 상상도 못하던 시절)
손님이 오셨을때 내어드릴 수 있는 보성녹차나 현미녹차 둥글레차 티백정도 .
이것이 그나마도 엄마나 아빠가 믹스커피 말고도 무언가의 어른 음료를
구비해 놓은 집이라 할 수 있던 시절이었다.
중고등학생 시절 슈퍼에서 아이스티 라고 적힌 캔을 보고
바로 이건가봐 ! 하고 사마셨던 립톤 아이스티라던가,
복숭아 맛이 나는 가루를 물에 타서 마셨던, 그 정도.
이게 내가 미성년이던 시절에 기억하는 홍차였다.
성인이 되고, 어느 한 카페이자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 곳에는 "홍차" 라 불리우는 것이 무려 열 종류나 판매되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나름 유명한 브랜드였고,
일하는 직원이라는 명분 덕분에 시시 때때로 내가 원할때는
언제든 홍차를 맛 볼 수 있었다.
그게 내가 제대로 홍차를 처음 접해본 것이었다.
그 때 내 나이 스물 둘.
홍차라는 존재를 머릿속에 각인 시킨지 어언 십 년 만에야
드디어 홍차라는 것을 맛 본 것이었다.
만화책에서 본 것 처럼
홍차를 예쁜 주전자 안에 티 망이라는 것 안에 담아서
뜨거운 물을 담고 어느정도 우려질 때 까지 시간을 기다린다.
기다리는 시간동안 내 주변에 아주아주 향긋한 향기가 가득 퍼지기 시작한다.
제비꽃 같은 향이 나기도, 장미꽃 같은 향이 나기도 하고
달콤한 바닐라 향이 나기도 한다.
몇 분의 시간을 기다린 끝에 예쁜 찻잔에 홍차를 따르고
그 향기로운 향과 맛을 혀 끝에 닿게 하면
내 코 끝에 걸렸던 그 향기와는 또 느낌이 다른 깔끔한 맛이 입 안을 감싸는 것이다.
하나하나 기억해 두었던 것들을 되살려
우유에도 우려내어 마셔보고,
설탕을 섞어 달콤하게도 즐겨보게 되었다.
어울리는 쿠키를 구워보기도 하고,
내 마음대로 이것 저것 티를 섞어 우려내어 마셔보기도 했다.
어릴적 기억이 더해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홍차를 마실때마다 난 너무나 행복해졌고
단지 어린 시절을 그대로 재현해낸다는것만으로
어른 세상에 찌든 마음이 조금은 맑아지고, 순수해지는 기분이 들곤 했다 .
지금은 다양한 홍차 브랜드들이 국내에 들어와
홍차 전문점도 있고, 손쉽게 홍차를 구할수도 있게 된 덕에
처음 홍차를 만났던 그 시절보다도 더 자주, 종종 홍차를 즐기고 있다
여전히 차에 대해 전문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때로는, 일과 내 삶의 대한 생각으로 머리와 마음이 답답해질때면
다도를 배우는 클래스를 들으러 가보기도 하고
접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차를 판매하는 곳을 찾아가서 즐겨보기도 한다.
어린시절의 기억은 그 힘이 정말 매우 대단한것같다.
초딩시절 코끝에 걸어두었던 상상속의 홍차의 향기처럼,
그리고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홍차의 맛을 즐겼던 그 순간처럼,
오늘따라 삶이 너무나 건조하고 퍽퍽해서 힘겹다는 생각이 들 때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 중 하나를 기억속에서 꺼내
마음을 적셔주는 시간을 잠시나마 모두가 갖길 바라며 ㅡ
오늘의 좋아하는 것들의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 .
enjoy your flavo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