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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y in Pangyo May 01. 2020

무명시절 일용직까지 해봤다는 연예인이 밝히지 않은 비밀

#노동절 #근로자의날

수년, 수십 년을 무명으로 있다가 빛을 발한 연예인들의 인터뷰에는 종종 무명 시절 그가 겪었던 어려움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곤 한다. 그때 빠지지 않는 키워드는 ‘일용직’이다. ‘제가 진짜 힘들었을 때는 일용직으로..’     




얼마 전 친정 부모님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우리 가족의 향후 투자 방향성에 대해 말씀드리는 중이었다. 살짝 취기가 올라 얼굴이 발그레해진 아버지가 가만히 듣고 계시다가 대뜸 말씀하셨다. ‘우리도 (일용직 노동자들) 젊은 애들 마음먹고 일하면 너희보다 훨씬 많이 벌어. 그러니까 너희들 너무 잘났다고도 생각하지 말고, 걔네들 무시하지도 말아.’



말씀드리고 있던 투자 전략, 자본 조달 계획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이야기라 웃으며 ‘당연하지, 그리고 그거 전문 기술직이야 아빠. 호주나 캐나다 같은 나라 가면 웬만한 대기업 사무직이나 고위 공무원들보다 돈 훨씬 많이 벌어.’라고 이야기하고 넘어갔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가는 차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젊은 시절 우리 아빠는 얼마나 무시를 당했을까, 자식들을 ‘너희들’이라고 칭하면서 불특정 다수의 일용직 후배들을 ‘우리들’이라고 칭할 만큼 아빠가 겪었던, 아빠가 속해있는 집단이 겪은 차별은 얼마나 뿌리가 깊은 것일까,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달라졌나, 나는 이 일을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성공한 연예인들의 무명시절 일용직 경험담은 ‘일용직’에 대한 특수한 정서 및 의식을 생산하는데 영향을 미친다. 먼저, 일용직을 본업은 따로 있는 상태에서 본업을 지속하기 위한 경제적 어려움을 충족하기 위한 ‘일시적인 거처’로 생각하게 한다. 이는 자연스럽게 일용직이 하는 일들은 ‘전문성이 없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아무런 기술이 없어도 힘만 좀 쓰면 할 수 있는 일이 일용직이라는 기술적인 폄하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성공한’ 연예인들이 하는 일용직 이야기만 매스컴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성공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일종의 영웅 스토리를 통하여  ‘가난하고’ ‘힘들고’ 안쓰럽던’ 시절들에 대한 강한 정서를 느끼고, ‘일용직 노동자 = 성공하지 못했던 시절, 극복의 대상’의 공식을 만들어 낸다. 나처럼 가까이에서 ‘일용직’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의 경우, 그들에 대한 경험과 정보 자체가 없다 보니 더더욱 이런 고정관념은 수정되기가 어렵다.           


나는 일용직 노동자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엄마는 방직 장에서도 일하셨었고, 아버지는 인테리어 가게를 운영하시기도 하셨지만 내 기억 속 엄마, 아빠는 일용직 노동자셨다. 사실 그 당시에는 ‘일용직’보다 ‘막노동’이라는 단어가 더 흔하게 쓰였다. 학창 시절 엄마 아빠가 ‘막노동’을 하시는 현장에 몇 번 따라갔다 온 적이 있다. 나는 몇 달 내내 이 일만 배워도 저렇게 뚝딱뚝딱 못할 것 같았고, 동시에 엄청난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일을 왜 ‘막노동’이라고 부르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번 1월, 새로운 집으로 이사 올 때 언제나처럼 엄마, 아빠가 도배를 해 주셨다. 나는 여전히 전문적인 기술에 감탄했고 이 일이 ‘막노동’이라 칭해지는 것에 동의할 수 없었다.      


엄마, 아빠는 일이 많은 달에는 한 달 중 하루도 쉬지 않고 일 하셨다. 지독하게도 비가 오던 여름에는 단 하루도 일을 못 나가시는 날도 있었다. 엄마는 일당을 받은 날이면 두둑한 만 원짜리가 든 봉투를 가지고 오셔서는 자유롭게 흩어져있는 세종대왕의 머리를 가지런히 맞추시고는 했다. 그 일이 재밌으신지 지폐의 그림이 가지런히 맞춰진지 몇 번이나 다시 확인하셨다. 엄마 아빠는 본인들의 일을 자랑스러워하셨고, 지금도 그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해하신다. 도배 일을 하시면서 집도 샀고, 두 딸들 대학까지 가르치셨고, 결혼도 시키셨다. 정직하게 땀 한 방울, 한 방울 흘려서 일하신 그 돈으로 피곤한 날 치킨도 사 먹고, 자식이 반장이 되면 반 전체 햄버거도 사주시고, 시골 가셔서 어르신들 식사 대접도 하시고, 오랜 기간 복지센터에 기부도 하시고, 제주도도 다녀오셨다. 우리 가족은 부유하지는 않지만 부끄럽게는 살지 않았다.


@워크맨, 건설현장 일용직 체험편


일용직(day labor)은 말 그대로 하루 단위로 일당을 지급받는 노동자나 기간제 노동자를 의미한다. 힘든 시절 기술 하나 없이 맨몸으로, 본업이 아닌 부업으로 잠시 거쳐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 아빠처럼 정교한 기술과 노하우를 요구하는 ‘오야붕’도 있다. 그 일을 생업으로 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있는 것이다. 일용직 노동자들도 그저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일 뿐이다. 무명이 길었던 연예인들의 삶과 생활을 비난하려 하는 의도는 없다. 그들의 영웅 스토리에서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생산해내고 있는 일용직 노동자들의 기술적 전문성에 대한 폄하, 계층화에 대해서 생각해보자는 의미이다.  일용직 근로자들을 위해 꼭 필요한 사회제도적 논의를 활성화는 일용직에 대한 정서적 분리, 집단적 분리의 해체라는 선행작업이 이루어졌을 때 가능할 것이다.



@ photo from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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