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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an Son Feb 10. 2016

3월에는 놀아보자고 떠나는 2월의 노래는

2


벌어진 레자소파 사이에 담뱃재를 털었는데, 이런 재는 떨어져 나가지를 않고, 쳇 담뱃재까지도 맘대로 되지 않는군, 하다가 꽃을 든 여자의 어깨가 흘러내리기에 힐끔, 인사하기 뭐한 얼굴 하나 힐끔, 짧은 치마 아래 물오른 허벅지 힐끔, 거리다가 허걱! 결국 담배의 재는 배 위에 떨어지고, 에이 이런 재수도 없는 일이라며 툭툭 털었는데 털어낼 수록 옷 속으로 담배재가 퍼져 어둔 산에 흰 눈 내린 꼴이었다. 궁시렁거리며 눈밭을 쓸어내고 있는데 불현듯 나타난 향수냄새, 흔하다. 익숙하다. 고개를 서둘러 들어 흔하고도 익숙한 향내의 주인을 찾았다. 분명히 이쪽으로 갔는데 이 근처인데 누구냐. 찰랑이는 단발머리. 고개를 돌려 정체를 밝히라. 포문을 개방하고 좌현 15도 방향의 훤칠한 이질적 향기를 향해 일발의 텔레파시를 발사한다. 오! 이런. 출렁이며 고개를 돌리는 그녀는. 그녀는 그다. 사내다? 맞다! 그렇다면 뭐냐 그 향수는? 분명 여성용이고 그녀의 것인데. 멀뚱히 '모르는 사람이었네' 하는 표정으로 답하던 단발머리 아뿔싸! 소녀가 아니신 소년은 무대 앞쪽으로 여인의 향기를 뿌리며 총총히 멀어졌다. 연락 좀 해줘, 울 엄마한테. 길을 잃고 헤맨다고.

그저 흔하디흔한 향기였을 뿐이구나. 유일의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전유도 아닌. 하면 이런 따위의 기억이란 것도 역시나 흔할 수 밖에 없다는 억측 맞은 결론. 기억도 냄새도 그것들을 담고 있는 사람들도 역시나 흔하다.

하기는 꼭 누구마냥 홀로 와서는 맥주병을 손에 쥐고 홀을 가로지르는 중년의 철부지가 또 흔하게도 널렸다. 제길 일어서면 허리 아픈 나이. 다시 주저 앉아나 버리자.


기타소리 고함소리에 우주특급 번쩍 등장하면 풍경은 어느새 썰물이구나. 무대 앞으로 뛰어나가는 이쁜 여자 하나 없어. 까치발로 어깨너머 보는 여자 옆을 스치는 두 청춘의 손에는 오렌지 콕인가? 그 따위를 마실 리가 없잖아. 앱솔루트겠군.

"뭘 자꾸 빠트려. 진실을 원해. 난 진실을 원해. 화이어."

보컬의 눈이 몰리고 입이 삐뚤어지고 두 다리를 폴짝. 욱! 북이 터져라. 줄이 끊겨라. 목이 터져라. 눈이 빠지게 까치발을 들게 하는 싸이키 아래 기어코 올라탄 무등 이층 탑은 우주특급만의 트레이드마크. 리듬 앤 베이스. 앤 리듬. 어라! 고개를 드니 달새로구만. 그리 그래서. 헌데 전철역 앞에 누런 달 둥글게도 뜬 걸 정작 달새는 알까. 베이스. 하다가 슬근 흔들거리며 한 손을 턱에 고이고 팔짱을 낀 달새의 벌린 입이 하도 심각하여, 이놈 돈오(頓悟)라도 하겠다는 겐가 싶어 그냥 빈 맥주병을 들어 생각으로만 달새의 심각한 면상에 시원스레 날려주고는 기실 고개를 도로 시커먼 앰프에다가 돌려 처박았다. 목을 흔드는 핑크색 모피의 초록 모자는 검은 가방 속에 손을 넣고 만지작. 가방 속에 은밀한 그것이고 싶다.

"저희 미국 갑니다. 소리 좀 질러 주세요."

"뭐 반기지 않는 사람이 있나봐."

"여긴 샹들리에가 걸려있네. 나도 이따가 디제이를 해야 는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둥둥두둥.

"봉달새님께 고맙다고 전해달랍니다."

만은 누가? 켁, 뭐야 이건. 출정식이 아니라 칭찬식이였나. 달새가 회갑이라도 맞은 양 싶다. 그 칭찬이 사람들을 불러 모은 달새의 순수에 찬물을 끼얹듯 상쾌하기만 하여 아까 저 흔한 향기에 뒤통수 맞은 복잡하던 심정에 그나마 위안이라면 위안이라고 낄낄, 웃었다. 그냥 노래나 하자. ROCK N ROLL. 촤아 오오오오~


대가리에 온통 콩알 탄이라도 터진 어느 관객은 어울리지도 않게 사기진작 음료를 빨고 있고나 있다. 내참, 늙은 처녀의 골짜기를 입에 달고 벌려진 허벅지를 탐할 일이지. 사기진작이라니. 아마도 일군에 롹커인 모양새의 그들은 회장비서실에 근무하실 여인의 꽁무니를 서슴없이 바짝 따랐다. 어휴 다리가 야리야리 얄따란 게 황새스럽고 힐끔. 은근 슬쩍 다시 달새가 다가왔다가는 낄낄 또다시 저편으로 폴짝. 날아 귓속말을 하는데, 난 어디로 가는 걸까. 또 온다. 입 닫아야지. 꽹꽹꽹 우두둑 꽹. 샹들리에가 크기는 크고만. 이마가 톡 튀어나온 아이하나 제 색기를 열심으로 감추고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감춘다고 감춰지는 건 아니잖소. 결국 어떻게든 진실은 드러나 버리는 것을. 비서실의 여자는 회사를 나서며 치마를 벗어버린 모양이라고 그 곁에 털복숭이가 제 친우에게 귓속에 대고 고함을 쳤다. 그래 만월의 밤에 아랫도리를 가릴 것까지야 무에 있느냐. 무용(無用)타, 여인의 길지도 않을 치마여. 용케도 테이블을 잡은 한 남녀는 각자 한 손으로 맡은 바의 테이블을 잡고 임무를 수행하는 요원처럼 몸을 위아래로 조금씩 흔드는데 무척이나 우유스럽고 우주스럽게 보였는데, 은근쩍 예의 털복숭이는 그 테이블 곁으로 다가가 남은 한쪽의 테이블 귀퉁이를 잡고 짝이 없는 한 여자를 탐스러운 눈으로 탐하며 아닌 척 무대와 여자와 테이블의 모퉁이를 번갈아 분주하게 배회하였다. 바쁘다 바뻐.


추쿠추쿠삥삥. 휘릭 고개를 드니 누군가 꾸벅하기에 따라서 꾸벅. 졸았는가! 기억에 없는 낯인 걸 누구지? 한 박자 놓쳐주고. 야이야이~하. 다 터진 야구 모자를 쓰고 그에 어울리지 않을 니트에 남방을 차려입은 사내는 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달고 또 핸드폰을 보다가 운다. 침울해졌다가 어이쿠 깜짝이어라 했더니 담배연기 탓이라. 술이나 한잔 드시고는 다음 두 곡은 달리는 거니까. 눈앞에 번쩍 대머리 털복숭이. 조금 민망하기는 해도 저 형도 왔구나 싶었다. 에에~에에~ 관객들이 펄떡인다. 자신 속에 자신을 숨기고. 아따 전화와쑝. 뭐라구? 안 들려! 제기랄 들릴 리가 없잖아. 넌 지금 데시벨 밖에 있단 말이야. 모두 죽여 버릴 테다. 이 따위 귀때기를 가진 몸을 원망해 무엇할까. 오늘을 죽여줘. 씹새끼야. 죽어가는 머리에 윤기를 걱정하는 한 여인이 담배를 피우고 있어 담배는 두피 건강에 해로워요. 연실 줄담배를 피우시는 군요.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여보자면, 이건 담배가 아니에요. 롹커가 검은 색안경을 벗지 않는 이유랄까. 빨간 치마 곁에는 아무도 다가서지 않아 슬퍼하던 빨간 치마는 맥주병을 입속 깊숙이 밀어 넣었다가 뺀다. 얼쑤. 춤사위를 도는 빨간 치마 뒤에는 노란 머리. 난 블랙이야. 노란 대가리. 난 블랙이야. 오구구. 저리도 펄쩍일 수 있는 것은 그저 아직 도가니가 살아있다는 증거. 존재는 스스로 증명한다고 니가 말했던가? 그랬지, 그땐 그랬지. 빨간 치마 곁으로 노란 대가리가 다가간다. 뒤를 돌아보면 안 돼요 빨간 치마. 빨강 노랑 검정이 가까워진다. 앵콜 앵코올~ 앙콜. 알코올 알코올. 닭똥집 입술에 흰 얼굴이 달 보러 나간다. 그래 달과 같은 얼굴 가도 좋다. 옆에 따라가는 그 아이는 두고 가라. 마라더니 빨강도 노랑도 검정이 먹어치우셨나. 아니 보이시네?


"헤이 버니, 왔썹?"

"고마워이, 왔썹."

"일루와, 케첩."

까만 고딩용 패딩을 입은 처녀가 딸깍딸깍 흔들어대는데 야야 고개는 돌리지 마라. 이쁜 여자하나 없어. 동병에 상련이고 피차가 일반일 터라도 이건 너무 없어. 도발이야, 출정도발. 해도 흥이 나지 않을까보냐. 버니는 성수를 들고 다윗의 미소로 손에 든 성수를 마시며 경배중이시라는. 헌데 홀로 여름 만나신 빨간 원피스는 잘록한 허리에 튼실한 엉덩이. 토실한 아랫배까지도. 아아 님아, 황홀도 하시었는데 야야, 얼굴 돌리지 말라니까! 그 옆에서 표정 없이 열린 눈으로 그 넓은 엉덩이를 쓸어담던 사내는, 뭐 나야 여기 주인이고 핸드폰에 문자님들 와주시고 쌓이면 좋고 갈 데도 있지만 물도 좋고 장사도 해야허고 마눌이랑 여친에게 선물도 사야하고. 해서 어느새 제 2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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