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설

이보슈, 오늘은 꽝일세

異甫竪 一日橫

by Inan Son

9


늦게 돌아오는 버스에는 사람이 없다. 버스는 일찍이 날 때부터 연두색이었고 네 자리 숫자를 달고 있었다. 네 개의 수를 합하면 10이 되었다. 이보는 그게 무척이나 안심이 되어서 그 버스의 연두색꼬리와 합치면 10이 되는 요 녀석이 날라다 주는 근심으로 가득찬 몸덩이들을 너그럽게도 위로하던 차였다. 그 역시 그러할 덩어리라고 환승으로 이어진 구백 원짜리 생각을 이보라는 한 덩어리위에 올려본다.

버스가 구청을 지나 삼거리 코너를 돌며 자신의 눈에 푸른 간판이 들어온 게 우연 이였는지 이보는 알 수 없다. 다만 ‘미당안마’라는 익숙한 어감의 네 글자가 보였고 이보는 보이는 대로 읽었다. 그 말이 이상하리만치 낯익어서 곰곰해 하다가 그만 그냥 안마가 받고 싶어졌다. 뽀드득뽀드득. 누군가 이 뭉친 날개 죽지를 풀어주기를 기대했다. 분명 낯설은 손일 것이고 더운 손일 테니까. 그걸로 충분해. 날개 따위 나오지도 않을 거라면 속에서 뭉치지나 말 일이 아닌가. 낯선 손이 익숙한 제 몸의 발이 모서리가 지겹게 닿지도 않는 곳-것의 응어리를 풀 수 있을 거라고 이보는 기대해 보았다. 낯설음만이 익숙함의 사각지대를 이완시킬 것이었다. 그러다가 그 앞의 글자. ‘미당’이 떠올라 이보는 곤혹스러웠다. 이런 ‘미당’이라니. 말을 가지고 논다는 자가 아닌가. 접신(接神)의 경지라고도 불리던 자였다. 헌데 가만 접신이란 신을 만나는 인간을 두고 하는 말인데 그것은 실로 ‘무당’이 아니던고. 이런 허면 ‘미당’이란 ‘무당’에 다름이 아니겠구나. 그야말로 말을 농락하는 이로고. 푸훗. 미당안마는 무당안마라. 그런 접신(接神)이 접신(接身)을 하는 까닭으로 안마사가 되었는다? 이 또한 우연이라 기에 기이하기도 신기하기도 꼭 우연한 필연 같아서 이보는 그저 잠깐을 감탄해 마지않아 킬킬 소리를 내어버렸다. 접신은 접신이었다. 접신(接神)은 접신(接身)이로구나. 푸른 간판의 미당은 무당이고 안마이며 접신이었다. 말에 가해지는 안마. 시대에 춤을 추던 나랏무당이며 조선에 이어 남한 제일의 안마사로구나. 헌데 이런 깨달음을 발(發)하고 설(說)하면 아마도 이보는 아홉 목숨이라도 부지하기 어려울 곤란에 아홉 번은 족히 빠져버릴 셈이라서 그저 이보는 아홉 정거장을 남긴 근심으로 가득한 연두색의 덩어리 속에서 입을 막고 비실-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을 짓고 있을 뿐 달리 방도를 찾지 못하였다. 이보의 앞이 터진 짚신이 우스워 보였거나 웃고 있는 듯이 보였다. 비실이고 피식인다.


별들이 일렬로 늘어섰고 누군가의 생일인데 누군지는 기억이 나지도 않았다. 아마도 그 때, 양치기는 바닥에 주저앉았고 임산부가 뻗은 손을 목수는 잡지 않았지만 그 목수는 임산부의 곁을 떠나지는 못하겠다는 양으로 맴맴 돌던 중이었을 게다. 헌데 갑자기 드는 이런 생각이란 대체 무슨 꼴이란 말인가 무당에 뺨맞고 별들에게 화풀이라도 하겠다는 심보로 이보는 목구멍만큼 시커먼 하늘을 향해 올렸던 시선을 바닥에 던져버렸다. 구름사이 삐쳐 나온 달 아래서 종착지를 향해 달리는 마을버스에서 졸던 한 여자는 무심코 가랑이에 힘이 빠져 무릎을 벌렸고 충혈된 여덟 개의 눈알들이 벌어진 가랑이에 달빛을 심고 있었다. 이보는 그 모든 벌려진 눈과 벌어진 무릎을 보고나서 차마 그들을 안마할 재주가 없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하차 벨을 눌렀다.

삐이~ 붉은 등이 연두색 근심위에 줄줄이 매달려 곰의 집이 있다는 산꼭대기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이보는 이제 흰 머리가 듬성이며 늙어갈 것이다. 여덟 개의 충혈된 눈이 될 것이다. 황금과 몰약과 유황이 일렬로 늘어선 시커먼 밤에 마늘과 쑥을 먹고 어둠속에서 늙어갈 것이다. 삼칠일이 지나고 나면 아마도 이보는 제 품안에 빼어나게 밝은 그 어떤 것을 품고 지옥이 꾸는 천국의 꿈인지 희극이 꾸어온 슬픈 꿈인지 불안이 꾸는 평안일지 랄 것을 지랄스레 꾸고 있을지도 모르긴 모를 일이다. 다만 버스가 미끄러지지 않고 낭떠러지에 처박히지 않고 제때에 멈출 수만 있다면, 삶에서 꾸어온 이 빚의 피라미드를 멈출 수 있다면 말이다. 이보는 그 많은 눈들이 부끄러워 두정거장이나 일찍 버스에서 내렸다. 차가운 산공기에 볼이 식어간다. 부우웅~ 이거 보라는 듯 잘도 근심 버스는 떠나간다. 이보라는 이름의 업(業)이 산을 향해 굴러 올라간다. 아직 길 가에 녹지 않은 눈이 달빛에 반짝인다. 아직 괄약근에 약간의 힘이 남아있다.

헌데 어머니는 돌아오셨을까? 이보는 하루를 온 종일 배회한 끝에서야 제 어미를 걱정하였다. 그것은 일각(一刻)과도 다르지 않을 일생일 지도 모른다고 불효의 회한을 돌고 돌아서야 해보는 것이었다. 정말 이보의 어머니는 돌아오셨을까? 이보의 산을 다 오르고 나면 혹간 거기에는 어느새 흰 머리 새록하게 그를 기다리는 어머니.가 아니라 어머나!스러운 안해(內骸)가 있는 것이나 아닌 지, 아닐 지.

안해에게 쥐어 줘야할 지폐를 이보는 벌써 써버렸는데 어쩌나. 하지 말았어야할 외출을 너무 오래 해버린 것이나 아니었는지. 누가 좀 말렸어야지. 어느새 이보의 심정은 도로 산을, 언덕을 굴러서라도 내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참(斬)하지도 못하는 참(眞)이여. 서서히 가죽피리가 벌렁이며 이보를 비웃으려하고 있었다. 고단하고 고달픈, 벌떡 선 이보 앞에 가로 놓인 하루여(異甫竪 一日橫).

이보슈, 오늘은 꽝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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