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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May 01. 2024

인생의 에너지 총량과 불변의 법칙

그 존재의 순환을 탐구하는 것

하나의 인생에 주어진 에너지는 지극히 한정되어 있다. 인생이 언제까지나 푸르른 봄날이었으면 좋겠지만 이 무한한 우주에서 무한한 생명도 무한한 에너지도 존재하지 않는다. 에너지는 우연히 아주 운 좋게 나에게로 와서 다시 나를 투과하여 다른 곳으로 간다. 그곳이 단지 어디인지 모를 뿐이다.


나이를 아무리 많이 먹어도 배는 부르지 않다. 먹은 만큼 배가 불렀다면 내 배는 폭주해서 저 먼 우주 끝에 닿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허무맹랑한 공상을 하면서 오늘은 글이란 걸 쓰는구나,라는 사실을 비로소 직감한다. 직감하지 않고 어떤 일이든 본능적으로 혹은 무심하게 임하면 좋을 텐데, 글을 쓰는 일은 자신을 직감하는 일과 맞닿아 있다. 그런 감각은 굳이 인지하고 싶지 않은데, 그렇게 되지 않는다.


무심하게, 마음을 버리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을 버리는 일은 삶을 놓는 일과 비슷할까? 그렇게 간주된다면 마음은 결국 버릴 수 없겠구나. 지금처럼 뭔가에 집착하거나 혹은 완전히 소모해버린 에너지를 아쉬워하며 이렇게 모자란 글을 쓰는 수밖에.


내가 갖고 태어난 에너지의 총량은 얼마나 될까? 그 에너지란 과연 충전이 되는 걸까? 에너지를 모두 소모해버린다면 삶도 끝나는 걸까? 그러니 지금은 좀 아껴야 되는 걸까? 아꼈다가 남은 에너지를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고 삶이 종료되어버린다면? 마치 실수로 데스크톱의 전원 스위치를 발로 툭 건드려버리듯이.


요즘의 나는 에너지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낀다. 예전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가졌는지 그 양을 정량적으로 계산하기 힘들지만, 상대적으로 에너지가 줄어들었다는 사실은 안다. 모자란, 아니 조금만 남은 에너지를 그러니까 소중한 에너지를 어디에 쓸 것인가, 그것이 요즘 나의 화두다.


살아갈수록 삶의 보폭은 줄어든다. 에너지가 줄어드니까 움직임도 둔해진다. 그래서 나는 몇 가지로 삶을 일축해버렸다. 일단 일은 해야 한다. 일을 해야 먹고 사니까, 아무리 주인과 노예의 관계의 프레임에서 벗어나라는 장자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일은 해야 한다. 나는 일에서 보람을 찾는다. 존재하지 않던 보람이 찾아온 것은 아니다. 일에 집중하다 보니 외면당했던 보람을 찾은 것이 맞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임하는 태도에 따라서 일은 보람을 생산하기도 허무를 낳기도 하나 보다.


일은 재밌다. 재미가 있어서 일을 한다. 그래서 잘릴 염려도 없고 설사 잘리게 된다고 해도 후회는 없다. 최선을 다했으니까, 비록 간혹 꼼수(챗지피티)를 쓴다 해도 최소의 에너지로 최대의 성과를 거두게 됐으니까, 그러므로 나는 만족한다. 만족은 재미를 충전해 준다. 끊임없이 일할 수 있는 기반을 스스로 제공한다.


일 외에 관심사는 오직 책이다. 얼마 전까지 레고에 미쳤지만 레고는 잠시 옆으로 밀어놓았다. 몇 개월 동안 소홀히 했던 책들을 다시 돌아보는 중이다. 책장에 꽂힌 작품 중에서 손이 가는 것들을 꺼내는다. 그리고 나빠진 눈을 보호하기 위해 인공조명을 최대 밝기로, 그리고 가용한 조명을 독서대 앞으로 집중 배치한다. 그리고 공격하는 게 아니라, 느리게 초원을 거닐 듯이 천천히 글자에, 마치 낭독하듯이 언어의 세계에 빠진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활동이 아니다. 독서는 에너지를 다시 채워준다. 딱 그만큼만, 책을 읽은 느린 시간만큼만 채워주어서, 그만큼의 시간에 다시 책을 읽을 때 에너지를 환원시켜 준다. 그 순환이 책을 놓지 않도록 만들어준다. 


글쓰기는 책을 읽는 것과 다르다. 이 활동은 에너지를 완전히 소모해버리는 일이다. 그래서 욕심을 내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키보드와 생각이 제멋대로 달아나는 것을 움켜잡아, 마치 날아가는 새를 잡아채듯이(그런 경험은 없지만...) 분주하게 무엇이든 늘어놓는다. 그래야 에너지를 최소화할 수 있다. 그것이 꾸준하게(?) 내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는 일이 아닐까?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도움은 안 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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