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서 증발해버린 언어들을 찾아서
가끔 나는 목적 없이 오직 순수한 증류수처럼 맑은 마음으로 글을 대하고 싶다. 하지만 그 근본이라는 세계는 나로부터 너무 멀어졌고 아무리 손을 뻗어도 잡을 수 없는 신기루 같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저 나는 매일 아침 인공지능이 설정해 준 스케줄에 따라 충실하게 과업을 달성하며, 타자가 만든 질서에 굴복한 자에 불과하다. 세상이 지배하는 법칙을 절대 거부할 줄 모르는 자본주의의 물든 노화된 불순물이다.
목적이 지배하는 세상에선 순수는 그저 값싼 치장일 뿐이다. 그것은 거짓으로 포장된 내용물 없는 예쁜 포장 지 같은 순수다. 이렇듯 생각을 질서 없이 내뱉기만 하는 글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쓰는 나조차도 의미를 회복해 낼 수 없다면, 읽는 사람은 어떨까. 독자를 기만하는 글이 아닌가.
그래, 나는 그곳에 있었다. 분명히 나는 그곳에서 내가 원하는 대로 활자의 공장을 만들고 아침부터 밤까지 생산했다. 하지만 그것은 맑은 날의 눈부신 소나기처럼 순식간에 증발해 버렸다. 바닥엔 성마른 갈라짐만 남았다. 그 갈증의 균열이 새겨진 강바닥에 주저앉아서 사막의 모래알 같은 목소리로 한때 존재했던 내 정신적 분신을 동경하고 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이란 대체 무엇일까. 나는 5분 전에 어떤 분명한 동기가 있었다. 그래, 그 동기가 이곳 브런치의 에디터를 클릭하게 이끌었다. 그것은 정수리를 내리누르듯 강력한 에너지가 내뿜은 자장의 흐름이었다. 마치 태양 공전 궤도에 속수무책으로 끌려다니는 지구처럼 나는 애써 그곳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솔직함이 싫다. 솔직하게 내 과거를 낱낱이 드러내는 일이 이제 지친다. 그것은 한 편의 드라마이자 어쩌면 단편 소설쯤으로 취급될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은 철저히 내 주관적 세계관 안에만 재생된다. 그러니 완전히 그 줄거리를 뿌리째 뽑아버릴 필요가 있다. 과거라는 인장이 찍힌 글들을 모두 모아, 한 번에 소각하고 싶다. 내가 요즘 즐겨 쓰는 바이브 코딩처럼, 딸깍 한 방에 완전히 끊어내고 싶다. 하지만 아무리 지우개로 벅벅 지워도, 그것은 계속 살아있다. 내 안에, 내가 스며든 모든 공간에, 내가 숨 쉬었던 모든 시간 속에, 흐릿한 꿈속의 한 장면처럼 남아있다.
인공지능의 세상, 인공지능이 리드할 세상, 인공지능이 새롭게 창조할 인간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이 만든 문장엔 무엇을 담아야 할까. 복호화할 수 없는 완벽한 문장, 오직 한 사람에게만 기거하는 영혼 같은 문장이란 무엇일지 세계가 고요히 잠들어가는 밤의 시간에서 가만히 생각해 본다. 위압적인 파도가 내면에서 용솟음치지만, 나는 한없이 차분하고 안정하다고 나를 속인다. 인공지능은 적어도 내 가면을 들춰 볼 수는 없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