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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ㅈ Jul 30. 2016

취준생 넋두리

식어버린 커피잔 같은 내 일상

 가끔 사는 게 왜 이렇게 재미가 없을까, 생각한다. 공연도 보고, 강연도 듣고, 이런 생활이 재밌긴 한데 그것도 한순간이고. 그렇다고 연애를 해볼까 싶다가도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인지(필요할 때만 찾고, 필요하지 않을 때 상대방이 날 찾으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떠올리면 연애는 무슨 연애야, 하고 마음을 접게 된다. 지금은 내 인생에 로맨틱이 찾아온다고 믿기보다, 누구나 다 로맨틱을 경험할 수는 없다,라고 생각하는 타입이 됐다. 원하던 대로 곧 취직에 성공한다 한들, 그때라고 내가 꿈에 그리던 삶이 시작될까, 이에 대해서는 역시 회의적이다.


 대학에 합격하고도 2-3년 정도는 정말 좋았다. 말 그대로 자유가 찾아왔으니까. 아무리 펑펑 놀아도 그 나이는 원래 그렇게 놀 시기였으니까. 그런데 직업을 결정할 때가 다가오니 또다시 모든 게 스트레스다. 과연 직업을 결정짓고 나면, 안정적인 길을 걷게 되면 그 이후엔 살만해질까? 내 마음도 여유로워질까?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에너지를 쏟을 힘이 생길까? 연애다운 연애를 해볼 수 있을까? 엄마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더 너그러워질까? 궁금하다. 정말 궁금하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끝을 알 것도 같아 씁쓸하다.


 지난겨울, 뉴욕에서 돌아오던 날 한국 땅을 밟으며 제일 처음 했던 생각은 전혀 생뚱맞은 것이었다. '해외취업을 해야겠다', '그 사회에 속하고 싶다', '어떤 일을 하든지 존중받으며 살고 싶다.' 내가 속하지 않은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날로 갖가지 해외취업 준비와 정보 수집을 시작했고, 그동안 미루던 영어공부와 첫인사를 했다. 학원 체질은 영 아닌 것 같아 하루 십분, 필리핀 강사보다 두 배는 비싼 미주 영어강사와 대화를 나누는 전화영어를 끊었다. 하지만 해외취업 정보를 알아볼수록 소박하기만 하던 내 꿈은 높은 장벽으로 가로 막혔고, 글로벌한 유목민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비자 문제, 거주문제 등 생각보다 신경 써야 할 것이 훨씬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다시 한 달쯤 지나고 나니, 온몸을 감싸던 '뉴욕 스피릿'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나는 한국 생활에, 이 부족함 없는 서울살이에 그저 만족하며 다시 침대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게으른 대학생이 되었다.


 어느덧 대학교 4학년, 쉴 새 없이 몰려드는 기업 공채 소식과 내 주변을 가득 채우는 취업 정보에 정신이 아득해지고, 한편 몰려드는 기회에 정작 준비되지 않은 나 자신을 볼 때마다 많이 위축되고, 속이 쓰렸다. 선망하는 기업에 빈자리가 났음에도 선뜻 지원하지 못하고 망설이기를 수십 번, 결국 다음을 기약해야지. 하고 마는 나. 어쩌면 다시 겁을 먹은 건지도 모르겠다. 여자 혼자 뉴욕 한복판에서 열심히 쏘다니기를 밥 먹듯이 하던 그때의 용기는 다 어디로 갔는지.


 해외취업은 현실일까? 내가 그 정도로 지금 이 생활에 만족 못하는 것도 아니잖아. 자꾸 안주하기를 반복한다. 사실 어떤 게 최상의 선택인지 잘 모르겠다. 이것저것 다 경험해보고 싶지만, 때로는 그 선택 하나하나가 나를 좌지우지 흔들어놓는 게 무서워 그냥 사회가 정해준 길을 가고 싶어 진다. 그 길이 힘들더라도,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닐 테니까. 결정 장애를 앓고 있는 누군가와 또다시 서로 보듬고, 위로해주는 일상이 나를 기다릴 테니까. WEST, 워킹홀리데이 등 해외에서의 취업, 또는 생활을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는 의외로 많았다. 조금만 더 용기 낸다면, 한 번만 꾹 눈을 감고 질러버린다면 나는 아마 이미 비행기를 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고, 지금 이 자리에 앉아 키보드 자판만 두드린다. 나는 언제 '지를 수 있을까', 생각만 하면서.


 오랜만에 십년지기 베프에게 전화를 걸었다. 항상 무기력하고 우울할 때만 전화를 걸어서 늘 내가 힘들어한다고 생각하는, 그래도 늘 마음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내 친구. 오늘은 내게 이런 명언을 남겼다. "즐거운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지 말고, 네가 먼저 즐거운 일을 찾아 나서봐." 이 친구는, 나보다 사람도 적게 만나고, 책도 덜 읽고, 여행도 많이 안 했는데 어쩜 이렇게 지혜로운 말들을 적재적소에 툭툭 내뱉을 줄 아는 걸까. 그래, 내일은 사람들을 만나러 나가보자. 모레는 노트에 메모해두었던 전시를 보러 나가보자. 대단한 책임감을 요하는 일이 아니라도 사소한 것 하나씩, 그렇게 일상을 채워가다 보면 무기력도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취준생이라는 후진 굴레에서 잠깐이라도 숨통이 트이게. 나에게 그렇게 조금만 더 살갑게 대해주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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