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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Jan 18. 2024

주머니 속의 장르 17

안부는 없어도 위안이 되기에는 충분한


안녕하세요 나는 양말입니다. 왼쪽과 오른쪽이 한 쌍이고 우린 합쳐서 양말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한쪽만 있어도 양말이고 쪽 다 있어도 양말이라고 합니다. 왼쪽과 오른쪽이 있는 건 장갑과 비슷하지만 우린 좌우가 대칭이며 어느 쪽에 끼워지더라도 불만이 없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우리 양말은 불만이 적습니다. 가장 겸손한 위치에서 두 발을 따뜻하게 감싸며 다정함을 발휘합니다. 양말은 누구에게나 모두에게 똑같은 사명으로 최선을 다합니다. 양말이 바라는 환경은 평화와 고요입니다. 주머니처럼 외부로부터의 이물질을 받아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깊은 물과 같이 계속되는 고요함 속에서 임무를 수행하면 됩니다. 아주 간단한 일이죠. 하지만 간단한 일은 그렇게 만만하지만은 않습니다. 하루 손님이 겨우 명 남짓한 책방을 운영하는 것처럼 때론 무료하고 때론 목표가 희미해집니다. 지치기 쉬우며 머나먼 우주의 외로운 별과 같은 소소한 아름다움만 남은 쓸쓸함을 이겨내야 합니다. 숙명의 몫을 견뎌야 하는 일입니다. 

양말은 무심한 듯 무심하지 않은 듯해야 패션의 진정한 고수가 됩니다. 그런 면까지도 책방은 다르다고 말할 수 없겠죠. 안녕하세요 지금부터 난 책방입니다. 양말과 책방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지점에서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난 그 누구의 눈길이 닫지 않은 곳에서 책방의 일원으로 열심히 존재하고 있습니다만 그것을 아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듯합니다. 저기서 한가로이 수채화를 그리는 책방 주인도 날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사라지면 책방은 사라지는 것인데도 말이죠. 

양말과 책방은 깊은 곳에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린 형제이며 친구이죠, 집에 돌아가 양말을 벗는 순간에도 책방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양말은 잘 세탁하고 정성스럽게 널고 개어야 합니다. 양말의 한 올 한 올에 세심함을 잊지 않길 바랍니다. 경제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사라지는 동네 책방 이야기를 한 번쯤 들어봤겠죠? 누군가 양말을 거칠게 다뤘을 때 책방은 사라집니다. 또 어느 책방이 열심인 건 양말이 건강하다는 표시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안부는 없어도 위안이 되기에는 충분한 그런 사이가 세상에는 비밀처럼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김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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