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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Feb 15. 2024

주머니 속의 장르 20

안나 스콧



안나 스콧이 서울에 나타난 건 24년 봄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배우로 알려진 그녀가 서울의 끝 노원구 공릉동에서 커피를 마시고, 산책한다는 이야기를 쉽게 믿을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녀는 늘 혼자 다녔고 보이는 카페에 앉아 라테를 마시며 책을 읽거나 하품도 하고 심지어는 잠시 졸기도 했다. 눈에 띄는 외모를 가진 이방인이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롭게, 이토록 자유롭게 지낼 수 있었던 건 아마도 그녀의 평이한 태도가 크게 한몫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녀의 공식적인 스케줄은 인터넷 검색만 해도 쉽게 알 수 있다. 안나 스콧은 현재 영국의 작은 도시 노팅힐에서 로맨틱 코미디로 유명한 워킹타이틀의 새로운 야심작을 촬영 중이며 남편과의 마찰로 인해 인근의 휴양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하단에는 해변에서  한가로이 셰이크를 마시는 파파라치의 사진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기사는 거짓말이다. 어떤 경유인지 모르게 그녀는 공릉동에서 진짜 휴가를 만끽하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카페에서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산책한다. 가벼운 운동복에 캘빈클라인 후드를 입고 선글라스도 없는 그녀의 표정은 너무나 평온해 보였다. 


공릉동엔 표정이 평온한 걸로 유명한 사람은 안나 스콧 말고도 한 사람 더 있다. 택돌은 작은 책방에 앉아 인스타에 올릴만한 사진을 찾고 있었다. 출근길 공원을 지나며 사진 두어 장을 찍었는데 그중 하나를 인스타 피드에 올릴 생각이었다. 대충 찍은 듯했지만 그의 사진은 항상 구도, 햇빛의 위치, 광량과 피사체의 거리 등을 고려한 흔적이 있다. 파란 하늘과 벚꽃, 그 아래 모여든 사람이 모두 평범한 듯 아름다웠다. 택돌은 그 사람들 사이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신체 비율의 외국인 한 사람을 발견하고 사진을 확대해 봤다. 캘빈클라인 후드를 확인할 즈음 책방의 문이 열렸다. 반가운 첫 손님, 아니 택배기사 아저씨 아니, 그의 등 뒤로 낯설지 않은 얼굴의 아름다운 이방인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책방으로 들어왔다. 택돌은 안나 스콧의 미모 압도되었다. 인류 역사 이전에도 돌이었고 지금 현재도 돌이고 앞으로도 영원히 돌 말고는 한 번도 다른 것이 되기 위한 생각도 해본 적이 없는 영원불멸의 돌덩이처럼 서서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녀는 한국말에 관심이 많았다. 예쁜 얼굴에 비해 다소 민망한 목소리로 아녕하세요라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잠시도 쉬지 않고 이야기를 했다. 예상외로 말이 많은 그녀는 거의 모든 K드라마를 섭렵하고 있었다. 택돌은 하루치의 사회성을 끌어 모아 그녀의 어눌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미소를 짓고 가끔 아 정말요?라는 말을 하며 속으로는 평소의 침묵이 너무나도 그리울 뿐이었다.



by 김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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