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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Feb 14. 2024

주머니 속의 장르 19

시력 측정



멀리 보기 위해서 바다로 가야 합니다

깊이 듣기 위해서 눈을 감아요


시인의 직업은 의사입니다

청진기를 대고서 눈 감고

이렇게 말합니다


5일 치 시집을 처방합니다

아침 점심 저녁 맛있게 식사하시고

30분 후에 시 하나씩 꺼내 읽으세요

그리고

멀리 보는 연습을 하세요

그러면 좋아질 겁니다


주차금지 나무 지붕 실외기 아파트 창문 옥상


시선이 닿는 가장 먼 곳까지 보기로 합니다

건물 옥상의 갈라진 틈 사이로 

기어오르는 슬픈 눈을 가진 장님 개미와 

지나가던 민달팽이가 인사합니다

뭐라고 하는지 듣기 위해 눈 감아보겠습니다


그럼 들어보겠습니다


장님 개미가 말합니다

하루하루 만만치 않네요 앞이 캄캄해요

민달팽이도 말합니다 

나도 그래요 월세가 많이 걱정돼서 집을 나왔어요

둘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잠시 있다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한 달 전에도 말했던 기억이 나네요

모두가 그렇게 합니다


멀리 봅시다 그럼 괜찮아집니다

잘 들읍시다 훨씬 나아집니다




김택수

instagram @illruwa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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