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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지 Mar 11. 2020

적금을 깨고, 미용실을 예약했다.

위기의 상황을 극복하는 자는,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다. 

600만 원. 

누군가에게는 큰돈이고, 누군가에게는 정말 '애개?' 하는 돈이다.  하지만 이 돈은, 내게는 결코 작지 않은, 벌써 거의 1년간 조금씩 모았던 내 소중한 적금통장 전액이었다.  사실 이 적금 통장은 어떤 통장보다 더 소중했는데, '내년 가을쯤에는 여행을 꼭 가겠노라'라며  스스로에게 약속한 보상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그 통장을 깼다. 당장 몇 백만 원이 아쉬워, 4.5%의 고금리(?) 제품을 내 손으로 덜컥 해지해버렸다.  그리고 제일 먼저 그 돈으로 한 것은 '미용실 예약'이었다. 




나의 프랑스 생활 이야기

나의 적금 해지 사연에 앞서.. 잠시 프랑스 생활을 회고하는 짧은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내가 한국 돌아가기 직전이었던 것 같다. 전에 이야기했듯이 회사 생활 막바지는 엉망진창, 극에 달한 스트레스로 몸도 마음도 다 지쳐있었다. 여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부동산 사기를 당했다. 100년도 더 된 집에 대하여 집주인은 온갖 불어로 된 서류를 들이밀며, 변액을 요청했고 그 돈이 거의 천만 원에 달하는 돈이었다.  그 당시 사업자 비자를 발급받아 지내던 나는, 세금 폭탄을 갑자기 맞아 파리에 있는 한인 세무사도 몇 번이나 찾아갔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주말이면 신혼부부 스냅사진 촬영 알바를 했다.  

그렇게 두세 달 -몸무게는 40킬로 초반대까지 빠졌었고, (지금의 나는 50킬로대다) 남들은 귀국길에 한 보따리 씩 사 오는 프랑스 제품들 대신, 서류로 가득한 캐리어 달랑 한 개만 들고 돌아왔다.  "빠뜨려서는 안 되는 목록"에 여느 20대 아가씨들의  '꼭 사야 하는 화장품 목록' 대신, '준비해야 할 서류 목록과 제대로 비용을 영수받기 위해 연락해야 하는 사람들 목록'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엄마랑 종종 이 시기 때 얘기를 하는데, 엄마는 내가 차라리 프랑스 생활을 마음껏 즐겼으면 어땠을까 하고 아쉬워하신다. 나도 그렇다. 살면서 언제 가족 돈 펑펑 써가며 유학생활을 즐길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는 것도 매우 감사한 복 받은 상황이다. 하지만 내가 시간을 되돌린다 하여도, 프랑스 생활을 오롯이 즐기지는 못할 것이다.  애초에 내 성격이 일 안 하고, 돈 안 벌고, 아끼고 성장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성격이니까.   그래서 그 시기를 후회하지도 않고, 몸도 마음도 고생했지만 충분히 성장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남들이 보통 40대 때나 운이 안 좋으면 겪을 일들을, 22살 어린 나이에 폭풍처럼 몰아쳐서 겪어서 그렇지, 살면서 이런 문제 들은 한 번씩 마주하곤 한다.  그래서 언제 써먹을지 모르겠다만, 아마 내가 한국에서  프랑스 부동산 법과 세법을 가장 잘 아는 20 대일 테니 이 정도면 꽤나 큰 배움이 아닌가 싶다. 



애초에 내 성격이 일 안 하고, 성장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격이라 - 사서 고생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할 것이다. 



하지만 딱 하나 후회하는 것이 있다.  프랑스 생활 막바지 몇 달을 '위기'라고 표현한다면, 그 위기를 슬기롭게 보내지 못한 나의 태도에 있다. 그때는 상황이 나를 옥죄여 오면 옥죄여 올 수록, 허리띠를 강하게 졸라 메고 더 긴장하고 더 열심히 하는 것이 그 순간을 이겨내는 힘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렇게 했기에 그 말도 안 통하는 이방국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돌아온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허리띠를 잔뜩 졸라맨 후에 남은 것은, 지나치게 빠진 살과 잔뜩 상한 피부, 한 층 길어진 다크서클과 수습이 안될 만큼 상한 머리였다.  사실 내가 힘차게만 이야기했더라면, 영웅담처럼 줄줄이 읊었을 수도 있을 나의 파리 생활기는 - 잔뜩 지쳐버린 삶의 체험기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내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기왕 허리띠를 졸라맬 것이라면 예쁜 허리띠를 살 것 같다.  아무리 바쁘고 정신없어도, 머리를 드라이하는 시간은 꼭 가질 것이다. 조금의 여유가 생기면 일단 나중을 위해 아끼는 것이 아니라, 그 여유를 충분히 만끽할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작은 상황들을 하나하나 수습할 때마다 나를 충분히 칭찬하고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길 것이다.  위기를 패닉과 불안으로 '버텨내는'것이 아닌, 긍정과 침착함으로 '극복해내'는 것이다. 


기왕 허리띠를 졸라맬 것이라면 예쁜 허리띠를 사겠다. 


위기를 패닉과 불안 대신 긍정과 침착함으로 극복해내겠다. 



적금을 깨고, 미용실을 예약하고. 

여하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렇다. 나는 적금을 깼다. 코로나 발로 27년 인생 최대의 재정 위기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름 발 빠르게 잘 대처를 해서, 제일 덩치 큰 사업장 하나를 다른 분께 양도하고 규모가 살짝 더 작은 사업장을 계약 후 공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갑자기 양수인이 그 사업장을 계약 포기하겠다고 나와버렸다. 다른 사업장 잔금은 치러야 하고, 받을 수 있는 대출은 다 받았었고 공사 일정도 잡아가고 있는 와중이었다.  


약간 생각이 아득~해지면서 왠지 파리 생활이 오버랩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뭔가 스케일은 훨씬 커진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막막한 상황이었다.  이래 저래 계산해보니 돈이 부족한 것은 맞고, 있는 대출 없는 대출 다 끌어 쓰니 그래도 돈이 아주 조금 부족했다. 그래서 별 수 없이 적금을 깼다. 얼마 안 되는 돈 맞고, 사실 이래도 여전히 좀 부족한데 그래도 적금을 깼다. 그것이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몇 가지 안 되는 수순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리에서 지낼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내가 적금을 깨고 제일 먼저 한 일은 미용실 예약이었다. 분명 내가 갑자기 위기에 처한 것은 맞다. 하지만 위기도 정의 내리기 나름이다. 나는 극복할 수 있는 위기를 보내고 있다.  그것도 말 다 통하는 한국에서 말이다!!! 

그렇다면 기왕 극복할 것, 예쁜 머리로 당당하게 버텨내야겠다 싶었다.  새 사업장을 잘 갖추려면 여기저기 미팅도 많이 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더더욱 멀끔해 보여야겠다 싶기도 하고,  새 양수인을 찾던 임대인과 딜을 하던 - 힘찬 모습이 축 쳐진 모습보다 낫겠다 싶었다. 


그리고 침착하게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해나갔다. 소상공인 코로나 지원 대출 신청을 하고, 현재 계약된 사업장은 단기 임차인을 두어 적자가 나는 상황을 막았다. 요즘 당장에 수입이 적어진 관계로 다시 일자리를 구했는데, 인테리어 회사인지라 새 사업장에서 내가 시공 시 유의해야 하는 부분들을 틈틈이 계속 여쭤보고 있다.  

나랑 비슷하게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프리랜서와 소상공인들과 소소한 모임도 가지고 있다.  정보도 주고받으며 이 시기를 같이 이겨내는 것이다.  



위기는 언제나 온다. 

결국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내는 것은 마음의 여유 문제다.  똑같이 허리띠를 졸라 매더라도, 5분 정도 더 고민해서 예쁜 허리띠를 골라서 졸라맬지, 그냥 눈에 보이는 거 아무거나 집어서 졸라 매고 바로 일을 시작할지. 이 행동의 차이는 상황보다 마음의 여유에서 온다. 

객관적으로 다 따져 보면, 좋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요즘의 내 생활이지만 - 역으로 생각하면 이리저리 다 따져봐도 최악의 상황은 아니다.  방법은 있을 것이고, 걱정보다는 침착한 것이 더 중요하다.   

이 시기를 다 보내고 나면, 나는 이 시기를 어떻게 추억할까. 후회와 낙담으로 채울까? 

글쎄. 이 시기가 어떻게 지나갈지를 봐야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굉장한 극복기'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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