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 사시던 집은 숲처럼 우거졌다. 베란다는 발디딤 없이 화분으로 가득 찼고, 할머니가 그 화분들을 가꿀 때면 은은한 미소가 연신 할머니 얼굴에 비쳤다.
그리고 그 미소는 엄마에게 전해졌다. 당신은 식물 저승사자라며 한사코 식물 기르기를 거부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엄마의 집도 식물로 가득 찼다. 물론 뒤늦게 식물 기르는 맛을 알아버려 할머니의 베란다보다는 훨씬 부족했지만, 어찌됏건 식물로 우거진 집이 되었다.
그리고 여기 내가 있다. 조금 늦게 식물 기르기에 빠진 엄마에 코웃음치곤 했는데, 나 역시 그 기간이 길게 가지 않았다. 식물을 처음 기르기 시작한 것은 가게를 운영하면서부터다. 처음에는 무언가 허전함이 보이는 공간을 풍성하게 하기 위해 화분을 하나둘씩 사기 시작했다. 그리고 행여나 화분들이 죽을까, 매일 출근길에 돌보는 것부터 시작했다. 자바, 황칠, 박쥐란. 키우는 화분들의 이름을 외우고 매일 흙이 행여 말랐을까, 노란 잎이 있진 않은가 살펴봤다. 나의 첫 식물 기르기는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걱정과 애정이 뒤섞인 그런 것이었다. 식물들도 내 마음을 알았을까. 시일이 얼마 지나지 않아 선명한 녹색빛의 새싹들이 피어났다. 작지만 분명하게 고개를 들고 있는 새싹들을 마주하였을 때 비로소, 엄마와 외할머니가 이해가 되었다. 정성과 마음을 다하면 이를 여지없이 이해해주고 그 답신을 보내는 화분들. 우리 주변에는 이토록 즉각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보상하는 무언가가 없다. 그 작은 이파리에 내 지난 걱정과 호기심이 싹 내려가는 듯했다.
그런데 식물은 또 재밌는 것이, 내가 관심을 주지 않으면 금세 싫은 티를 냈다. 한동안 일이 숨쉴틈 없이 바쁜 적이 있었는데 그 바쁜 며칠 새에 식물들은 풀이 죽어 버렸다. 그리고 일이 너무 바빠 화분들을 가게 알바 친구에게 맡긴 적이 있었는데, 화분들은 그것이 너무 싫었었나 보다. ‘응애’라고 하는 이름부터 맘에 안 드는 해충이 옮아 그 파릇파릇했던 이파리들이 하얗게 덮여버렸다. 이 몹쓸 해충들이 키우던 화분들을 전부 마르게 한 후에야 나는 다시 화분들을 돌볼 수 있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내가 직접 돌보기 위해 부랴부랴 가게에서 집으로 옮겨왔을 때는 얼마나 슬펐는지 모르겠다.
그 다 죽어가는 식물들을 살리기 위해 제일 처음으로 한 것은 외할머니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으레 한 번씩 겪는 성장통이라는 듯이 대수롭지 않게 전화를 받으셨다. 모든 가지를 과감하게 치고, 혹여 해충이 남아있을까 깨끗이 샤워시키라 하셨다. 내 살을 깎아 내는 듯한 미안함에 해충이 붙은 부분만 달랑 잘라내니, 허리까지 과감히 가지를 잘라내라고 하셨다. 그렇게 할머니 말씀대로 하니 풍성하고 아름다웠던 잎은 어디 가고 맹숭맹숭 앙상한 가지들만 남았다.
“이제 기다려”
할머니의 마지막 조언은, 일단 무작정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식물이 건강할 때 내가 조금만 관심을 줘도 금세 새싹을 피우던 때와는 달랐다. 계절이 지나고, 내년 봄을 기다리면 반드시 살아난다고 말씀하셨다. 죽었는지, 죽어가는지도 모르겠는 화분들에 매일 아침 관심을 주며 다시 살아나는 그때만 그냥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 내게 할머니가 풍성한 철쭉 화분을 보여주셨다. 그러고 또 이 철쭉은 몸통 가지밖에 남지 않았는데 일 년이 흘러 다시 꽃을 피웠다고 얘기해주셨다. 풍성하게 살아난 철쭉을 보며, 나도 내 죽었을지 모를 화분들에 미안함과 애정을 담아 매일 아침 보듬어본다.
식물 기르는 마음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베푸는 만큼 돌아오는 결과, 무관심해지지 않도록 일상에 균형을 잡는 것, 그리고 다시금 피어날 것이라 희망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이다. 이 단순한 마음에도, 할머니는 -, 엄마는-, 그리고 나는- 식물 기르기에 푹 빠져버렸다. 식물을 가꾸며 조용해지는 순간에는 우리 일상에 결핍된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다. 그래서 다들 그렇게 말없는 식물을 어여삐 기르나보다. 몇몇 화분은 살아났지만 여전히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겠는 화분이 있다. 나는 오늘도 내일도 할머니댁 철쭉을 생각하며 매일 20초 정도의 관심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