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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min Jan 19. 2023

딸의 결혼식


전화가 왔다. 10년 전에 연락을 끊었던 딸아이였다. 어떻게 알고 연락을 해왔을까. 그렇게 꼭꼭 숨으려고 했는데 요즘 같은 세상에는 숨는 것도 여의치가 않다. 딸아이는 결혼을 한다고 했다. 그래도 자리는 채워주는 것이 아버지로서의 마지막 도리가 아니겠냐고 했다. 맞는 말이지만 염치가 없다. 난 그 자리에 앉을 만한 자격이 못 된다. 딸아이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단호했다. 그래서 난 알았다고 얼버무렸다. 다시 연락드리겠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기 너머로 연결되었던 잡음이 사라졌다. 한동안 전화기를 귀에서 떼지 못했다. 귀에서 딸아이의 마지막 말이 웅웅 거렸다. '잘 지냈니?', '어떻게 만난 남자니?', '니 엄마는 잘 살고 있지?', '그동안 어떻게 살았니?, '어려운 일은 없었니?' 끝없이 하고 싶은 말이 입 안에서 맴돌았다. 하지 못하는 말들은 코 끝을 시큰하게 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갑자기 10년 간 몸 안에서 잘 발효된 감정이 끓어 넘쳤다. 수없이 울었지만, 그래서 말라 버렸는 줄 알았지만 그렇지가 않았다. 눈물 없이 온몸으로 흐느꼈다. 아무도 없는 집 안에서 난 소리조차 낼 수가 없었다. 그건 예의가 아니다. 10년 동안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감춰왔던 감정을 토해낼 수 없다. 버려진 사람은 내가 아니라 아내와 딸이기 때문이다.



며칠 후 다시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 다음 주 토요일 11시예요. 자리는 비워둘게요. 일찍 오실 필요 없어요. 시간 맞춰서 오세요. 그럼 끊어요."


딸아이는 한동안 말이 없다. 한참 뜸을 들인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식 끝난 후에는 조용히 식사하시고 돌아가시면 돼요. 그런데, 지금… 어디 사세요?" "식장 가까운 곳에 있구나." "그래요. 그럼 그날 식장에서 봬요."


전화는 끊겼다. 그런데 그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딸아이가 아무 말하지 않았을 때의 적막한 잡음 말이다. 딸아이가 사는 공간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한참을 숨을 고르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딸아이의 어릴 적 버릇이다. 수능이 끝나고 대학에 원서를 낼 때에도 그랬다. 자기는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말했을 때도 크게 숨을 고른 후 이야기를 시작했었다. 내가 기억하는 딸의 흔적이다. 그리고 나의 흔적이기도 하다. 아마도 딸아이는 잘 모르겠지만 한숨 고르는 건 내가 버릇처럼 하던 행동이었다. 난 아내에게 이야기할 때면 항상 딸아이처럼 크게 숨을 고른 후에 말을 이었다. 나와 아내는 대화가 많지 않았다. 가장 어려운 이야기를 해야 하는 순간에만 대화를 했기 때문이다.



일주일이 남았구나. 내일은 나가서 정장 한 벌 사야겠다. 아내와 딸을 떠나올 때 난 집에 있는 내 짐을 그대로 두고는 입고 있던 옷, 매고 있던 가방, 문 앞 현관에 벗어둔 구두만 걸치고 도망치듯 집에서 나왔다. 그리고 다른 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던 10년 동안 정장이 필요한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지금도 난 옷 한 벌, 구두 한 켤레, 외투가 전부다.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딸애 결혼식이니 최고급으로 하나 뽑아 입고 가야겠지. 가진 돈이 없으니 은행부터 가서 대출을 받아야겠다. 딸애에게 얼마 되지 않은 금액이지만 이것만이라도 전해주고 와야겠다. 구두도 하나 사야겠구나. 낡아빠진 저 구두를 신을 순 없으니. 내일은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여야겠다.


갑자기 울컥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순간이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내가 이런 생각을 하며 좋아해도 되는 것인지 죄스런 마음이 든다. 갑자기 결혼식 장면을 상상했다. 10년 동안 남인 듯 살아온 아내와 딸을 향해 앉아있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난 결혼식 내내 딸애의 발 끝만 보고 있다. 딸애가 날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눈을 마칠 수가 없어 사위에게 눈을 돌린다. 악수를 하고 포옹을 한 후 난 또 말없이 자리에 앉는다. 식이 끝나고 기념 촬영을 하는 순간에는 의자에 앉아 카메라를 쳐다본다. 카메라 렌즈에 비치는 딸애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 눈에 힘을 준다. 촬영이 끝나고 난 조용히 식장을 빠져나온다. 무엇을 할 수 있나, 난 이제 아내와 딸에게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다.



"어깨 펴고 편안하게 서보세요."


집 근처에 있는 양복점에서 정장을 맞추는데, 뭐 이렇게 요구하는 게 많은지 시작부터 피곤이 밀려온다. 저 여자가 내 가랑이 사이에 자를 밀어 넣고는 느낌을 말하라고 했다. 점점 위로 올라오는데 됐다며 그쯤에서 하자고 말했다. 10년 전엔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하였던 때라서 매일 사람들과 술을 마셨었다. 몸은 금방 쌀 한 가마니 넘게 불었다. 지금은 그때에 비해 반이나 슬림해졌다. 슬림은 무슨 슬림, 이리저리 둘러봐도 살은 없고 뼈와 가죽만 남았다. 모레 찾으러 오란다. 아무렇게나 찢겨버린 전표 딱지를 받아서 나왔다. 30여 년 전 아내와 결혼했을 때도 그랬다. 그때도 형편이 여의치 않아 동네 양복점에서 정장 하나 맞춰 입고 식을 올렸었다. 그때 받은 표 딱지에 비하면 많이 고급스러워졌다. 다시 내 정장 사이즈가 눈에 들어왔다. 이런 모습으로 아내와 딸 앞에 나타날 수는 없다. 처자식 버리고 떠난 사람이 잘 살지는 못할 망정 이렇게 삐쩍 골아서 나타나면 더 마음이 아프겠지? 살을 좀 찌워야겠다. 은행 ATM에서 150만 원 대출을 받다. 정육점에 들러 고기를 샀다. 한 근을 혼자 다 구워 먹었다. 소주도 한 병 비웠다. 그런데 아내는 잘 살고 있을까? 재혼은 했나? 안 했으니까 날 불렀겠지. 그렇겠지...


오랜만에 기름칠을 했더니 속이 말이 아니다. 일을 나가야 하는데 아침부터 화장실만 들락 거리고 있다. 이거 살찌려고 먹은 고기가 살을 빼가는구나. 윽, 음... 정육점에서 오래된 걸 판 거 아니여? 여기서 김포까지 가려면 한참 걸릴 텐데, 운전할 기운도 남아있지 않았다. 오늘은 쉬고 내일 공장에 들어가야겠다. 오늘까지 맞춰주기로 한 물량은 어떡하나. 이 사람들이 제대로 해서 내보낼 수 있을까? 걱정은 되지만 일단 김 씨한테 전화를 걸어서 오늘 맞출 물량 체크 좀 잘하고 내보내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오후가 되니 몸이 좀 괜찮아진 것 같다. 아무리 오래 일을 했어도 김 씨는 손이 야무진 사람이 아니다. 안 되겠다. 지금이라도 공장에 가봐야겠다. 늦은 오후라서 차가 많이 막혔다. 이러다가 물건 나가고 도착하겠단 생각에 이리저리 차선을 옮겨 다니며 속도를 냈다. 겨우 공장에 도착했다. 시동은 끄지도 않고 냅다 뛰어가서 납품 물건을 확인했다. 역시나 마감이 엉망이었다. 난 김 씨를 불러서 이러면 어쩌냐고 오래된 똥차가 내는 엔진 마냥 신경질을 냈다. 김 씨는 되레 목청을 높이며 아니 이 정도면 됐지, 뭘 더하냐고 대들었다. 육십 먹은 영감탱이가 미쳤나.


“씨발, 됐어! 물건 다시 내려! 누구 밥줄 끊기는 거 보고 싶어?"


그제서야 꼬리를 내리고 물건을 죄다 다시 내렸다.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여섯 시 땡 치면 바로 퇴근이다. 그 이후로는 혼자 일을 해야 한다. 5시니까 한 시간이 남았다. 김 씨와 이 씨를 불러놓고 다시 작업 지시를 했다.


"쉬지 말고 일해. 아니면 월급 안 줄 거여."


거래처에 전화를 걸어서 내일 오전까지 맞춰주겠노라고 고개를 조아렸다. 전화인데도 난 이게 고쳐지질 않는다. 게다가 어렵게 잡은 거래처라서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그리고 김 씨를 조용히 공장 뒤로 불렀다. 냉장고에 숨겨둔 박카스 한 병을 꺼내다가 김 씨에게 건넸다.


"김 씨, 아까는 미안했어~ 알잖아, 내 성격. 욱해서 그런 거니까 마음 풀고, 오늘 밤에 같이 철야 좀 하자고. 내 혼자서는 저거 마무리 다 못해~"
"아, 됐어~ 니미 성낼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지랄이야."
"사정 좀 봐줘. 내가 김 씨 아니면 누굴 믿고 일하나."


김 씨는 조용히 박카스를 받아 마셨다.


"다음 주 토요일에 딸 애 결혼식이 있어. 그날도 공장 좀 잘 봐줘."
"그 지갑 속에 있는 꼬맹이가 결혼을 하나? 허허. 근데 연락 안 하는 거 아녔어?"
"응, 그랬지. 근데 어떻게 알았는지 얼마 전에 전화가 왔어, 결혼한다고. 나보고 결혼식에 와서 아빠 노릇 좀 해달라는 구먼. 허허"


난 왠지 쑥스러워 멋쩍게 웃었다.


"여튼 다음 주에 부탁 좀 해요, 김 씨"


김 씨는 다시 작업장으로 들어갔다. 난 담배를 물었다. 딸 결혼식 간다고 김 씨한테 자랑을 했구나. 김 씨도 가족 버리고 나와서 저렇게 사는데. 아차 싶었다. 무어, 김 씨는 새 마누라 얻어서 잘 살고 있지 않은가. 됐다. 그 정도 자랑도 못해? 마지막 한 모금을 쭉 빨고는 후 길게 뱉었다.


작업은 아침이 밝아서야 끝이 났다. 아침 일찍 트럭에 실어 내보냈다. 나도 이제 육십이 다 된 나이인데 아직도 젊을 때처럼 일을 하고 있구나 싶다. 이제 잠을 좀 자야겠다. 딸한테서 전화가 또 올까 하고 휴대폰을 한 번 더 들여다보았다. 통화 목록에 떠 있는 딸애 전화번호만 한참 쳐다보다 잠이 들었다.



공장에 한 번 들어오면 일주일 정도 지낸다. 납품 물량이 많지는 않지만 그나마 있는 일거리 마저 뚝 끊길까 봐서 비우질 못한다. 서울에 월세방 하나 잡아 둔 건 같이 사는 여자 때문이다. 지지리 궁상떠는 여자인데 오가다 만나서 이렇게 연을 이어가고 있다. 미숙이한테 전화를 해서는 양복 좀 찾아놓으라고 해야겠다.


"미숙아 난데, 거 동네 시장 입구에 있는 양복점에서 내 양복 좀 찾아다 놔. 모레 입어야 하니까 오늘 꼭 찾아놔야 돼. 내일은 자네가 집에 없잖어."
"거기 거기, 준수네 양복점 말이지? 알았어요. 찾아놓을게. 근데 양복은 왜?"
"주말에 입을 일이 있으니까 꼭 찾아다 놔."
"주말에 무슨.."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서 도중에 끊어버렸다. 결혼식만 갔다 오면 또 연락할 일도 없을 텐데 괜스레 말해서 잔소리 들을 필요가 뭐 있나. 그냥 뭐 지금처럼 다시 사는 거지.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는 화장실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많이 늙었다. 전엔 그래도 얼굴값한단 이야기도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차려입고 나니 심장이 쿵쾅 거린다. 새벽 3시에 무엇하고 있는지, 양복을  방문에 걸어두었다가 다시 입었다가 벌써 3번째다. 방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구두까지 신어보았다. 아이고, 이런. 신부입장할 땐 누가 같이 들어가나? 문득 생각이 결혼식장으로 뻗쳤다. 그런 이야기 안 한 것 보면 손 잡아줄 사람이 있거나 둘이 같이 들어가나 보지. 요즘엔 그렇게 많이들 하니까. 딸이 어릴 땐 손 잡고 식장에 들어가는 꿈을 자주 꾸었다. 욕심이 나는 건 아니다. 애비가 살아 있는데 딸이 혼자 들어가는 게 좀 마음에 걸리는 것뿐이다. 내가 감히 자식에게 무얼 바라겠는가. 불러 주는 것만도 감사하지. 요즘은 아빠도 대타를 쓰는 경우가 흔하다는데 괜히 돈 주고 대타 쓰는 것보단 내가 가서 대타하는 게 낫지 싶다. 그런데 자꾸 딴생각이 든다. 어느새 처자식과 밥을 먹고 있다. 뻘건 얼굴로 사위에게 술을 따라주며 내 딸 잘 부탁한다고 신신당부를 한다. 아내와 마주 보고 앉아 미안했다고 이야기한다. 다시 합치자고 부탁을 한다. 내 망상은 회복할 수 없는 10년의 세월을 무시해 버렸다. 10년 전, 합의 이혼을 위해 연락했던 아내의 연락처를 찾아 통화 버튼 위에 손을 올려 본다. 미친놈, 또 지랄이네. 전화길 획 던져버렸다. 무엇이 남았다고 이러는 거여. 그런데 10년 전 집을 나올 때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왜 도망치듯 그렇게 나왔을까. 화가 나기도 했지만 미안한 마음이 더 컸던 그때의 상황이 나도 모르게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으면서도 난 꽤 젠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내도 20년 같이 산 남편이 아니라 지나가다 만난 그런 인연처럼 차갑고 침착했었다. 이혼하고 1년 정도는 지방에서 생활했다. 괜히 같은 서울에 살면 오가다 만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지긋지긋한 집구석은 생각도 나지 않았다. 2년 정도 되니 생각이 나기 시작했는데 연락을 해볼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타지 생활에 지쳐서 아내가 있는 집, 아내의 품이 그리웠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난 고약하게 화를 냈다.


"그년이 잘못한 거지, 씨발. 서방 귀한 것도 모르고."


그렇게 소주 세 병을 비우고 잠이 들었다.



결혼식장에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을 했다. 어제 마신 술 때문에 눈은 빨갛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어제는 안 먹으려고 했는데 밥보다 술을 먼저 찾는 버릇이 어디 가겠는가. 그렇게 되어버렸다. 멀쩡한 척하려고 편의점에서 커피를 사서 벌컥벌컥 한 입에 털어 넣었다. 내친김에 비타민 음료도 사서 쭉 들이켰다. 식장 앞에 도착하니까 손발 가득 땀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들어가도 되는 곳이 맞나, 괜히 왔나 싶다. 30분 정도 남았는데 지금 가도 되나? 조금만 더 있다가 들어갈까? 아내랑 같이 서서 인사할 일도 없으니 그냥 10분 전에 가서 자리에 조용히 앉을까? 편의점 의자에 앉아서 이런저런 고민만 한참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지금 어디예요?"


아내다.


"어, 거의 다 왔어."
"오면 바로 들어와서 같이 인사 좀 해요."
"응, 알았어."


대화는 건조했다. 필요한 말이 끝나니 금방 끊어졌다. 담배 하나만 피고 들어가야겠다. 아니 담배 냄새나니까 그냥 가야겠다. 후딱 계단을 올라갔다. 많은 사람들이 홀을 채우고 있었다. 아내가 저쪽에 보였다. 넥타이를 이리저리 움직여 셔츠 정가운데 오게 다시 고쳐 매고, 새로 산 구두도 한 번 쓱 보고는 됐다 싶어서 아내 쪽으로 걸어갔다. 아내와 눈이 마주쳤다. 무표정한 내 얼굴은 후끈거렸고, 아내는 눈길을 돌려 아무 일 없는 듯 다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난 조용히 옆에 섰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사람들과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아내가 곁눈질로 내 표정을 보았나 보다. 좀 웃으란다. 난 젊을 때 그랬던 것처럼 허허거리기 시작했다. 아는 얼굴이 종종 보였다. 금세 식이 시작되는 바람에 식장 앞쪽에 마련된 내 자리에 가서 앉았다. 화장실 갔다 온 아내가 이어서 내 옆자리에 앉았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10년 전처럼 아내와 나란히 앉아 있으니 아무 일 없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시선은 정면을 응시하고 아내에게 말을 건넸다.


"허엄, 잘 지냈어?" "... 네"


한참 후에 돌아온 대답은 '네' 한마디뿐이다. 괜한 걸 물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이 사람 많은 곳에서, 그것도 식이 시작하기 바로 전에 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우리 정화는 어때? 예쁘겠지? 경황이 없어서 얼굴도 못 보고 그냥 들어왔네."


아내는 말이 없다. 무표정하게 앉아있을 뿐이다. 난 번쩍거리는 구두 끝만 쳐다보고 식이 시작되길 기다렸다. 사회자 양반이 입을 열었다.


"신랑, 신부 입장!"


결혼 행진곡이 울렸다. 얼굴을 돌려 딸애를 보기가 힘들었다. 마음은 벌써 돌렸을 얼굴인데, 최대한 얼굴을 돌리지 않은 채 곁눈질로 딸의 모습을 따라가고 있다. 저 끄트머리에 딸애의 모습이 흐릿하게 걸쳤다. 날 닮아 그런지 아주 잘 컸다. 키도 크고 늘씬하다. 모습이 점점 또렷해지자 얼른 고개를 돌렸다. 눈살을 찌푸려 간신히 눈물을 도로 집어넣었다. 딴생각을 좀 해야겠다. 음, 남편은 사지 멀쩡하고 듬직하게 생겼구먼. 괜찮은 놈으로 잘 골랐나 보다. 애비 없는 딸애 때문에 동시입장을 하는 걸 보니 잘해주겠어. 딸애가 먼저 제안을 했는지 저놈이 먼저 말을 꺼냈는지는 상관없다. 지금 이 순간엔 그저 저놈에게로 생각을 옮기고 싶었다. 이제 정말 나 같은 아비는 까맣게 잊고 잘 살겠어. 그런데 날 보는 아내의 시선이 느껴졌다.


"정화 좀 봐요. 그러고 있지 말고" "어? 어~"


그제야 몸을 돌려 딸이 걸어오는 모습을 보았다. 딸 애는 애써 내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하긴 눈이라도 마주치면 서로 불편할 테니. 덕분에 난 딸애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행진이 끝나고는 계속 딸애의 뒤통수를 쳐다보았다. 딸애가 고개를 돌리면 나도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주례사와 축가가 이어졌다. 이 순간이 빨리 가버리는 게 다행이면서도 안타깝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30분. 다시 만나 반갑지만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아내와 딸에게 미안했던 감정이 예고 없이 울컥울컥 올라왔다. 사위와 딸애가 나한테로 걸어온다. 사위가 절을 한다. 고개를 냅다 꾸벅이며 나도 모르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아내가 일어서길래 나도 따라 일어났다. 사회자 놈이 한 번 안아주라고 해서 사위를 먼저 안아주었다. 그리고 옆에 서 있는 딸애에게로 몸을 돌렸다. 우리는 서로 똑바로 쳐다보았다. 10년 만에 처음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행복해 보이던 딸애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딸애가 가볍게 목례를 했다. 난 더 이상 다가가지 못하고 어깨만 두 번 두드렸다. 그게 다였다. 딸애는 드레스를 추슬러 건너편 시댁 어른들한테로 갔다. 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난 의자 손잡이를 더듬더듬 잡고 자리를 찾아 앉았다. '신랑, 신부 행진' 소리와 함께 딸 애와 사위는 퇴장을 했고 그렇게 식은 끝이 났다.


기념 촬영은 기계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아무 말없이 사진사가 하라는 대로 했다. 저 양반도 무엇을 아는 듯이 나에게는 뭐라 특별히 요구하는 것은 없었다. 결혼식이 마무리되자 딸 애와 사위는 아내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는 저만치 멀어졌다. 그리고 아내는 나를 잠깐 보자고 했다.


"앉아있느라 고생했어요. 정화 결혼식 사진은 잘 나온 걸로 몇 장 골라서 보내줄게요. 나하고는 남남이지만 정화한테는 그래도 아버지니까. 그리고 여기. 밥은 따로 나가서 사 먹어요. 차비까지 넉넉하게 넣었어요. 사람들한테는 일이 있어서 먼저 갔다고 할게요."


아내의 얼굴을 그제야 자세히 보았다. 세상풍파 다 겪고 해탈한 듯 온화한 얼굴이었다. 평안해 보였다. 이 순간을 가장 많이 상상했었다. 아내와 단 둘이 남았을 때 난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좀 더 이야기하자고 해야 할까? 손이라도 잡고 미안했다고 이야기해야 할까? 바로 직전까지는 궁금한 것이 끝없이 생각났는데 이렇게 보고 있자니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얼굴 보니 잘 사는 것 같고 딸애도 건강하게 잘 큰 것 같고. 그동안 있었던 일은 이야기해 봤자 무엇하겠는가 이만하면 됐지. 내가 아무 말 않고 서있자 아내가 먼저 몸을 돌렸다. 아내의 팔을 살짝 잡았다. 팔을 빼며 아내가 돌아봤다.


"고생 많았어. 나 갈게."


한참 뜸을 들이다 겨우 걸음을 옮겼다. 그 많은 말들 중에서 고생했다는 말을 가장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식장을 빠져나오는 중에는 뒤를 돌아볼 수가 없었다. 뒤 돌아보면 미련이 남았다는 증거다. 성큼성큼 급하게 빠져나와 방향도 모르고 길을 따라 걸었다. 적당히 멀리 왔다 싶어서 골목으로 방향을 틀었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손에 쥐고 있던 봉투를 내려다보았다. 액수를 확인하고는 봉투를 한 손으로 구겼다.


"이런 쌍, 봉투는 왜 쥐어줘. 내가 거지야? 알바야? 미친년, 뭘 잘했다고 돈까지 주면서 날 불러? 그냥 죽었다고 하면 될 거 아니야. 에이, 씨발"


전에 하던 대로 난 미안함을 욕지거리로 풀어내려고 한다.


"에이, 미친년. 곱게 늙었으면 마음도 곱게 쓰지. 날 왜 불렀냐고. 그냥 모르던 사람처럼 살지. 왜!"


눈물이 흐르고 콧물이 흘렀다.


"에이, 씨발년"


난 무릎을 잡고 오만 인상을 다 쓰며 쓰러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한참을 그렇게 온몸에 힘을 주고 있었고, 조금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손에 쥐고 있던 봉투에서 돈을 꺼내 지갑에 넣었다. 구겨진 봉투는 던져버렸다. 새로 맞춘 양복 소매로 눈물과 콧물을 닦았다. 헛기침 한 번 하고 집으로 향했다.



방에 들어와 앉았다. 멍하다. 미안하다고, 다시 합치자고, 안되면 정화는 계속 봐도 되냐고 물어볼 걸 그랬다. 아니 내가 정말 미안하다고, 그동안 당신 생각을 단 한 번도 안 한 적이 없었다고. 10년 전에는 내가 철이 없었다고. 그러니까 날 좀 용서하라고 이야기할 걸 그랬다. 그 자리가 아니면 사람 없는 곳으로 끌고 나와서 무릎이라도 꿇을 걸 그랬다. 괜히 엄한 데서 욕만 해댔다. 아니다. 잘했다. 아무 말 안 하고 오길 잘했다. 그게 서로 좋지. 그럼.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양복은 옷걸이에 잘 걸어 옷장에 넣어두었다. 공장이나 가자, 일이 산더미인데. 차를 몰고 김포로 향했다.


"어이, 김 씨. 일은 잘 돼 가? 나 지금 가는 중이니까 기다려. 소주나 한 잔 해. 오늘은 비싼 안주로 사 줄 테니. 근데 좀 늦을지도 몰라. 차가 많이 막히네. 그러니까 거 아래 칠복이네서 안주랑 소주 좀 미리 시켜놔."
"딸 결혼식 갔다 와서 우리 박 사장이 기분이 좋은가 보네. 술을 다 산다고 하고. 알았어. 내가 비싼 놈으로 시켜 놓을게. 천천히 와~"
"응~ 그래요. 허허"


오늘따라 어스름이 참 짙다. 





결혼식에 다녀왔다. 피로연 도중에 우리는 누구 어머니가 어떻고, 누구 아버지가 어떻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이혼한 가정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생각했다. 특히 서로 왕래가 한참 끊어진 경우 결혼식에 가는 사람의 감정이 어떨지 궁금했다. 정말 이럴지는 모르겠다. 내가 쓰면서도 조금 과장한 부분도 있고 정말 이렇겠구나 느낀 부분도 있다. 100%는 아니어도 엇비슷한 감정을 가진 사람이 있을 것 같아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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