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학벌은 신분이다

오찬호,『우리는 왜 차별에 찬성합니다』

by 아포리스트

‘기안대’와 학벌 사회

학벌사회를 이해하려면 지금 시대는 <복학왕>이 인기가 훨씬 더 편할 것이다. 네이버 웹툰 중에서 <복학왕>은 ‘이른바 지방대 현실’을 보여준다며 높은 인기를 보이는 작품이다. 이 웹툰에서는 ‘지잡대 비아냥’이라는 게 시작된다. 여기서 보여지는 지방대 현실은 그 어디에도 취직할 수가 없다. ‘취업률 1위’, ‘출산율 1위’라면서 지방대를 비아냥 거리기 시작한다. 취업률 1위는 이른바 ‘3D' 직종에 종사하는 것이 지방대 출신이라는 것이다. ’출산율 1위‘는 지방대 생들이 문란하기 때문에 출산율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웹툰을 보면서 늘 지방대에 대한 비아냥이 시작이 된다.

이것은 현실임과 동시에 잘못된 인식이다. 소위 ‘명문대’ 출신도 실업자가 될 수 있다. 대학 사회에서 나타난 성범죄에도 ‘명문대’가 포함이 되어 있다. <페이스북>단체 카카오톡방 사건에는 k대가, 서울대의 성추행 등 현재 대학가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들이 소위 ‘명문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즉, 실업과 문란함에 주요 변수를 지방대로 보는 인식, 그리고 그 인식으로 만들어진 웹툰을 보면서 지방대를 비아냥거리는 것은 학벌에 대한 사회 인식이 심각하게 담겨 있음을 의미한다. 독자층이 10-20대 웹툰이 그렇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한국사회에서 학벌은 신분이다. 학벌이 낮은 경우에는 심대한 차별을 당한다. 문제는 이 차별의 논리가 그렇게 의미 있지 않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미국에서 벌어진 능력주의’(meritocracy) 논쟁이다. 능력주의는 빈부격차를 정당화하였었다. “능력에 따른 차별은 정당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다”고 하는 능력주의다. 능력은 주로 학력과 학벌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데 고학력과 좋은 학벌은 주로 부모의 경제력에 의해 결정된다. 학력과 학벌의 세습은 능력주의 사회가 사실상 이전의 귀족주의 사회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웅변해준다.


문제는 청년이 을인 동시에 갑이라는 것이다. 한국 청년들은 자신보다 못한 청년들을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차별한다. 사회학자 오찬호가 출간한 『우리는 왜 차별에 찬성합니다』는 대학생들의 ‘서열중독증’을 실감나게 고발한다. 대학에서 나타난 서열의 문제는 놀랍게도 20대의 대학생들에게는 신분이다. 차별은 당연한 일이다. 이 책의 제목대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한다”는 것이 문제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jpg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한국에서 수능을 치른 학생이라면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라는 말을 알 것이다. 학교 앞 맨 앞을 딴 서열이다. 중요한 것은 외울 때에 ‘/’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를 건너뛰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는 같은 학교를 의미한다. 이를 건너뛰고서는 설명해서는 안 된다. 이 피라미드를 건드리는 이들은 갑이건, 을이건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


수능배치표는 하나의 신분피라미드를 보여준다. 전국의 200여개의 대학의 순위는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는 순위처럼 여겨진다. 매우 치열한 생존투쟁이다. 서열이 한 두 개 차이 나는 대학을 비슷한 대학으로 엮으면, 그새 분노를 치밀게 한다. 이 수능은 자신들의 자존심이자, 당연히 유지되어야 하는 신분이다. 수능점수는 인생의 점수고, 모든 능력 차이로 확장하는 식의 사고를 가지고 있다. 10대에 모든 인생이 결정되는 불합리한 시스템에서조차도 분노해서는 안 된다. 특히 ‘학벌이 낮은 패배자’들이 그 이야기를 하면 욕을 얻어 먹을 이유가 된다. 학벌이 낮다는 것은 인생의 패배를 의미한다. 이점에 있어서 불합리하다고 이야기할 수가 없다. ‘패배자들’의 열등감, 요즘말로 ‘패배자의 열폭’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책에서는 여러 장면을 통해서 현재 대학생들의 생각을 설명한다. ‘지잡대(지방의 잡스러운 대학)’와 ‘인(in) 서울’은 절대로 같은 급이 될 수가 없다. 그것은 하나의 신분임과 동시에, 절대로 깨서는 안 될 금기어다. 노동시장구조에 대한 여럿 차별에 중에서 대학생들 스스로가 동의하는 것은 학벌에 대한 문제다. 한 가지 장면을 소개한다.

장면2. 지방대 출신이 취업시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다룬 영화를 보고 일단의 학생들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한다. 그들은 주인공의 처지에 충격을 받고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모임을 주관한 강사는 그들에게 지방대에 대한 차별이 불공평한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한 학생은 언제 울었냐는 듯이 “지방대는 저희 학교보다 대학서열이 낮아도 한참 낮은 곳인데, 제가 그쪽 학교의 학생들과 같은 급으로 취급을 받는 건 말이 안 되죠!”라고 답했다. 여기에 반대하는 이는 없엇다. 이들은 모두 ‘인서울’ 대학 학생이었다.


위로받기만 해서는 안 된다

이 책이 가지는 의의는 20대가 위로받기만 해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것이다. 앞선 연재에서 다루었던 세 개의 책인 『88만원 세대』,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가』 등에 책에서는 청년들이 위로 받아야 할 존재임을 규명했다. 잘못된 사회 구조 속에서 청년들이 겪고 있는 사회 구조에 가슴아파했던 것이 책들이었다. 물론 이 책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역시도 그런 20대들의 가지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규명한다.

오찬호는 청년세대를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로 규정한다. 괴물이 되어버린 20대는 갑이 을을, 을이 병을, 병이 다시 정을 차별하는 구조에 익숙해졌다는 데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약자가 더 약한 약자를 차별하고, 멸시하는 자아가 10대에 형성이 되어서 20대에 이르러서 증폭되어 나타난 것이 학벌 문제다. 학벌문제로서 누군가의 인생을 결정짓고, 그로 인해서 차별을 정당화하는 구조로서 계속간다면, 한국의 갑질은 심해질 수밖에 없다.


이 책에서 다루는 문제는 결단코 가볍지 않다. 이런 의식은 한국이 가지고 있는 갑을관계를 고착화 시킬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들 중에서 차별은 심각한 문제다. 그런데 20대들, 더 나아가 10대부터 약자를 짓밟는 의식이 고착화된 상태에서는 더 큰 문제를 불러 일으킬 수밖에 없다. 차별을 정당화 하는 어설픈 능력주의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것이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노동시장의 불평등의 문제는 이런 인식수준에서는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차별을 정당화시키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노동시장은 심각한 수준으로 이중화가 되어 있다. 이중화된 노동시장 구조는 높은 임금과 복지혜택을 받는 1차노동시장과 그렇지 못한 2차 노동시장으로 크게 양분화가 되어 있다. 교육제도는 노동시장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교육제도는 ‘좋은 노동자(근로자)’를 만들기 위해서 존재한다. 이 점에 있어서 교육시기부터의 차별의 정당화는 상당히 심각한 문제로 자리매김할 수밖에 없다.

능력주의 이데올로기가 학벌로서 나타난 지금의 마음 아픈 현상은, 너무 어린 나이에 계급구조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문제는 능력주의 이데올로기가 정당하지 않은 부분까지 퍼져 있다는 것이다. 능력주의가 그 사람의 인생을 대변하지 않는다. 또한 수능위주의 공부를 벗어나서 더 많은 능력을 펼칠 사람들도 있다. 그런 이들의 가능성마저 꺾는 것이 이 어설픈 학벌사회다. 그런 사회를 정당화 하는 사회 구조를 이 책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는 간파를 하였다.


이제 우리는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청년들을 살폈다. 앞으로의 담론은 여기서 더 발전한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가혹한 현실이 학벌 그 자체보다, 그것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다. 모든 교육의 목적이 좋은 학벌 취득에 맞춰져 있고, 그것이 평생의 인생을 결정한다. 이 불합리한 구조를 말하는 것조차도 죄가 되어 버리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왜 차별에 찬성하게 되는지』를 다룬 사회학자의 분석은 반드시 살펴야 할 책이다.


요약하기

1. 대학생은 학벌사회에 묶여 있다.

2. 대학생은 학벌사회의 피해자이자, 가해자다.

3.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를 넘어서야 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05 힐링세대와 아프니까 청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