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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영 Feb 21. 2024

이탈리아 시골마을 호텔이 내 집이 되었다

출국 당일 날 출국장 앞에서 엄마랑 마지막 손을 놓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자 이제부터 모든걸 내가 다 헤쳐나가야 해. 친구도 가족도 아무것도 없다.

첫 장거리 비행에, 경유는 또 어떻게 해야하는 거지?

만약 내 캐리어가 제대로 도착하지 않르면 어떡해야하지?

기차표는 어떻게 사는거지?


심지어 정말 사소한 질문들. 카페에서 커피한잔 주문하는 것도 어려웠다.

여권이나 지갑을 잃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까지, 머릿속에 물음표가 한 삼 백개 쯤 있었던 것 같다.




15시간 비행하면서 한숨도 못 잤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앞으로 내 앞에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지금 내 앞의 이 문은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하는 생각들이 가득찼다.


잘 할 수 있겠지? 바들바들 떨면서도 에이 못 할건 뭐야! 하는 생각들이 수도없이 왔다갔다 거렸다.

폴란드 바르샤바 공항에서 경유했는데 바르샤바까지는 한국어가 들렸지만 밀라노로 가는 비행기 보딩타임 때 부터는 이탈리아어가 슬슬 들리기 시작했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를 가진 사람은 나 뿐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이질감이었다. 이방인으로서의 완벽한 전환점은 그 때 였던 것 같다.


뚱뚱한 캐리어 두 개를 질질 끌고 호스텔까지 가는데, 밀라노 중앙역은 밤에도 황홀할 정도로 멋있었다.





다음날 두오모 성당 앞에서 해질녘부터 앉아 일몰을 구경하고 결국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 사람들을 구경하고 일기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나는 여행비자가 아니라 PERMESSO DI SOGGIORNO 라는 체류허가증을 신청해야했다. 처음 사흘 나흘은 우체국과 경찰서를 돌아다니며 서류를 작성하고 우편을 부쳤다.


한국에서 미리 컨택해 일하기로 한 레스토랑은 피에몬테주에 있는 ASTI라는 작은 시골마을에 있었는데, 밀라노에서 기차를 타고 약 세시간 반 걸리는 곳이었다.

밀라노에서 서류신청을 마친 후 나는 다시 두 뚱뚱한 캐리어를 밀고 끌며 기차에 몸을 실었다.


한국으로 치자면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꽤 먼 깡시골 파주 어딘가쯤에 간 걸까?



아스티 역 앞까지 셰프가 차를 끌고 마중을 나와줬다. 머리가 새하얗게 다 새어버린 할아버지 셰프님.

지난 몇 개월동안 매일 공부했던 이탈리아어가 빛을 발할 줄 알았지만, 내 머릿속도 셰프의 흰 머리마냥 하얗게 타들어갔다. 내가 할 줄 아는 말은 고작 "안녕" 과 "고마워"였다. 셰프가 빠른 템포로 말을 하기시작했는데 아마 '오느라 수고했다. 잘 왔다' 정도의 이야기였겠지만 난 아주 아주 고장나버린 로봇이 따로 없었다.


밀려오는 당혹감을 애써 숨기며 멋쩍게 웃는 내 얼굴이 안 봐도 훤히 보이는 것 같았다. 하하


우리 가게 이름은 'Cascinale Nuovo'로, 피에몬테 주 이솔라다스티에 위치한 미쉐린 1성급의 상당규모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었다. 까시날레누오보는 1층은 다이닝 공간, 2층부터 4층은 호텔인 호텔 겸 레스토랑이었다. 맨 윗층에 직원 기숙사가 있다고 했는데 만실이라 자리가 날 때까지 호텔방에서 지내라며 방을 하나 내 주었다.

그 방에서 약 한 달 정도 지냈던 것 같다.

유럽땅을 밟아본 적도 없는 내가, 이탈리아 호텔방에서 살게 되다니! 커튼을 활짝 걷었다.

창문 뒤로 지중해의 뜨거운 여름 햇살을 받으며 썬탠을 하고 멋진 수영장에서 물놀이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세상에! 내가 이런 곳에서 일하게 되었다니!





장거리 비행에, 장거리 이동에, 너무 긴장되어 며칠동안이나 잠도 제대로 못 자서 많이 피곤했다. 사실 나의 계획은 짐 풀고 하루 이틀은 쉬었다가 일을 시작할 생각이었는데 레스토랑에 도착한 당일 날 짐을 제대로 풀기도 전에 주방으로 내려오라는 셰프의 명령이 있었다.

조금 쉬고싶다는 이야기도 차마 못 하겠어서 냉큼 주방으로 내려갔다.


까시날레누오보에서는 매년 여름 휴가철, 매주 목요일마다 'Non solo bollicine' 라는 페스티벌을 했다. DJ가 와서 음악을 틀고, 뷔페 음식을 서브하는 소규모 파티였는데 꽤 많은 사람들이 그 파티를 즐기러 오곤 했다. 잊을 수 없는 그 날. 2018년 여름 내가 까시날레에 도착했던 그 날은 파티가 있는 목요일이었다. 


주방은 이미 북적북적 음식을 커다란 쟁반에 담아 홀로 보내고, 여러 스텝들이 열심히 요리하고 있었다.

갖가지 요리들, 과일과 치즈 플레이팅, 처음 맡아보는 생경한 주방냄새, 생경한 말 소리, 바깥에서 둥.둥. 들려오는 비트소리가 한 데 얽히고 섥혀 오감으로 느껴졌다. 후각으로, 청각으로, 시각으로, 미각으로, 촉각으로 퍼지는 이 생경함들이 마치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걸까, 내가 멀미를 앓고 있는 걸까 싶을 만큼 어지럽고 가슴이 쿵쿵 두근거렸다. 


서비스 시간이 훌쩍 지나 주방 마감을 하고 주방의 불을 다 끄고 주방 뒷문으로 나갔을 때, 때마침 하늘에서 불꽃이 터지며 사람들의 환호 소리가 들렸다. 파티의 피날레로 불꽃놀이도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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