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심전심의 미학
유교보이 유교걸들이 생각하기에 외국사람들은 타문화에 대해서 오픈마인드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보통의 이탈리아 사람들은 (내가 겪었던 이탈리안들은) 자국 문화를 벗어나는 것에 대해서 상당히 폐쇄적이다.
하와이안 피자를 혐오하는 이탈리안에 관한 밈이 유명하고, 우리가 물처럼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이탈리아 여행중에 만나기 어려운 것만 보아도 그렇듯이!
그러나
우리 레스토랑 헤드셰프님은 환갑이 훨씬 지난 나이를 먹고서도 타문화에 관해서 관심이 많고 열려있던 분이었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나같은 초보 새싹 요리사를, 그것도 동양에서 온 여자아이를 별 생각 없이 받아줬던 것일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셰프님이 어느날은 태국에서 온 친구들이라며 우리 주방을 내어준 적이 있었다.
지금도 그 분들이 요리사인지 아닌지에 관해서는 모르겠다. 그 때만 하더라도 말을 거의 못 알아들어서 소통이 어려웠다. 아무튼, 태국에서 온 그 사람들은 뷔페식으로 태국음식 여섯가지 정도를 만들었고 셰프님 가족들의 사적인 파티음식으로 서브되었다. 우리 스텝들은 그것과는 별개로 평소와 같이 서비스타임을 마쳤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 경우 홀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온 음식들은 스텝밀이 되기도 하고 새로운 메뉴를 구상하는 데 참고하기도 하기 때문에 셰프들이 버리지 않고 스텝밀로 먹거나 연구하는 자료로 사용한다. 그 날 마감시간에 파티에서 돌아온 남은 음식들을 정리하고 처리하는데, 똠양꿍을 들고 있던 내게 수셰프가 "Via" 라고 했다.
이탈리아에서 Via라는 단어는 '가버려' 로 쓰이거나 '저쪽으로' 라는 뉘앙스로도 쓰인다. 주방에서 완성접시를 홀로 보낼때에도 사용하고 조리중인 음식을 오븐에 넣을 때에도 사용하는 그런 애매모호한 단어다. 그러나 정말 큰 문제는, 어떤 것을 버릴 때에도 Via를 쓴다는 것이다. 음식이 꽤 많이 남아있는데도 버리라는 뜻인가? 싶어서 "이거 Via 맞아?"라고 재차 물었지만 마리오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Si!" 라는 것 아닌가.
정말 이상했으나 상명하복이 중요한 주방에서 내 뜻대로 움직였다가는 혼이 나기 일쑤니. 나는 결국 저 멀리 태국에서 이탈리아까지 온 사람들이 어렵게 만든 똠양꿍을 몽땅 버려버렸고, 일순간에 마리오 얼굴이 사색이 되는 것을 봤다.
"Buttato???????!!!!!!! TUTTO...???!!!!" (버렸어..????!!!! 몽땅???!!!!!)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나는 한국말로 '아니 아까 via 라며...' 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마리오가 "아니 아니, 저기 뒷쪽에 놓으라고...! Via라고 했잖아!" 라는 것이다! 오 마이갓. 순간적으로 눈 앞이 노래지는 것 같았다. 불같이 무서운 셰프님의 불호통이 벌써 들리는 것 같았다. 거기에 옆에 있던 일본인 캔상이 너무 웃긴 상황이라는 듯 웃으며 나를 놀렸다.
정말 정말 창피하지만 '나 이렇게 쫓겨나는 건가... 이렇게 한국에 돌아가는 건가..' 하는 생각에 그 자리에서 눈물이 터졌다. 하하... 지금 생각하면 자기가 실수해놓고 눈물 흘리는 다 큰 20대 요리사가 말이나 되나 싶지만 말도 안 통하고, 정말 큰 맘 먹고 온 이탈리아인데 이대로 쫓겨나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쫄아버린 내 자신이 이렇게 귀엽고 황당해보일 수 없다.
내가 울어버리자 모두가 당황해하며 마리오가 나를 위로해줬다. '오늘은 괜찮아. 오늘은 그냥 자고,' "Domani(내일은) chef will break your ass"라는 것이다. 그 말에 더 사색이 된 내 모습...
그러자
"문제없어! 나디아가 버렸다고 하면 돼."
여기서 나디아는 Lavapiatti (접시 닦는 사람), 그러니까 한국으로 치면 '설거지삼촌' 정도 되겠다.
마리오의 말을 들은 나디아가 옆에서 "내가 버렸다고 하면 돼! 왜냐면 난 저기 놓인 음식들 다 버리는 역할이니까 내가 버렸다고 하자" 고 거들었다.
고마움 반, 미안함 반. 그제서야 거짓말처럼 마음이 안심되었다.
나를 놀리던 캔상도 '우리가 다 먹었다고 하자 ㅋㅋㅋㅋ' 하며 본인도 항상 Via라는 말이 헷갈린다고 한다.
그렇게 말이 안 통해서 일어난 나의 첫 대형사고는 모두의 다정함으로 잘 넘어가게 되었는데, 한편으로는 눈물로 나의 잘못을 무마시켜버린 것 같아서 너무나 미안하고 창피했다.
헤드셰프는 정말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라서 뜻대로 안 되면 후라이팬을 던지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모두가 그런 셰프의 눈치를 보고 골치아파했는데, 그런 대형사고를 친 나의 마음이 주방 식구들의 마음에 닿은 걸까?
불통이 빚어낸 실수에 이심전심 되어가는 주방이라니. 나는 아직도 그 날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이탈리아에서의 나의 첫 성장통은 '말' 때문에 생기는 일들이었다. 같은 말이라도 톤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사소한 것들. 사소한 것들이 담아내는 문화들. 그것들을 온 몸으로 받아내고 담아내느라 겪었던 첫 성장통이었다.
말을 할 줄 몰라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강제로 묵언수행하며 들리는 문장들에 온 신경을 세웠던 그 때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
나의 생각만 내세우지 않고 상대의 마음에 대해서 들여다보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그 한 문장이 스물 일곱 해를 넘겨 피부에 와 닿았다.
말이 안 통해도 마음으로는 모두가 통하는 순간이 있다. 반대로 말이 통해도 마음이 안 통하는 순간도 많을 것이다. 어른의 머리와 어린아이 수준의 언어능력으로 있자니 가끔 미칠 노릇이었는데, 그때마다 그 이전의 한국에서 다른이와 겪었던 '불통'에 대해서 자주 생각에 잠겼다.
같은 말을 쓰고 같은 문화를 나누면서도 상대의 말을 귀담아 듣지않고 배려해 말하지 않았던 과거의 나에 대해 한참을 반성하기도 했다.
강제로 묵언수행(?)하면서 듣고만 있자니 상대에게 관대해지는 희한한 상황이 펼쳐지기도 했는데
그 습관이 굳어져 귀국 후 지금까지도 이해하기 어려운 상대의 마음과 내 마음 속에 자리잡는 나의 생각들을 한 번 쯤은 경계하고 돌아보는 좋은 습관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