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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희원 Nov 16. 2022

좋음에 대해서

자기윤리학 1장


<프롤로그>



윤리학책을 어떻게 써야할지 많이 고민을 해보았다. 자기윤리학 책 쓰기의 경우



1부 : 나의 자기이해


2부 : 나의 자기검토


3부 : 나의 자기교육




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 6개월간의 과정동안 격주로 책을 쓸 테니, 대략 12번 정도 글을 쓰게 될 것 같다. 그러므로 (나중에 분명히 변경이 있겠지만) 지금은 1부 4번, 2부 4번, 3부 4번 정도로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면 당장 이번에 쓰기 시작하는 <나의 자기이해> 파트는 어떻게 써야할까. 깊이 생각해본 결과 <자기이해>라는 단어에 걸맞게 나의 감정에 대한 나의 솔직한 생각을 말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조금 적나라할 수 있겠지만, 인간은 감정으로 구성된 동물이고, 나 또한 당연히 그에 벗어나지 못하기에 이번부터 4차례 동안 나는 나를 구성하는 대표적인 감정인 “좋음, 슬픔과 기쁨, 싫음, 공포, 분노”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의 자기이해 1 : 좋음에 대해서>



첫 번째 자기이해를 위해 ‘좋음’에 대해서 선택한 이유는 당장 이것에 대한 나의 감정을 정리하고 이해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이다. 사실 최근에 4년을 넘게 사귀었던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오랫동안 사귀었던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는 사실은 나의 삶에 큰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동시에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질문들을 나에게 남기었다. 특히 내가 그동안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좋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남겼다. 



(1) 좋아함(liking)과 원함(wanting)은 다르다.




좋아함과 원함은 같으면서도 다르다고 한다. 둘 다 성취될 경우 즐거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사실이나, 좋아함의 성취 즐거움의 성취이며 이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코나투스를 고양시키는 결과를 불러일으키고, 원함의 성취는 욕구의 성취이며, 단기적인 쾌락만을 불러일으키고 장기적으로는 코나투스를 저해한다.



최근 2000년대 이후에 원함과 좋아함을 뇌에서 조절되는 부위가 다르다는 연구가 밝혀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원함과 관련된 신경전달물질은 모두가 알듯이 도파민이지만, 좋아함, 즐거움과 관련된 신경전달물질은 도파민과는 다른 오피오이드라고 한다. 과학적으로도 원함과 좋아함은 이제 구별되기 시작했다.



문제는 내가 일상생활에서 좋아함과 원함을 아직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게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여자친구를 4년 반 넘게 사귀며 정말 좋아한다고 여겼었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나의 가치관이 흔들리고 좋아함과 원함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2) 좋아함이란 무엇인가?




이렇게 혼란스러운 내 머릿속을 글을 쓰면서 잠시나마, 조금이나마 정리해보고자 한다. 좋아함이란 무엇일까? 일상생활에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인지, 단순히 나의 욕구가 원하는 것인지 구분이 안되는 경우가 정말 많다. 그러나 위에서 말했듯이 분명히 차이점은 존재한다. 그러나 그 차이점은 매우 모호하다. 그 차이를 ‘그것에 대한 절박함’으로 잡아버리면, 마약을 하는 사람은 절박함에 있어서 그것이 욕망이 아니라 좋아함이 되어버릴 것이다. ‘지속성’으로 잡아도, 그 좋아함과 욕망의 지속성은 각각 천차만별이라 더더욱 좋아함과 욕망을 구별하기가 어려워진다.


내가 좋아한다고 여기는 것이 정말 좋아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인간은 사회와의 상호작용의 결과이다. 나는 아버지가 공무원이고, 그래서 나 또한 공무원을 직업으로서 좋아한다고 여겼었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그것이 내 내면으로부터의 목소리가 아닌 외부의 영향을 받은 ‘조작된’ 좋아함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좋아함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좋아함이란 내면의 목소리라고 생각한다. 간단한 내면의 목소리가 아니다. 과거 헌법을 공부하면서 매우 인상이 깊었던 판례 내용이 있다. 양심적병역거부자 판결에서 헌재가 헌법이 보호하려는 ‘양심’이란 무엇인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헌법이 보호하려는 양심은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아니하고는 자신의 인격적인 존재 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이지, 막연하고 추상적인 개념으로서의 양심이 아니다.”




헌법재판소 1997.3.27., 96헌가11






이 문구에서 나는 좋아함이 무엇인지 모티브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좋아함이란, 위의 문구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행동하지 아니하고는 자신의 인격적인 존재 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좋아함이 욕망과 다른 점은 그것을 지금 하지 않으면 나의 존재가치가 부정당할 것 같은 느낌, 그것에 대한 진지함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3) 내가 좋아하는 것은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



위에서 좋아함에 대해서 거창하게 이야기했지만, ‘정말 그것을 지금 하지 않으면 나의 존재가치가 부정당할 것 같은 것’을 일상생활에서 찾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사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러한 것을 하나라도 찾으면 그것은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번년도 초부터 봉사활동, 학회, 인턴 등등 많은 활동을 시작했고 현재까지 계속 하고 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정말 ‘좋아해서’ 한 일들은 아니다. 처음에는 취직을 하기 위한 스펙을 쌓을 간단한 용도로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원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그 활동들 중에서 몇 가지는 나의 가치관을 바꿀 정도로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대표적으로 최근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점자스티커부착, 점자메뉴판 제작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시각장애인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많은 것들을 듣고 배웠고, 점점 내가 좋아하는것에 다가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시각장애인들이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차별과 억압을 받고 있는지 들었고, 진심으로 그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로서 나는 시각장애인뿐만이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싶고, 그러기위해서 법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최근에 로스쿨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스펙용 활동들이 시작은 ‘원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지만, 결국 내가 ‘좋아하는 것’에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듯이 내가 생각하기에 완벽하지 않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에 다가가기위해서는 ‘적극적인 경험과 실천’이 가장 중요하지 않은가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나의 ‘좋아하는 것’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으나, 나는 적극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쌓아서 내가 좋아하는것에 다가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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