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생>을 다시 되짚어 보며
요즘 드라마 <미생>을 다시 보고 있다. 회사 다닐 때 정말 공감하면서 봤는데 회사를 졸업하고 보니 감회가 새롭다.
<미생>은 대기업 직장인의 생활을 잘 표현한 리얼리즘 드라마다. 드라마이기 때문에 과장된 면이 없지 않지만 회사 사무실에 카메라를 들이댄 것처럼 매우 현실적이다. 로맨스나 러브스토리도 없다. 그래서 더 현실을 옮겨 놓은 것 같다.
처음 미생을 볼 땐 주인공 장그래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그런데 다시 보니 한석율(변요한)에게 더 감정이입이 된다. 밝고 장난끼 많은 사원 한석율이 회사에서 어떻게 점점 병든 닭마냥 기가 죽어가는지 마치 나를 보는 것 같다. 좋은 선배인 줄 알았던 성 대리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인격모독에 왕따까지 당한다. 이에 격분한 한석율은 회사 옥상에서 분노의 일갈을 하는데..
"아오~~!! 직장 생활하면서 가장 괴로운 걸 알았어. 보기 싫은 놈을 매일 봐야 한다는 거!
너무 짜친 거짓말과 잘못들이 너무 많아서 말하는 사람을 열라 치사하게 만드는 거!
근데 그런 놈을 상사들이 더 좋아한다는 거. 그리고 내가 한 일이 다 그놈 것이 된다는 거..”
한석율이 빡쳐서 핏대를 세우며 토해내는 대사에 내 속까지 다 시원해졌다. 사무실에서 저렇게 소리 한번 지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회사에 들어가기 전에는 몰랐다. 그냥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다. 내 능력만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벗뜨..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회사에서 가장 힘든 건 사람이었다. 나를 갈구는 대리, 내 뒤땅을 까는 과장, 내 의견이 무시되는 것은 다반사고 때론 아니 자주 나는 자판기가 된 것 같았다. 면전에서 윽박지르는 팀장이며 고객 앞에서 내게 소리 지르던 김 대리… 지금 다시 생각해도 빡이 친다. 그때 나도 면전에 대고 소리 한번 크게 질러 볼 걸.. 참고 다녔던, 다녀야 했던 나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진다.
<미생> 주인공 임시완은 나중에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드라마를 찍는데 ‘보기 싫은 놈’을 매일 봐야 하는 곳이 바로 지옥이 아닐까 생각한다.
죽어서 벌 받아 가는 곳이 지옥이 아니라.. 나를 무시하는 사람, 내게 부당함을 강요하는 사람,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마주해야 하는 곳이 바로 살아서 마주하는 지옥이 아닐까. 그곳이 회사든, 학교든, 군대든 마찬가지다. 회사에는 김동식 대리 같은 사람보다 성 대리 같은 사람이, (우영우로 치면) 정명석 같은 상사보다 장승준 같은 상사가 더 많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회사를 다닐 수 있었던 것은 (9년이나 직장에서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좋은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에는 <미생>의 박 과장 같은 사람도 있지만 오상식 차장 같은 팀장도 있고 권민우 같은 사람도 있지만 최수연 같은 동료도 있다는 것.
생각해 보면 회사를 그만둔 지 3년이 다 되어 가지만 여전히 연락하고 만나는 회사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큰 복인 것 같다. 회사를 다니지 않았더라면 만날 수 없었던 소중한 인연들이 남았으니까.. 그건 분명 큰 복이자 인생의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회사는 한자로 모일 사(會) 자에 모일 회(社) 자를 쓴다. 사람이 모이고 모인 곳. 사회(社會)도 똑같은 한자를 쓴다. 영어로 회사는 Company인데 Keep me company라고 하면 ‘같이 가줘’, ‘곁에 있어줘’라는 말도 된다.
그러고 보면 회사라는 곳은 사람이 있기에 힘이 들지만 또 사람이 있기에 또 힘이 되는 곳인 것 같다.
#회사 #미생 #직딩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