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 나는 그녀에게 닿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직장인이고 그녀는 대학생

by 직딩제스

아무 일 없는 하루가 반복되어 갔다. 문래동 스튜디오를 접고 회사-집을 왔다 갔다 하는 직장인의 일상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여름이 가고 어느덧 날은 가을에 접어들었다. 한날 정재에게서 연락이 왔다.


"형, 다음 주 주말에 뭐해요?"

"음.. 딱히 스케줄 없는데, 왜?"

"여울 씨랑 광우형이랑 보기로 했는데 같이 볼래요?"

"오.. 진짜?"

지난 봄 진상이 되고 나는 무슨 낯짝으로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했는데, 정재가 그쪽이랑 계속 친하게 지내고 있었던 모양이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런데 내가 가도 되나..?

"나도 가도 돼?"

"당연하죠 형, 이번에 유진이랑 승수랑 해서 다 같이 봐요."

한 번쯤 생각은 했었는데 너무나 반가운 모임이었다.

"오~ 정말? 여행 커뮤니티 모임이네?"

"네, 한 번 다 같이 보면 좋을 거 같다고 형도 그랬잖아요."

"응. 그랬지..."


우리는 각자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었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이 활발하지 않던 시절 페이스북에 여행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하는 커뮤니티였다. 당시 여행 채널 대표주자가 '여행에 미치다'였다. 우리도 그와 비슷한 페북 페이지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돈도 안 되고 누가 상주는 것도 아닌데 회사 다니면서 뭘 그렇게까지 열심히 했나 싶은데 나 자체가 원래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돈이 되지 않아도, 재미가 있으면 하고, 뜻이 있으면 움직이는 사람.. 그런 사람들끼리 모이게 되었다. 여행을 좋아하고, 여행에서 느낀 점을 나누고 싶고, 여행 꿀팀을 공유하고 싶은 사람들.


우리 셋의 이름은 동행, 그쪽 셋의 이름은 요정.

동행 셋, 요정 셋.

남자 셋, 여자 셋.

그런데 나이는 나 빼고 다 20대였다. 나는 30대..

사실 이런 모임에 30대 회사원이 끼는 게 쉽지 않다. 여행과 사진이 묶어준 특별한 인연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문래동 루프탑 파티에서 만났던 게 물꼬를 터 준 것일까? 아무튼 회사만 다녔더라면 절대 모일 수 없는 그런 조합이었다.


10월 초, 저녁에는 쌀쌀해 얇은 외투를 입어야 하는 날 다 같이 이태원에서 만났다. 이태원 역에 내려 위쪽 골목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니 작은 식당이 있었다. 식당 안에는 이미 요정팀 셋이 와 있었다. 제일 안 쪽에 그녀가 앉아 있었다. 꼬박 5개월 만이었다.


ChatGPT Image 2026년 3월 13일 오전 06_54_31.png 꼬박 5개월 만에 모임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2026. 직딩제스 All rights reserved


"오~ 안녕하세요." 다들 반갑게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나는 약간 뻘쭘하게 인사했지만 그녀는 그다지 나를 불편해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를 정말 싫어했다면 이 모임 자체에 나오지 않았으리라.. 생각하면서 나도 최대한 자연스럽게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다.

"잘 지냈어요? 오랜만이네. 요즘 페이지 아주 핫하던데?"

능글맞게 내가 인사했다. 사실 우리 동행 페이지보다 요정 페이지가 훨씬 팔로우도 많고 조회수도 잘 나오고 있던 터였다.

"아이 뭘요. 동행이 먼저 시작했는데 저희는 아직 따라가라면 한참입니다."

넉살 좋게 광우가 대답했다. 정재와 유진이도 같이 와서 우리는 맥주를 마시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여행 이야기를 많이 했다. 나는 사실 해외여행은 고사하고 국내여행도 안 다니던 사람이었다. 여행과는 정말 먼 그저 평범한 회사원으로만 살았다. 그런데 작년 혼자 국내 여행을 시작으로 정재와 해외여행을 한번 갔다온 이후 혼자서 독일, 오스트리아, 호주 등 많은 나라를 다녔다. 우리 동행 멤버의 유진이와 정재도 해외여행 경험이 많았다. 굳이 나누자면 우리는 해외여행 파고 저쪽 요정팀은 국내여행 파였다. 그런데 그녀가 다음 달에 파리에 한 달 여행을 간다고 했다.


"진짜...?"

우리는 모두 놀랐다. 일주일도 아니고 한 달씩이나..

그녀는 상기되어 열심히 여행 계획을 설명했다. 프랑스 파리에 숙소를 잡고 주변에 영국과 다른 나라도 갔다 올 거라는 원대한 계획이었다. 나도 굉장히 부러웠다. 회사원인 나는 아무리 길게 여행을 가도 2주가 최대치였다. 회사에 욕먹을 각고 하고 떠나는 거였지만 그녀는 겨울방학 맞아 한 달을 간다는 것이었다.

'엥...? 겨울방학'

아뿔싸. 그녀는 대학생이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니 광우도 군대를 갔다 온 대학생이었는데 광우보다 어리다고 했으니 빼박 대학생이었던다. 맙소사. 나이차이가 꽤 많이 났다. 그제서야 나는 그녀와 나의 현실적인 차이를 깨닫게 되었다.

'난 회사원이고 넌 대학생이야.'

그런데 거기에 설상사상으로 파리 여행 계획에 대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이야기하는 그녀의 왼손에 낀 금색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저긴.. 커플 반지를 끼는 곳인데..'

왼손 검지에 반지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나는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나 없었다. 대학생인 것도, 남자친구가 있는지 없는지도 아직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학교는 어딘지, 무슨 과인지, 무얼 좋아하는지.. 도대체 제대로 아는 것이 하나 없었다. 첫인상이 좋았다는 순전히 내 감정만 가지고 있었지 그녀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다 왼손에 낀 반지를 보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래, 당연히 있을 수 있지. 혼자라는 게 더 이상하지.'

품어서는 안 될 사람을 잠깐이라도 마음에 품었던 내가 부끄워 얼굴이 화끈거렸다. 모임은 즐겁고 화기애애했지만 나는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다. 가슴 한쪽이 아려왔다.


그래.. 그녀와 잘 될 수 없겠구나.

식당을 나올 때 나는 자조섞인 혼잣말을 하며 밖으로 나왔다. 오랜만에 다시 그녀를 보는 마음에 들뜬 마음으로 식당에 들어갔지만 완전히 풀이 죽어 나왔다. 2차는 없었다. 가고 싶지도 않았다.




5개월 만에 만난 그녀, 기대한 만큼 가슴이 내려앉았다. 빛나던 그녀의 웃음보다 반짝이던 반지가 더 기억에 오래 남았다. 나는 그녀에게 닿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당신이어야 합니다. 4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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