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분 33초>라는 피아노 연주곡을 아시나요?
존 케이지가 1952년 작곡한 피아노 음악으로 그냥 4분 33초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퇴장하는 것이 전부인 날로 먹는 음악. 즉, 아무런 연주도 없습니다. 아무런 연주 없이 공연장의 소음이나 관객들이 소리, 기침소리, 냉난방기 등의 소리로 연주하는 것입니다.
악보 역시 아무것도 없습니다. 정확히는, '침묵'을 뜻하는 음악 용어 TACET이 적혀 있지요. 악장도 나뉘어 있어 1악장부터 3악장까지 전부 합쳐 정확하게 4분 33초를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1악장이 33초, 2악장이 2분 40초, 3악장이 1분 20초. 한 악장이 끝나면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가 다시 닫아 구분합니다.
제목의 유래는 절대온도 273을 분과 초로 바꾼 것이죠. 4분은 240초이고 33초를 더하면 절대온도를 가리키는 숫자인 273초가 됩니다. 절대온도란 분자 등 어떠한 계를 구성하는 입자의 에너지가 최소 상태일 때를 말합니다. 4분 33초는 듣는 이에게 음악이란 어떠해야 한다는 규정을 파괴해 버렸습니다.
<묵념, 5분 27초>라는 시를 아시나요?
이 시는 황지우 시인이 1983년 문학과 지성사 출간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에 발표한 것입니다. 제목만 있고 내용은 없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시이죠. 이 시의 제목에서 '5분 27초'가 뜻하는 것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 계엄군에 의해 전남도청이 유혈 진압된 날을 추모하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그러나 어찌 생각하면 가장 짧지만 가장 긴 시일 수도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제대로 시를 읽으려면 최소한 5분 27초는 묵념에 임해야 할 것이 때문이죠. 살아남은 자의 진한 슬픔과 죽어간 자들을 위한 애도의 시간으로 5분 27초를 채워 보십시오. 그 정도의 시간이면 웬만한 서사시를 다 읽고도 남을 시간입니다. 암튼 이 시 역시 시란 어떻게 써야 한다는 규정을 파괴해 버렸습니다.
규정을 벗어던지면 나타나는 잠재력
4분 33초와 5분 27초를 합하면 10분이 됩니다. 어떤 문제로 고민 중이라면 딱 10분만 할애하세요. 먼저 케이지의 연주곡 <4분 33초>를 들으시면서 마음의 에너지를 절대 영도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황지우 시인의 <묵념, 5분 27초>를 읽으시면 됩니다. 읽을 글이 없으므로 그 시간 동안 묵념을 하면 되겠군요. 기왕이면 아무런 생각 없이 하시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알람을 맞춰놓으면 편하겠네요. 암튼 딱 10분입니다.
그 10분의 시간을 가진 다음에 자신을 괴롭히던 문제를 들여다보세요. 무엇이 그토록 괴로웠던 것인가요? 규정에 얽매여서 보이지 않던 해결방법들이 보이지 않나요? 10분은 우리가 가진 잠재력을 끌어내는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