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다 Mar 11. 2023

오은영 쌤이 무슨 말씀하시는지는 나도 잘 알지

암- 알고 말고

아침 8시 30분.

1호와 2호가 무사히 셔틀에 탑승했을 지금, 이제 우리 집에는 잠꾸러기 막내 한놈 남았다.

도대체가 알고리즘이 어떻게 설계된 건지, 몇시에 재워도 9시 전에는 눈을 안뜬다.


별 수 없다.

이럴 때에는 그냥 잠든 상태로 옷을 갈아 입힌다.

그러다 깨주면 더 좋고- 하는 마음으로.


갈아 입을 옷을 챙기고 어린이집 가방을 점검하며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소리가 거슬렸을까.

절대 안일어날 것 같더니 깼다. 그것도 울면서.


그때부터 “으앙 으악 아아아악 악악 아아앙 아아아악“ 하고 운다.

산발한 머리가 한없이 흐르는 눈물에 젖어서 얼굴에 붙기 시작한다.

옷을 입자고 해도 도망간다.

짜증이 난건 알지만 구체적으로 무엇 때문에 우는지는 모른다.

아마도 특별한 이유가 없을 것이다.

아이들은 보통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불편하고 속상한, 정말이지 다른 묘사가 어려운 ’부정적 상태‘라 우는 경우도 많으니까.


계속해서 도망다니며 어쩌다 닿는 내 손을 때리고 악을 쓰며 우는 아이를 보니, 나도 슬슬 화가 난다.


이럴 때에는 기다려주는 것이 좋다고 한다.

아이가 왜 우는지 자꾸 묻지 말고 해석하지 말고 파고 들지 말고.

어차피 말이 안통하는 상태이고 아이도 자기 상태를 정확히 모르니까, 차분히 아이가 진정하길 기다려 주는 시간이 필요한 타이밍이다.

특히 아이 앞에 선 엄마가 화가 나기 시작하면 화를 내기 보다 우선 자리를 비워 진정한 다음 돌아오는 것이 좋다고 한다.

아이에게도 충분하게 표현할 시간을, 대화할 준비가 될 수 있도록 기다림을, 결과에 하등 도움 안되는 화는 다독임을 나도 안다.


나도 다 아는데.


나는 10분 안에 출근을 해야 한다.

저 망나니 때쟁이를 어르고 달래서 기저귀를 갈고 옷을 입혀서 옆옆동에 있는 어린이집에 등원 시킨 다음, 후다닥 돌아와 지하 주차장에 가서 내 차를 찾아 조수석에 가방을 던지고 기어를 바꿔서 차를 출발시키기 까지.

나에게는 딱 10분의 시간이 있다.

그래야 제때 출근할 수 있다.


나도 기다려야 하는거 안다.

그런데 어떡하나? 나한테는 그럴 수 있는 시간이 없는데.



이럴 때는 내가 ‘워킹맘’이라는 형벌을 받는 기분이 든다.

정신 없이 바빠서가 아니다.

육아도 엉망이고 일하는건 개판이고 여기저기 민폐만 끼치고 다니는데, 내가 그러는거 모르는 것도 아니고.

자존감이고 나발이고 이젠 내가 그냥 길바닥에 붙은 껌이 된 것만 같아서 시간만 허락한다면 하루 종일 어디 틀어 박혀서 울고만 싶다.

또 어디서 정줄 놓고 실수할까봐 항상 긴장한 상태를 유지하다 보니 몸도 망가지는 것 같고 온 신경이 예민해져서 내가 나한테 찔릴 것만 같다.

아무도 없는 세상에서 나 혼자 이런 형벌을 받고 있는 기분이다.


시계를 보고 2분 정도 맘껏 짜증 내길 기다려주기로 했다.

지금 내 상황에서는 최대한 이었다.


2분 후, 발버둥치며 우는 아이를 꼬옥 안아줬다. 거의 힘으로 제압하듯 안았다.


“아가, 엄마가 사랑해. 짜증에서 벗어나는걸 기다려주지 못해서 미안해. 엄마가 많이 사랑해.”


울음이 조금 잦아든 아이에게 최소한의 환복, 그러니까 기저귀 갈고 내복 위에 아우터 하나만 입혀서 안았다.

입히려고 꺼내둔 맨투맨과 바지는 등원 가방에 넣었다.

눈물 번벅이 된 얼굴에 머리는 산발이고 옷은 내복.

그냥 그 상태로 어린이집에 인계했다.

죄송해요, 선생님. 오늘 아침엔 말이 더 안통하네요- 하면서.

그러면 선생님은 요즘 어린이집에서 유행하는 머리로 묶어 주시고 옷도 꺼내 입혀주셔서 사람으로 만들어주실거다.

이제 허겁지겁 회사에 들어가서, 내가 얼마나 부족한 인간인지 한껏 느끼는 시간을 갖겠지.


동굴에 들어가고 싶은 날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