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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디트 Mar 17. 2022

하드코어 게이머의 생각법

  하드코어라는 단어에는 어쩐지 막연한 동경심이 생긴다. 일단 단어 자체가 강인한 느낌이고, 왠지 장인 정신이 서려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여러 매체에서는 하나에 깊이 몰두하는 걸 미덕인 양 추켜세워왔고, 아마 그런 이미지가 뇌리에 깊게 박혀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마 '하드코어'라는 수식어를 명예 훈장처럼 당당하게 달고 살 그 하드코어 게이머들도 그런 고정관념에 단단히 잡혀 살고 있는 것 같다. 가끔 약간의 스노비즘을 섞어서 게임의 급을 아주 강경하게 나누는 글들을 보면 말이다.


  굳이 따지자면 난 라이트 유저라고 할 수 있다. 게임을 깊게 파기는커녕, 스토리를 완주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찬다. 어찌 되든 이 게임 빨리 깨고 치워버리고 싶다, 고 왕왕 생각하곤 한다. 그러니까 하드코어 게이머랑은 엄청나게 멀리 떨어져 있다. 천체로 비유하자면 태양이 게임의 핵, 하드코어 게이머가 태양과 수성 사이의 인근에 있다고 한다면 나는... 그래도 게임 프로그래머인데 태양계 안 어딘가엔 있겠지만, 아무튼 무척이나 차가운 상태의 운석일 것이다.


  아무튼 하나에 깊이 몰두하는 건 존경할 만하다.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이라는 걸 차치하더라도, 몰두라는 건 필연적으로 깊이 생각하는 것과 다름없을 것일 테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하기보다 죽기를 바랄 것이라고 했다. 아마 에디슨의 말이었을까. 그만큼 사람들은, 나는 생각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한다. 하지만 적어도 하드코어 게이머들은, 게임에 있어서만큼은 무척 유연하고 발전적인 사고를 하고 있을 것이다.


  생각에 관해 생각했다. 조금 뜬금없는 이야기이지만 생각에 관해 생각하다 보니 '생각에 관한 생각'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는데 전자책으로 읽다 보니 이 책이 얼마나 두꺼운 책인지 가늠이 되지 않아서 어라 이 책 언제까지 읽어야 끝이 나는 거지? 하면서 몇 달을 붙잡고 있었던 기억이 있다. 아무튼 나의 생각에 관한 생각은 꽤 오래된 생각이다. 오래된 이유야 매우 뻔한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내 약점이기 때문이다. 생각, 즉 사유하는 법 역시 훈련이 필요한데 막상 그 사유하는 법을 훈련했어야 할 시기를 나는 놓쳐버리고 말았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생각에 관해 생각할 수밖에.


  한 가지 궁금한 점은 일부 하드코어 게이머들은 어떻게 게임에 대해 그리도 진심으로 사유할 수 있으면서 특정 사안들에 있어서는 어떻게 그토록 꽉 막혀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깊게 생각하는 건 범용적이라서 여기저기 세상 모든 요소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좀 슬픈 생각이지만.


  어쨌거나 나도 깊게 사유하고 싶다. 게임이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면 팔랑이면서 다가오는 환절기 바람에도 깊게 사유하고 싶다.


  하지만 아마 오늘도 이 게임 빨리 깨고 치워버리고 싶다, 고 생각해 버릴 것만 같은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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