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왜 이모양일까
8살 반부터 10살 이전의 연령의 대부분의 아동들에게 있어서 문제는 거의 예외 없이 '사랑받는' -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는 - 문제이다. 이 연령까지의 아동은 아직도 사랑할 줄 모른다. 그는 사랑받는 경우 기쁘고 즐겁게 반응할 뿐이다.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황문수 옮김, 문예출판사, P.61
그때 나는 있는 그대로 사랑받는다고 느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서야 사랑을 넘어 선 과잉보호가 나를 결핍으로 이끌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과한 사랑은 결핍을 만들고, 결핍은 집착으로, 집착은 다시 결핍으로 악순환되는 감정이 계속되었다.
할머니는 깔끔한 성격이셨다. 항상 정갈했던 성격답게 조금이라도 더러워지거나 지저분해지는 것을 보지 못하셨다. 나를 밖으로 내보내는 일을 싫어하셨다.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동네 또래들과 어울리는 것이고 그것은 '지지야.'라는 말로 행동이 제지되었다. '지지'는 더럽다는 말로 '그거 지지야, 만지지 마.'의 줄임말처럼 사용되던 단어다.
'지지'에 막힌 아이의 호기심은 방에서 혼자 노는 것으로 채워졌고 할머니 치맛자락을 잡고 붙어 있는 것으로 애착이 형성되었다. 할머니가 집에 안 계신 날은 동네로 나갔지만 아이들은 나와 놀아주지 않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함께 어울려야 하는 사회성이 떨어진 것이다. 결국 할머니만이 유일한 친구였고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의 존재였다.
할머니와 떨어져 살게 되던 날, 이유도 모른 채 버려졌다는 감정만 남겨졌다. 어린 나로서는 이유를 알았어도 버려짐의 감정이 해소되진 않았을 것이다. 무서웠고 불안했다. 거의 모든 것이 '지지'에 막혔던지라 의지하던 유일한 대상이 사라진 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무엇을 판단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
버려진다는 두려움은 컸다. 성인이 되어서도 제일 두려웠던 것이 버려진다는 것이었다. 사람들과의 어울림이 어려운만큼 만나지는 모든 사람과의 이별이 두려웠다. 모든 감정은 집착으로 모였다. 나는 무엇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일은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의지하고 매달리는 일만 할 수 있었다. 집착은 이별을 앞당기는 기폭제였고 내가 가진 결핍을 수면 위로 드러나게 했다. 그 모습을 알아챈 사람들은 여지없이 그런 마음을 이용하고 떠났다. 부초같은 방황은 길어졌고 자존감은 도로의 껌딱지처럼 매일매일 납작해졌다.
사람들의 눈에는 내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칼라 영화에 흑백으로 존재하는 기분이었다. 간혹 파스텔 빛의 사람들이 곁에 있었지만 결핍을 채우기에는 부족했다. 언제 버려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눈치만 보게되었고, 그런 생각은 더 아무것도 할 수 없거나 판단할 수 없게 되었다. 분명히 숨을 쉬고 있는데 살아있지 않았다.
숨을 쉬는 것은 나인데 삶을 내가 살고 있지 않았다. 타인에 의지한 채 끌려다니느라 다칠대로 다쳤고, 지칠대로 지쳤다. 다시는 걸어 나올 수 없는, 더이상 들어갈 수 없는 동굴에 갇혔을 때 '나는 왜 이모양일까?'라는 문제와 직면하게 되었다. 나조차 이해할 수 없는 나를 끊임없이 타인이 해결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분명히 원인이 있을 것이다. 머릿속이 꽃밭이 아닌 이상 멀쩡하게 생겨서 왜 이렇게 사는지 알아야 했다.
원인을 찾고자 파헤치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된 사실이 '결핍'이었다. 그것도 사랑을 받지 못해서 생긴 결핍이 아니라 과잉보호가 만든 결핍이다. 이제 와서 할머니의 애정은 사랑이 아니었다고 할 수는 없다. 나름의 방식으로 나를 애정했고 아꼈고 사랑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때 난 분명히 사랑받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 틀린 애착을 가졌을 뿐이다.
마침내 '나는 왜 이모양일까?'라는 원론적인 문제의 실마리를 발견했고 여전히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