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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su Sep 08. 2020

새로운 거리 풍경

코로나 시대의 가능성


파크렛(Parklet)


샌프란시스코에서 핫하다는 거리를 걷다 보면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는 작은 휴식공간이 있다. 파크렛(Parklet)이라고 불리는 이 작은 공간은 주로 카페들 앞에 자리 잡고 있어 마치 카페에 속한 외부 공간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실은 보도를 확장하여 보행자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만든 공공공간, 공원(Park)이다.
샌프란시스코에는 이런 작은 공원들이 도시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실제로 파크렛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이런 공간을 마주하는 것 자체로 작은 발견의 기쁨을 느끼게 한다.

샌프란시스코 미션, 발렌시아 거리(Valencia street)의 파크렛


Rebar Group이라는 샌프란시스코의 아트 스튜디오에서 작은 실험을 했다. Rebar Group은 현재 운영하고 있지 않다. 여느 많은 도시와 같이 샌프란시스코는 70퍼센트 이상의 외부공간이 차량으로 가득 차 있고 공공공간은 부족한 실정이다. 도로를 차지하고 있는 주차공간에 주차비를 내고 그 주차공간을 대여하여 공공에게 개방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2005년 11월 16일, 그들은 샌프란시스코 시내의 햇빛이 잘 드는 주차공간에 주차비를 내고 정오부터 두시까지 2시간 동안 작은 임시 공원을 설치했다. 일시적으로 확장된 공공영역은 복잡한 도시 속에서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숨을 돌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주었다. 2시간 동안의 실험은 이후 파킹 데이 (Park(ing) Day)라고 불리는 세계적인 연례행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21개의 나라와 140개의 도시에서 매년 9월 셋째 주 금요일, 하루 동안 주차공간을 공원으로 변신시키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샌프란시스코에서는 2009년 만들어진 “Pavement to Parks”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일시적인 이벤트를 넘어 시 정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파크렛을 만들고 유지해 나가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2017년부터 "Groundplay"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파크렛뿐만 아니라 도시의 버려진 공간을 작은 광장으로 만들거나 학교 근처의 도로를 임시로 막아 아이들이 낮동안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하는 등 다양하고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슬로우 스트리트(Slow Street) 


2020년, 코로나 19로 인해 쇼핑몰, 실내 체육시설, 식당 등 많은 실내 공간 이용에 제약이 생겼다. 그로 인해 비교적 안전한 산이나 바다 혹은 집 주변의 공원, 거리와 같은 외부 공공 공간의 소중함과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는 요즘이다. 밀도 높은 도시 속에서 더 많은 주민들이 집에서 가까운 외부 공간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정책의 일환으로 샌프란시스코에서는 기존 12개의 도로를 보행자 중심도로로 지정하는 슬로우 스트리트 프로그램을 시작하였다.

현재는 30개가 넘는 도로가 보행자 중심 도로로 지정되거나 지정되기 위한 과정에 있다. 샌프란시스코 이외에도 오클랜드, 필라델피아, 뉴욕 등 많은 주요 도시에서 거리를 차량 대신 보행자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 내어주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새로운 식당/ 거리 풍경


올해 3월부터 캘리포니아 주 전체적으로 시작되었던 자택 대기령(Shelter in Place)은 몇 단계에 걸쳐 차차 완화되고 있다. 닫았던 식당들은 배달/ 픽업을 시작하였고 6월 중순부터는 야외 좌석을 개방할 수 있게 되었다. 산과 강으로 전전하던 어느 주말 우리는 격리 생활 거의 3개월 만에 외식을 해보기로 했다. 야외 좌석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억도 가물한 식당 앞에 도착하니 식당 바로 앞의 주차공간이 야외 좌석을 가진 파크렛으로 변해 있었다. 올해 말까지 시의 승인을 받아 임시로 주차공간을 야외 좌석으로 변경한 것이다. 자리에 앉기 전 간단한 안내를 듣고 체온을 체크한 후 자리에 앉았다. 음식을 주문하고 음식이 다 나올 때 까지는 마스크를 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마스크를 벗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음식이 나올 때까지 조금만 기다리자고 설명하며 음식을 주문했다. QR코드를 이용해서 메뉴판을 만지지 않고 핸드폰의 스크린을 통해 메뉴를 확인할 수 있었고 서빙하는 사람들도 마스크는 물론 페이스 쉴드까지 하고 조심스럽게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몇 달 만에 하는 외식에 신나기도 했지만 그릇, 수저 등의 위생이 걱정되기도 하고 옆 좌석에 있는 사람들까지 신경이 쓰였다. 긴장 속에서 오랜만에 반갑고도 어색한 외식을 마쳤다.   


코로나시대의 외식.


코로나 이전부터 자주 방문하던 집 근처의 상업 거리가 있다. 옷가게와 음식점이 즐비한 벌링게임 에비뉴(Burlingame Avenue)는 보통 주말이면 사람들로 북적북적한 인기 있는 거리이다. 한동안 상점들이 닫고 사람도 찾지 않아 썰렁했던 거리는 규제가 완화되고 야외 좌석이 가능해지면서 다시 활기를 찾아가고 있었다. 주말 일정을 가기 전 점심을 픽업하기 위해 오랜만에 들른 거리는 상상보다 더욱 북적거렸다. 주말마다 차량을 통제하는 거리는 보행자를 위한 거리로 변해 있었고 각 식당 앞의 도로는 주차 차량이나 통행차량 대신 임시 텐트와 야외 테이블/의자로 가득 차 있었다. 음식을 먹기 위해 앉아있는 사람들과 우리처럼 음식을 픽업하러 온 사람들, 빠르게 천천히 각자의 속도로 걷는 사람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킥보드와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 등 우리도 오랜만에 북적거리는 인파 사이에 섰다. 불안한 엄마 마음은 아는지 많은 사람들 속에서 아인이는 신이 났다. 킥보드를 타고 도로를 가로지르는 또래의 친구를 부러운 듯 바라보며 평소에는 밟아볼 수 없었던 도로 중앙의 노란선을 길삼아 걸어간다. 차로를 포함하니 갑자기 몇 배나 넓어진 보행로에 넓게 드리워진 나무 그늘과 많은 사람들이 만드는 경관은 현재 상황과 걱정을 잠시 잊게 하게 하는 익숙하면서도 특별한 광경이었다. 이렇게 사람들이 서로 직접 만나고 교류하고 소통하며 사는 게 우리가 원래 살아가던 모습인데 이제는 참 먼 예전의 이야기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코로나 시대의 주말 거리 풍경.


Rebar Group 이 스스로 했던 작은 실험이 전 세계적으로 퍼지며 도시 곳곳에 큰 움직임을 만들어 낸 것처럼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덕분에 공공공간에 대해 새롭게 실험해 보고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집 앞의 도로가 동네 공원으로 바뀌고 사람의 숫자만큼이나 차들로 복잡했던 주요 상업거리들은 주말마다 차 대신 사람들에게 거리를 내어주고 있다. 식당 앞의 주차공간은 적극적으로 야외 좌석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형태의 파크렛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아직은 마스크를 착용한 채 불안한 마음으로 서로를 조심스럽게 지나가며 바라보는 반쪽짜리 거리 풍경이지만 지금 우리가 새롭게 마주하는 도시 공간에 대한 실천과 경험을 통해 더욱 사람을 배려하는 도시의 새로운 공간에 대한 가능성을 본다. 도시 속의 대표 공원뿐 아니라 도시의 자투리 공간이나 주차공간을 내어 만드는 일상의 공간, 작은 공원의 일시적이고도 장기적인 변화를 몸소 체험하며 코로나 이후 다가올 새 시대의 도시 공공공간의 진화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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