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택시에 실려서 온통 초록이고 온통 볕인 남산을 넘어가다 신호등에 섰다. 기사님이 고개를 젖혀 앞창 너머로 솟은 남산타워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오십 년 전에는 저기 올라가서 많이 울었어요."
그제서야 얼굴을 들어 기사님을 쳐다보니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아버지다. 나지막한 목소리가 듣기에 좋다.
"왜 우셨어요"
"고향이 그리워서 집에 가고 싶어서 울었지요."
"고향이 어디세요?"
"부산이에요."
그러고 보니 억양에 남쪽 바다의 흔적이 남아있다. 오십년 전, 남산타워에 올라 내것이 아닌 도시를 내려다보며 내것이 그리워 울던 젊은이가 말한다.
"형이 요 아래 후암동에 살았거든요. 하도 올라오라고 해서 올라왔는데 그렇게 힘들 줄 몰랐지."
예전 후암동은 상경한 사람들이 정착해 살던 동네라고 들은 적이 있다. 동쪽 서쪽 남쪽 각지의 익숙한 역에서 기차를 탄 사람들이 낯설고 복잡한 서울역에 일제히 내려 멀리 가지 못하고 역 근처의 동네에 터를 잡았다는 이야기는 재미있기도 하고 짠하기도 했다.
"택시 운전은 얼마나 하셨어요?"
"45년 했지요. 큰 꿈을 안고 서울에 와서 차에서 인생을 다 보낸 거지. 이제 차라면 신물이 나요. 이것도 올해까지만 하려고요."
"부산으로 다시 가실 거예요?"
"아니. 부산도 서울도 아니라 어디 한적한 데 가서 마누라랑 오손도손 살려고요."
고불고불 소월길을 지나 둥그렇게 휘어진 힐튼호텔을 지나 꺾어내려가면 갑자기 한쪽은 빽빽한 빌딩 숲 맞은편은 옹기종기 식당들이 모여있는 복잡하기 짝이 없는 대로다.
"지금은 개인택시를 하니까 그래도 낫지. 예전에는 회사택시를 몰았으니까요. 애들 학교에서 아버지 직업을 써오라고 하잖아요. 회사택시를 몬다고 쓰는 게 죽기보다 싫은 거예요. 지금은 개인택시를 하니까 그래도 낫지.."
그 복잡하기 짝이 없는 대로의 한중간 어느 빌딩에서 나는 십 년째 일을 하고 있다. 맞은편 서울역 앞에는 여전히 동쪽 서쪽 남쪽 어느 익숙한 역에서 타고 내린 사람들이 휴대폰으로 지도를 보며 걷는다.
"고맙습니다."
"조심히 가세요."
택시에서 내리자 공기가 여름처럼 뜨거웠다. 어떤 일을 질리도록 해봤다는 거, 45년 동안 같은 일을 하셨다는 거, 제가 해보지 못한 일인데 되게 멋있는 거 같다고. 그걸 말했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익숙한 빌딩 속으로 들어와 다시 내 자리에 앉았다. 이제 차라면 신물이 나버린, 부산이 고향이고 서울이 집인, 45년 경력의 베테랑 택시 기사님이 살고 싶은 곳은 어디일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