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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디대디 May 14. 2023

배운데로 가르치는

비교는 독이된다

벌써 5월이다.

내년이면 학교에 가야 하는 7살 아들은

아직 한글을 떼지 못했다.


영어학원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자기 몸만 한 가방을 메고 내리는 아들을 보면

뭔가 안쓰러운 생각이 들다가도

집으로 와 소파에 앉아서 티비를 켜곤

열심히 색종이 접기 산매경인 아들을 보면


이러다 올해가 다 갈까 싶어 걱정이 태산이다.


오늘은 정말 안 되겠다 싶어.

"아들. 5분 있다 티비끄고 아빠랑 한글공부하자."

역시나 아들은 대답이 없다.  

"5분이다. 5분 있다가 아들이 안 꺼도 아빠가 끌 거예요."

5분 뒤, 알람이 울리고

역시나 내 예상대로, "이것만"을 시전 하는 아들이지만

오늘만큼은 얄짤없이 꺼버렸다.


한참을 실랑이를 벌이다, 겨우 달래어 아들을 자리에 앉혀본다.

최근, 한글공부에 안달 난 우리 부부가 당근에서

큰맘 먹고 구매한 한글공부 교재를 펴 놓고는

 '거북이'를 가리키고

"자. 아들 이거 어떻게 읽지?"

"거북이"

"오. 잘하네."

‘? 생각보다는 잘하네. 그림 보고 맞추는 건가?‘

이번에는 조금 생소한 가리킨 뒤 물어본다.

"...ㄱ.. 데"

"도"

"도"

"다음 글자 읽어볼까?"

"시"

"오 잘했어 마지막은?"

"ㄹ.. 라"

"락"

"도시락. 아들, 단어를 외워서 하니 어렵지? 우리 한글도 규칙이 있어."

지적당한 것이 속이 상한 건 지

갑자기 딴짓을 하기 시작하는 아들 녀석.

"아들. 집중해야지. 자 봐봐 이게 자음이고 이게.."

여전히 다른 곳을 본 채로 내 얘기는 듣는 둥 마는 둥인 아들 녀석을 보자,

갑자기 속에서 열불이 났다.


정말 이러다가는 초등학교 가기 전에 한글도 못 떼고 보낼 것 같았다.

그래서, 경쟁심이 강한 우리 아들에게 가장 확실하게 먹힐 카드를 꺼내기로 했다.


"같은 반 다른 친구들은 대부분 한글 읽던데, 우리 아들만 못하면 어떡해"

"ㅇㅇ도? ㅇㅇ도?"

"그래. 지난번에 보니까 다 읽더라"

"거짓말. ㅇㅇ도 한글 못 읽어."

"아닌데, 우리 아들 빼고 다 한글 읽을 줄 알던데."


아들의 동그란 눈망울에 눈물이 맺힌다.

'아뿔싸'

"아빠 진짜 나쁘다. 맨날 짜증 나게 하고."

"아빠 나가"

결국 아들의 입에서 나가라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보통 때 같으면,

"미안해라고 말해"라고 하거나,

고사리 같은 손으로

 팔을 한 두대 때리고는 마는 아들이,

왠지 힘없이 침대 위로 올라가 눕고는

이불을 뒤집어쓴다.


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나.


'내가 방금 무슨 짓을 한 거지?

의욕만 앞서서

요령 있게 가르치지는 못하고

아들에게 하면 안 되는 말을 했구나.'


'나도 누구랑 비교당하면 기분이 정말 나쁜데'

'아들은 얼마나 속상했을까.'


돌아누워있는 아들을 조심히 불러본다.

"아들. 미안해. 아빠가 잘못했어"

"아빠 진짜 밉다. 진짜 나쁘다."

"아들 미안해 진짜 진짜 아빠가 나쁘다. 바보다 바보."

쿵 쿵.

스스로 꿀밤도 때려가며 아들에게 사과를 해본다.

"아들 미안해 아들. 잘하고 있는데 아빠가 괜히 욕심 때문에  하면 안 되는 말을 했네."

"에이 바보다 바보."


착한 우리 아들.

다행히 못난 아빠를 또 용서해 준다.


아들을 꼭 안아본다.

"미안해 아들. 아빠가 못 배워서 그래. 너는 누구보다 잘하고 있어."


어렸을 때

항상 남과 나를 비교하고

더 나아지려고 아등바등했던 내게

비교는 그리고 열등감은

성장의 열쇠였다.


하지만

그런 비교가 얼마나 큰 고통을 동반하는 행위인지,

제 살을 깎아먹는 행위인지

깜빡했나 보다.


더 훌륭한 방법으로 가르쳐야 하는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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