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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못미 Dec 12. 2018

무제 (18.09.25)

위상동형의 사랑은 25공탄 연탄을 향한다

위상동형의 사랑이라는 말을 만들어 내고는 꽤나 마음에 들어했었다. 형태가 같은 것이 아니다. 위상이 같은 것이다. 이를테면 가운데 구멍이 뚫린 도넛과 손잡이가 달린 머그잔. 이 둘을 아무리 이리저리 반죽해서 모양을 매만져보더라도 구멍이 없는 상태와 하나의 구멍이 뚫린 상태, 그 위상차 때문에 결코 같아질 수가 없다. 서로 모양은 다르지만 위상학적으로 같은 형태를 가진 수 많은 사물들. 색연필과 알전구는 같고, 빨대와 인간이 같다. 말은 무시무시하지만 결국 구멍이 몇 개냐의 문제로 치환된다.


이 위상동형의 문제를 가지고 씨름했던 수학자가 있다. 그레고리 야코블레비치 페렐만. 그가 매달린 문제는 이렇다. 우주는 고로케인가? 아니면 하나 이상의 구멍이 뚫린 도너츠인가? 수년 간의 칩거 생활 끝에 그는 해냈다. 100년 넘게 풀리지 않던 난제 푸앵카레 추측을 풀어낸 것이다. 세계사에 길이 남을 그의 공로를 세계 방방곡곡의 언론들이 받아적었고, 그 메아리가 한국에도 물론 도착했고, 네이버 실시간 검색에 올랐고, 내게까지 닿았다. 이게 바로 내가 위상동형을 생각하게 된 경위다.


그러니까 나는 페렐만 덕분에 이런 질문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네 심장은 고로케니, 아니면 하나 이상의 구멍이 뚫린 도너츠니? 나는 고로케보다는 도너츠를 좋아하고, 그보다는 25개의 구멍이 뚫린 연탄 인간을 사랑한다. 한국에서 주로 사용되는 연탄은 22공탄이라고 한다. 구멍의 갯수는 연탄의 성능과 연관이 있다. 구멍이 많으면 불과 연탄의 접촉면이 넓어지고, 그러니까 25공탄에 구멍이 세 개 더 뚫려야 했던 이유는 불이 잘 붙지 않는 저질 석탄의 화력을 메우기 위한...


뭐 그런 식의 이유다. 부족함 때문에 가슴에 세 개의 구멍을 더 뚫고 살아야 하는 인간들, 본질적인 우위 보다는 삶의 태도가 그렇다는거고. 여튼간에 그런 사람들과 만나 서로의 가슴에 뚫린 구멍을 서로 하나씩 메워나가는 삶을, 사랑을 하고 싶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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