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학기가 끝나자마자 학교 친구들과 부산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3일차 점심에 남포동에 들른김에 부평동 냉채족발을 먹기로 했고, 기왕이면 먹는김에 백종원 3대천왕에 나왔던 음식점에 가기로 했다. 날이 굉장히 더웠기 때문에 시원하게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코가 뻥 뚫리는 겨자의 매운맛과 차가운 족발의 식감이 절실했다. 생각해보면 맛이 없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백종원이 추천한 맛집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애석하게도 지금 갑자기 기억이 안나는데, 냉채족발집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배가 어느정도 차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부산까지 왔는데 맛집을 코앞에 두고 돌아갈 수 없어서 남자 넷이서 테이블 하나 잡고 앉아 냉채족발 小 + 사이다 한 병을 시켰다. 그때가 대략 2시 반에서 세시 정도로 피크 타임은 지나있던 시간이었고 가게의 절반이 빈자리였기 때문에 문제가 될거라고는 생각치 못했다.
웬걸, '小'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서빙 아줌마의 태도가 트리플 악셀처럼 돌아버렸다. 처음엔 우회적으로 "총각 넷이서 작은거 먹기에는 부족할텐데?" X 4로 잽을 날리더니, 에어컨 바람이 너무 직선으로 와서 자리를 옮기니까 "아 왜 자리를 옮기고 난리야"로 원 투를 날리고(물론 그릇과 숟가락 등은 우리가 다 옮겼다), 주방으로 돌아가면서 씨부렁씨부렁 소리로 어퍼컷을 날렸다. 사람이 줄 서서 기다리는 피크타임도 아니고 음식 팔아주겠다는데 그렇게 불쾌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머릿 수 넷만큼 뽑아먹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해 유감이었다는 설명 말고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 아줌마 사장도 아니었던거 같은데?
화가 났지만 오히려 "많~이 파시고 번창하세요~"라고 덕담을 던져주고 나왔다. 그리곤 옆옆집 가서 냉채족발 '中'자에 원래 계획에 없었던 막국수까지 시켜서 먹었다. 가격대비 양도 괜찮았고 맛도 있었다. 이 이야기는 어쩌면 개인적인 경험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맛집'이라는 카테고리 아래 무심코 소비하고 있는 콘텐츠 안에는 '접혀있는 영역'이 존재한다. 이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사실을 함축하고 있기도 하다.
백종원이 방송에 출연해 신드롬을 일으킨지도 벌써 1년이 지났다. 그 사이 백종원이라는 이름은 고유명사에서 일반명사화 되었으며, 다양한 결에서 읽힐 수 있는 단어가 되었다. 오늘날 백종원은 얼핏 허술한 이미지로 비치고 있지만 미디어에서 뿐만 아니라 (주)더본코리아의 대표로 현실 두 세계 모두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존재다. (2015년 매출 1260억, 당기순이익 69억)
그 영향력을 생각해보면 '백종원이 방송에서 추천한 맛집 리스트'가 등장했다는 것은 딱히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보다도 주목해야 할 지점은 대중들이 백종원을 '맛 평가 틀'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중들은 전문가로서의 백종원이 부여하는 권위에 기대어 효율적인 맛집 선택에 성공하기를 바란다. 물론 백종원의 맛집 리스트를 보고 찾아간다고 해서 모두가 백종원이 설명한대로 맛을 보고 느끼고 평가하지는 않겠지만, 본의 아니게 기본적인 준거틀로 작용한다. 백종원의 이름이 음식에 개입한 순간, 어느 정도는 백종원이 표현했던 맛을 현장에서 재현하기를 바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우리는 백종원이 아니며, 맛집 프로그램 속에 살고 있지도 않다. 백종원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와, 식사 환경과 실제 현실은 다르며, 방송과는 달리 우리가 일상적인 금전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강하게 자각해야 한다. 대중은 미디어 강효과 이론의 시대를 넘어서 주체적인 사용자의 지위를 회복했지만, 스마트 기기의 시대인 오늘날 미디어의 영향력은 재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미디어가 일상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물리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급격히 증가했고 그로 인한 문제 또한 발생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백종원의 3대천왕>에서는 음식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노력과 장인정신을 공들여 설명하고, 화면에서는 음식의 질감이 클로즈업과 동시에 슬로우모션으로 강조되며, 과장된 액션과 맛 묘사가 등장하는 장면은 이 프로그램이 갖고 있는 '푸드 포르노'로서의 전형성이다. 아프리카 BJ들이 발견한 먹방이라는 욕구자극 메커니즘을 가능한 모든 인프라를 활용해 적극적으로 발전, 계승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포르노가 일상 속의 성생활을 망친다는 연구 기사는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가상세계에서 충족하는 비현실적으로 강렬한 자극에 익숙해지다보면 현실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귓가에 고기가 구워지고 튀김이 튀겨지면서 내는, 마치 빗소리를 듣는 듯 편집된 사운드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마주하게 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고, 이 역시 일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언급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섹스 포르노'와 마찬가지로 '푸드 포르노' 역시 그 비현실적인 자극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인터넷에 존재하는 수많은 맛집 블로그들, 아프리카 먹방BJ들, 지상파와 공중파의 미식 프로그램들 모두 일관되게 포르노적인 자극을 팔아 왔으며, 우리는 그러한 소비양식에 적응한 대중들이다.
미디어가 비추는 것과는 달리 일상은 전혀 극적이지 않다. 종종 시시한 반복의 연속을 뚫고 벌어지는 몇몇 행복한, 혹은 우호적이지 않은 사건들이 간헐적으로 드러날 뿐이다. 그렇기에 미디어의 영향력이 부각될 수 있지만 그 결과물의 유해성에 대해서는 아무도 규제하지 않는다. 우리는 푸드 포르노의 '접혀있는' 뒷면을 직시하고, 반대로 접혀있는 현실의 일상성에 주목해야 한다.
일상은 '식샤' 블로그의 빈그릇을 상상력으로 채워내듯이, 미디어가 제공하는 자극의 수용이 아니라 내 힘으로 채워갈 때 충만해질 수 있다. 포르노에 대한 무의식적인 소비를 극복하고 일상의 무료함에 우리의 힘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낮에 쓰기 시작했는데 다 쓰고 나니 벌써 저녁 먹으러 가야될 시간이다... 뭐 먹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