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나는 식욕이 강한 편이 아니다. 숨은 맛집을 찾아 인천에서 명동까지 행차하여 한 끼만 먹고 돌아온다든가, 여행을 가서 꼭 먹고 와야할 음식집을 미리 찾아놓는다든가 하는 일이 없다. 조금 더 정량적으로 얘기해보자면 뷔페에서 남들이 거뜬히 세네그릇을 비울 때 두 그릇이면 양이 차는 사람이다. 게다가 입이 짧고 입맛도 까다로워서 음식을 먹으면서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껴본게 몇 번 안 된다.
가끔 주변 사람들이 먹을 걸로 스트레스를 풀거나, 평범한 음식점에서 맛있다고 감탄하는걸 보면 '대체 뭐가 저렇게 좋을까' 신기하기도 하고, 그래도 인생의 행복을 가까운 곳에서 찾을 수 있는게 부럽기도 하고 그런 사람이다. 그렇다고 맛을 못느끼거나 굳이 피해다니지는 않는다. 종종 먹는게 귀찮아서 끼니를 거르다가도 때론 '일점호화주의'식의 느낌으로 두 끼 금액의 식사를 하는걸 즐기기도 한다. 맛없는 두 끼보다는 맛있는 한 끼를! (참고로 나는 일식을 매우 좋아한다)
자연스레 '양보다는 질'을 모토로 삼은 내게 맛집 명중률은 상당히 중요한 지표가 된다. 한 때는 네이버에서 'oo동 맛집' 같은 키워드로 검색해서 몇 군데 찾아가보곤 했는데 실망스러운 경우가 많았다. 내 불만족스러웠던 경험이 단순한 인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 실제로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마이클 루카 교수, 보스턴 대학의 조지오스 제르바스 교수가 연구를 통해 이런 현상에 대해 설명해놓은 바 있다.
부정적인 평가가 우세하거나, 명성이 낮거나, 체인점일 경우 가짜 리뷰를 올릴 확률이 높으며, "가짜 리뷰는 단순히 식당 주인이 비윤리적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이 증가하거나 명성에 흠이 갔을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생겨난다"는 것인데, 마냥 일반화시키기는 어렵겠지만 아예 일리없는 말도 아니라는 소리. 꼭 이렇게 고상하게 설명하지 않더라도 포털사이트의 맛집 정보는 대부분 광고, 어뷰징으로 뒤덮인 쓰레기 정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어딘지 모르겠지만 아스트랄하다.' 몇 년 전 '식샤를 합시다'라는 블로그를 처음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이다. 맛집 리뷰 포스팅이라면 접사 + 보정 + 필터로 사진에 공을 들이고 마땅히 MSG같은 형용사와 부사의 홍수가 곁들여져야 한다. 그러나 이 블로그에는 음식 빈그릇, 간간히 아방가르드한 드립을 섞은 몇 줄의 코멘트가 전부다. 심지어 사진 없이 그림으로 대체한 포스팅도 있다. (추-ㅇ격!)
맛집 포스팅은 글 작성자가 직접 해당 음식을 먹은 뒤 솔직한 평을 남김으로서 독자의 신뢰를 확보하고 동시에 식욕을 자극하는 효과를 노린 마케팅 방식이다. 맛있어 보이도록 찍은 음식 사진 및 맛 묘사는 필수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식욕을 자극하는 1차적이고도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식샤를 합시다'에는 그런 요소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문득 빈그릇 사진을 올린다는 것은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걸까. 집에서 빈둥빈둥 하는 것도 없이 밥만 쳐먹고 놀다보니 궁금해졌다. 우선 '푸드 포르노'라는 맛집 포스팅으로서의 중요 기능이 사라졌다. 마땅히 존재해야 할 자극적인 이미지들이 제거됨으로서 포스트 구독자의 주의가 다른 곳으로 분산된다.
분산된 시선은 어디로 가는가? 사진에서 이미 충족되지 못한 할 음식에 대한 정보를 찾기 위해 글로 옮아가고, 이용자는 빈그릇과 음식에 대해 묘사된 제한적인 정보에 의존하여 맛과 형태를 상상하고 비어있는 정보를 채워넣게 된다. 일반적인 맛집 리뷰 포스팅에서 이미지를 사용한, 직관적이지만 낮은 수준의 인지처리가 일어나는 것과는 비교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위의 이유들은 다소 부차적이다. 무엇보다도 '식샤' 블로그의 가장 큰 덕목은 '신뢰'와 '재미'다. 블로그를 살펴보다보면 종종 음식 사진이 등장할 때가 있다. 본인이 직접 먹은 음식이 아니거나 맛이 없어서 먹지 않은 경우다. (본인이 직접 먹은 음식이 아닌 경우 - '만나면 짬뽕', 맛이 없어서 먹지 않은 경우 - '헬피자') 즉, 빈그릇은 "하나도 안 남기고 깨끗하게 먹을 정도로 맛있다"는 사실을 전면에 내세우는 인증의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도 기존의 천편일률적인 맛집 리뷰를 유쾌하게 비틀고 독자적인 재미요소를 넣어 독자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꼮", "그럼 이만", "아..." 같은 어휘를 고정적으로 사용한다든가, 이유 없이 가게의 간판 일부를 확대한다든가, 소소하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 잠복하고 있는 드립들에 대한 댓글 반응을 보면 이 블로그의 성공 요인을 짐작해볼 수 있다.
맛집 포스팅의 궁극적인 목표는 "독자가 포스팅을 읽고 해당 음식점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갖게 하며 더 나아가 가게 방문을 유도하는 것"이다. 비록 음식을 제대로 찍어놓은 사진은 한 장도 없지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생각해도 좋지 않을까. 어쩌면 모두 관습과 수단에 목매고 있을 때 본질을 꿰뚫어본 예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