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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못미 Mar 18. 2017

페이스북, 필터버블, 실패적

SNS의 필터버블 속에서 살아남기

별 생각 없이 활동로그를 봤는데 어제가 페북 비활성화 한지 한 달째 되는 날이었다. 중간에 자취방 문제로 도움을 받아보려고 이틀정도 다시 활성화 하기는 했었지만 어쨌든 시작-끝으로 보면 한 달 맞다. 지금껏 한 달 동안이나 페이스북 계정을 비활성화 한 적은 없었다. 매번 실패의 원인이었던, 나를 격렬하게 괴롭히던 충동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비활성화를 유지할 이유가 없어져 그동안의 생각을 정리해본다.

그간 페이스북을 사용하면서 주체할 수 없는 타임킬링과, 그로 인해 스스로를 컨트롤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자책하기도 했다. 수차례 어플을 지우고, 계정을 비활성화 하고, 때로는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다양한 방법들로 '디지털 디톡스'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미처 페이스북을 버리지 못한 이유는 정보수집이라는 이유로 끝끝내 정당화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필요성을 넘어 끝도 없는 소식과 그곳에서 벌어지는 의미 없는 논쟁이 결국 극도의 피로감으로 이어졌고, 계정 비활성화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되었다. 페이스북을 안하는 동안 인스타를 심심찮게 했으니 SNS를 아예 안했다는 소리는 아니다. 몇몇 SNS 채널은 여전히 좋은 친교 수단이지만 각각의 목적에 맞게 사용해야 한다는 소리다.


사실 애초에 근 몇년간 페이스북을 친목이나 관계형성의 용도로 쓴 적이 없었다. 오히려 뉴스피드에 유용한 소식을 받아서 쉽게 접하고, 자료를 정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했다는 쪽이 훨씬 가깝다. 나 뿐만 아니라 요즘 대부분의 페이스북 유저가 그렇고, 저커버그가 생각하는 페이스북의 미래도 이러한 기조의 연장선상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페이스북을 떠나게 만든 회의감의 근본적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SNS를 나름의 방식으로 건강하게 활용하고자 했던 노력 때문이었다.

필터버블을 극복하고 싶었다. 필터버블에 대한 위키피디아의 정의를 참고하자면 이렇다.


"개인화된 검색의 결과물의 하나로, 사용자의 정보에 기반하여 웹사이트 알고리즘이 선별적으로 어느 정보를 사용자가 보고싶어 하는지를 (...) 그 결과 사용자들이 자신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 정보로부터 분리될 수 있게 하면서 효율적으로 자신만의 문화적, 이념적 거품에 가둘 수 있게 한다."


이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은 많겠지만 결국 필터버블에 갇히게 되면 나도 모르는 사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세상 속에 살게 된다는 뜻이다. 생각이 편협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뉴스피드에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유용한 채널을 말 그대로 '수집'하기 시작했다. 나는 멍청하게도 이러한 수집 활동이 필터버블을 방지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내가 열심히 다양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접근할 수록 뉴스피드는 정보의 홍수로 범람하고 있었다. 필터버블을 피해 다른 차원의 재앙으로 건너온 셈이다.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정보량이 뉴스피드로 밀려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더이상 내 계정은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 사나운 곳이 되어버렸다.


그동안의 노력은 편향된 소식만을 실어다주는 뉴스피드나, 새로고침할 때마다 수십개의 게시물이 올라오는 뉴스피드나 정신건강에 해롭기는 마찬가지,라는 다소 어처구니 없는 결론만을 남기고 증발해버렸다. 그래도 여기서 한 발짝 물러나 생각해보면 필터버블, 가짜뉴스 등의 이슈들은 근본적으로 '인간이 매체를 통해 현실을 어떻게 구성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수렴한다.


미디어화 된 세상에서 우리는 끝끝내 성공적으로 현실과 만날 수 있을까? 가짜뉴스가 판치고 허구적이고 편향된 세계에 사용자들을 몰아넣고서 이익만 챙겨가는 페이스북은 비윤리적인 기업일까? 이런 현실 속에서 정말로 민주주의가 작동가능하다고 믿는 것은 순진한 생각일까?


나는 기본적으로 '진실', '정확', '대중의 선한 의지' 같은 수사의 유효성에 대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큐레이션이나 개인화라는 명목으로 필터버블을 조장하는 미디어 기업들만이 절대적으로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인용해가며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할 개인의 권리를 옹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을 향해 압력을 행사하고 귀를 닫아버리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관념과 현실은 같은 자리에 누워 서로 다른 꿈을 꾼다. 물론 기술의 발전이 인간 삶의 질에 언제나 긍정적인 영향만을 미칠 수는 없고, 또 그렇게 되도록 통제할 수도 없으며, 무엇보다도 기술의 긍정/부정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론상의 자유만을 외치며 기술의 일방적인 폭주를 방치하기 보다는 기술 역시 사회적 구성물 중 한 요소에 불과함을, 그보다도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이 결정적으로 미성숙한 존재임을 전제에 두는 자세가 필요하다.


길게 에둘러 도달했지만 결국 하고 싶은 얘기는 우리 사회는 페이스북의 기술을 온전하게 이용할 준비가 덜 돼있다고 얘기하고 싶었다. 어쩌면 나 혼자만의 실패로 전체를 일반화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생각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어쨌든 나는 실패했다는 것이고 이쯤에서 내 실패를 매듭지어본다. 열심히 발버둥 치며 똑바로 생각하며 살고 싶다. 비록 이런 발버둥이 쓸데 없고 쪽팔려 보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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