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상 Feb 06. 2016

울음약

사랑에 대해서

여자 K는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냈다.  가슴속 깊이 묻어두었던, 잊고 싶었던 그 부분을 날카롭게 도려내어 눈으로 흘러내렸다. 무엇이 그렇게 서러운 것일까. 나는 알 수 없다. K는 나를 바라보며 괜히 웃어본다. 난 그 웃음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나 제대로 살 수 있을까요?”


숨이 목 끝에 간신히 걸려있다. 살짝 쉰듯한 목소리가 울렸다. 고개를 들어 그녀의 눈을 바라봤다.  오른손의 맥주가 찰랑거렸다. 그리곤 애써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웃음을 나마저 무시해버리면  안 될 것 같았다.


“하하… 아주 잘 만  살아갈 거예요.”


이 말이 얼마나 상처가 될까. 찢어진 상처 위로 소금을 뿌리듯이, 부러진 곳의 피를 빼내는  것처럼. 아릿한 감정이 정해져 온다. 나는 견딜 수 있다. 내가 견뎌야 그녀가 편하다. 어떠한 동정도 연민도 아닌 순수한 공감. 그게 필요한 게 아닐까?


“그 사람은 어떤 것 같아요?”

“… 그냥 계속해서 연락이 와요.”

“붙잡나요?”


내 물음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K의 눈망울이 흐릿하다.


“그냥 미안하다고… 하네요.”


자세를 고치며 소파에 몸을 고쳐 안는다. 시끄러운 가죽 소리가 난다. 창문이  바깥소리에  삐걱댄다. 흔들리는 소리가 무섭다. 창에 비친 K의  얼굴빛이 흐릿하다. 


“약… 필요해요?”

“…네.”


이 부분이 너무 싫다. 결국엔 이렇게 흘러간다. 돌이킬 수 없는 이 타이밍, 내가 말을 뱉어내고 나서도 후회된다. 난 이 약을 줄 수밖에 없다. 그게 K를 편하게 하리라.


“주의사항은… 말하지 않아도 알죠? 먹는 순간 K 양은 모든 울음을 다 버리게 될 거예요.”

“네…… 네…”


그녀의 광대뼈 위로 한 줄기. 입술 위로 한 줄기. 그리고 빛을 잃어버린 눈. 무엇이 위로가 될까. 이미 위로는 필요 없는 걸 수도 있다. 그녀는 선택했다. 선택이란 너무 잔인하다. 책임감이 어깨 위에 무겁게 내려앉는다. K의 축져진 어깨는 금방이라도 쏟아져 그녀 자신마저 녹아버릴 것만 같다.


소파 앞의 탁자에 놓인 조그만 플라스틱 보관함을 열어본다. 딱 한알. 조심스럽게  집게손가락으로 집어 그녀의  손바닥 위로 향한다.


“자 받아요.”


대답마저 사라져 꼭두각시처럼 손을 움직인다. 가볍게 떨리는 손가락이 조금은 안쓰럽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그녀 앞으로 따뜻한 물을 옮긴다. 온도는 30도. 아까 물을 타월 때 늘 쓰던 온도계로 쟀다. 이 온도가 적당하다. 목으로 넘어가는 느낌도 약기운이 퍼지는 시간도 그녀에게 딱 맞을 것이다.


“10분 뒤에 오겠습니다.”


그녀는 손바닥 위에 놓인 알약을 조심스럽게 쥐어 입으로 향한다. 고개를 젖히자 귓불에 눈물이 맺힌다. 일어서서 마지막으로 그녀를 돌아본 뒤에 문을 닫는다. -끼익-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힌다. 동시에 문 너머로 들리는 K의 통곡.


이렇게 또  한 명의 울음은 사라진다. 돌이킬 수 없다. 약은 독하다. 요즘 들어 약을 찾는 이들이 늘었다. 이곳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를 사막으로 만든다. 오아시스는 없다. 지독한 모래와 바람만이 눈물샘을 채운다.


가끔 어쩌다 이런 직업을 가지게 된 걸까 후회한다. 처음에야 고통을 덜어준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의 감정이 나에게 영향을 미쳐온다. 평균 수명이 가장 낮은 직업군이란 얘기도 신문에서 본  듯하다.


-삐빅- 손목 위의 시계가 울린다. 약속했던 10분, 몸을 돌려 다시 방으로 향한다.


“엄청 신기하네요.”

“뭐가 신기하죠?”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슬픔이 사라졌어요.”

“약 효과가 괜찮죠?”


K는 아까와는 다른 덤덤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양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만지며 아까의 눈물 자국을 훑는다. 눈꼬리를 검지 손가락으로 만지며 신기한 듯이 살짝 눌러보기도 꼬집어 보기도 한다.


“자, 다음 단계로 넘어가 볼까요?”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는 K.


“서류의 질문을 보면서 지금 상태에 대해 솔직하게 적어주세요.”


나는 그녀와 서류를 번갈아 바라보며 여러 가지 설명을 했다. 그녀는 나의 환자다. 내가 약을 처방한 만큼 내가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환자의 상태를 잘 파악하여 상담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K처럼 처절하고 죽을 것만 같은 감정에서 약으로 인해 그러한 감정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은 커다란 공허감을 남길 수 있다. 어쩌면 K에게는 슬픔보다 공허함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나의 초보 상담가 시절, 첫 번째 환자, 또한 그녀였다. 그녀도 약을 찾았고 끊이지 않던 울음이 그쳤다. 나는 그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 줄 알았다. 기쁘게 약을 주었고 처방한 뒤의 그녀와 즐겁게 상담을 하며 그날의 일정을 모두 마쳤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아니, 완벽한 줄로만 알았다.


“다 썼어요.”


K의 말에 상념에서 깨어나 다시 눈을 바라봤다. 그리곤 탁자 위 옅은 주황색으로 얼룩진 컵을 바라보았다.


“이런, 차를 다 드셨네요. 제가 더 가져오도록 하죠.”


서류를 슬쩍 보고선 주방으로 향해 홍차를 탄다. 시내에서 자주 찾는 홍차 집에서 주문한 것이다. 물이 끓어오르기 전에 전기포트를 들어 컵 위로 따른다. 홍차 냄새가 방 안으로 퍼졌다.


“K 양은 울음을 다 버렸기에 그 부분을 채울 수 있는 대체할 무엇인가가 필요할 겁니다. 마음을 굳게 먹으셔야 합니다."

“후훗, 정말 마음이  홀가분하네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에요."


그녀는 홀가분한 것이 아니다. 단지 울음을 버린 것이다. 그녀 안에서, 원래 없던 것처럼.


“일단은 모든 상담이 다 끝났습니다. 하지만 조심하세요. 적어도 한 달은 감정 기복에 주의하셔야 합니다.”


K는 소파에서 일어나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맞잡고 흔들었다. 그녀에게는 악수, 나에게는 아쉬움과 같겠지.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까 전 첫 번째 환자를 떠올렸다. 그녀는 상담실을 나가고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지하철 역에서 발견되었다. 그렇다. 정확히 ‘발견’인 것이다. 철로 위에 싸늘히 누워있는 그녀의 모습은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죄책감에 몇 달을 고생하기도 했다.


그녀의 사인은 익사였다. 약마저 없애지 못한 울음이 차오른 것이다. 폐와 기도를 가득 채운 눈물이 철로를 적시었다. 얼굴의 구멍이란 구멍으로 울음이 나와버렸다. 입꼬리가 올라가 살짝 웃고 있는 얼굴은 조금 기괴스럽기도 했다. 


좋지 않은 기억이다. 나는 더 이상의 기억은 애써 억누른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하여 몸을 돌렸다. 방의 홍차 냄새는 아직 가득했다. 소파에 앉아 남은 홍차를 홀짝거렸다. 그녀가 쓴 서류를 집어 다시 한번 읽기 시작했다. 철저해야 한다. 첫 번째 그녀처럼 돼서는 안된다.


걱정이 된다. 처음 그녀의 사정을 들었을 때 나는 상담을 하지 않으려 했다. 왜 이 생각이 지금 드는 걸까.


-지금의 마음 상태를 3가지 단어로 표현해주세요.-


지극히 평범한 질문지의 3번째 문항. 그 아래의 K의 답.


-기쁨, 가벼움, 시원함-


다행이다. 그녀가 먹은 약의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다행스러운 마음도 잠시뿐, 불안감이 멈추질 않았다. 과거의 망령이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왜, 왜 그런 거지? 생각이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과거의 일이 반복될 것만 같은 두렵고 어두운 기분이 내 어깨를 기어 다녔다.


“택시!”


생각보다는 행동이다. 절대로 그때처럼 '발견'되어서는 안된다. 서둘러 나가 택시를 잡았다. 이성을 철저히 무시, 본능을 따랐다. 단지 확인하는 것뿐이라며 자위한 체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날이 춥다. 설상가상 눈이 내린다. 방 안에 두고 온 홍차의 향이 옷에 배어 움직일 때마다 코를 찌른다. 택시기사는 늘 그렇듯이 저녁의 손님을 받는다. 질겅거리는 싸구려 껌 씹는 소리가 들린다. 룸미러를 통해 나를 살짝 바라본다. 불안한 기색이 다분한 나를 보며 인상을 찡그린다.


“여기, 이 주소로!”


귀찮은 듯이 액셀을 밟아 속도를 낸다. 거리는 멀지 않다. 자꾸 첫 번째 그녀가 떠올랐다. 아닐 거야. 속으로 자꾸 되묻는다. 아니겠지?


택시가 출발한지 10분쯤 되었을까. 거리는 내리는 눈 때문인지 차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멀리서 보이는 경찰차 하는 정도, 잠깐… 경찰차?


“저기!! 저기로!”


급하기  멈추자마자 돈을 던지곤 물을 벌컥 열어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향했다. 달려가는 곳의 바닥은 사람들로 인해 녹은 눈과 신발 자국들로 까맣게 변해있었다. 이미 도착한 경찰들은 노란색 줄로 사람들의 출입을 막고 있었다.


인파를 헤치며 들어가 멀리서 건물을 바라보았다. 빨간 벽돌들로 단조롭게 올라간 낡은 아파트, 그 앞에 붙어있는 주소를 확인한다. K의 아파트다.


“여기! 거기 경찰관님! 무슨 일입니까! 혹시 여기 살던 K 양에게  무슨 일 생긴 건가요? 저기요!”

“…”

“제발! 제가 그녀의  상담가입니다! 경찰관님!”

“신분증”


딱딱한 목소리의 짙은 눈썹을 가진 경찰관이 내게 짧게 답했다. 떨리는 손으로 코트 안 주머니 속 지갑을 꺼내어 그에게 보여준 뒤에야 아파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녀의 방 문 앞에서 난 굳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바쁘게 움직이는 경찰들 가운데에 그녀는 누워있었다.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눈물로 뒤덮여 있었다.


“밑의 경찰관에게  무전받았습니다. K 양의 상담가 맞습니까?”

“…네.”

“보시다시피 그녀는 죽었습니다.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검은색 깔끔한 양복을 입은 형사는 쓰고 있는 페도라를 살짝 위아래로 들었다 내리며 내게 말을 건넸다.


“어떻게 된 건가요… 분명 그녀는 웃는 얼굴로…”


형사는 복도 끝에서 흐느끼는 젊은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K의 남자친구라 하더군요, 정확하게는 전 남자친구죠. 그의 말로는 그녀에게 용서를 빌러 집으로 왔다고 합니다. 현장의 정황상 그녀가 문을 열어주었고 그 이후에… 이렇게 된 것이죠.”

“……”


순간 K에게 내가  신신당부했던 오후의 일들이 떠올랐다.


‘감정 기복에 주의…’


그녀의 전 남자친구와 형사 뒤쪽으로 싸늘히 누워있는 K를 번갈아 바라보며 모든 상황이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 첫 번째 환자 또한 그녀가 사랑했었던 누군가를 보았을 것이다.


“크흑… 흑……”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온다. 형사는 나를 보더니 어깨를 감싸 아파트를 나갈 수 있게 도와주었다. 바깥은 여전히 눈이 내린다. 세차게 내리는 하늘이 흐릿하다. 마음이 얼어붙은 듯 시큰하다. 숨을 들이쉰다. 그녀들을 머릿속에 스쳐간다.


차갑게 식은 손을 들어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눈물을 닦아낸다. 어쩌면 그녀들은 행복했지 않을까 싶다. 첫 번째 나의 환자의 웃는 얼굴,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감정이 떠오른다. K도 비슷했으리라. 그녀를 찾아온 전 남자친구의 모습, 그 모습에 행복감이 차올랐을 것이다.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죄책감에 몸이 사그라든다. 그녀들의 행복한 눈물은 가치가 있었던 것일까? 알 수 없다. 그저 날 옥죄는 감정에 복받친다.


목이 메어 택시를 부른다. 어쩌면 나에게도 울음 약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모기와 하루살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