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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상 Feb 21. 2016

식사 시간

누군가의 저녁

일요일 6시, 365번 도로와 57번 도로가 만나는 그곳의 오른쪽 구석에 조그맣게 위치한 가게는 일주일에 단 하루 문을 여는 곳이다. 옆으로 부드럽게 열리는 문은 동양의 그것을 떠올리게 했고, 벽돌로 쌓아 올려진 단단한 벽은 서양 분위기도 나는 것 같았다. 옅은 주황빛의 불빛이 문 틈 사이로 새어나왔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따뜻한 열기가 안쪽에서 느껴졌다. 안쪽 주방에서는 바쁘게 돌아가는 듯 온갖 식기류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 이 가게가 문을 열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했다.


딱 보기에도 평범할 것 같이 생기지 않은 곳이다. 풍기는 분위기가 기분을 잔뜩 고무시켰다. 평범한 주말 저녁이 이렇게 설렐 줄이야. 잔뜩 상기되어 두근거리는 마음이 발걸음으로 이어졌다.


식당 영업을 시작하자마자 와서 그런가 주위 공간의 썰렁함이 어색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자리에 앉아 오늘의 식사를 생각하자 금세 입꼬리가 광대까지 올라가 조금이라도 툭 쳐버리면 미친놈처럼 실실거릴게 분명했다.


시간을 먹을 때면 기분이 늘 좋다. 오묘한 맛의 경계가 선명하게 느껴지는 가장 고위 등급의 시간은 별미 중에 별미였다. 특히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시간 중에 하나인 '3년 산 아기의 시간’은 혀끝을 부드럽게 감싸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버리는 것이 우주의 그 어떤 음식보다 맛있다고 자신 있게 외칠 수 있을 정도이다.


하나 그렇다 해서 다른 시간이 맛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각각의 시간이 가진 맛의 경계와 소스 그리고 식감 등은 그 조합이  가져다주는 개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식사를 할 수 있는 오늘이니, 어찌 기분이 안 좋을 수 있겠는가.


오늘의 시간은 '20대 여성의 인고의 시간’이다. 시간에는 몇 가지 주제가 있곤 한데 보통 인간이 자주 잊어버리는 종류의 감정이나 기억 등이 대부분이다.  그중 인간 나이로 20대가 가지는 ‘인고의 시간’은 그 맛과 혀에 닿는 느낌, 향이 아주 독특해 특정 마니아들만 찾는 시간 종류 중의 하나이다.


검은색 푸딩같이 출렁이는 시간은 빛조차 흡수시켜 마치 우주의 블랙홀처럼 보였다. 식탁 위의 촛불에 은제 포크와 나이프가 놓여있다. 물자국 조차 없이 깔끔. 분명 잘 닦여진 게 분명했다. 조심스레 손을 포크 위로 가져간다. 머리 속 상상은 이미 입 안에 넣고 맛을 음미하고 있다.


집중은 집중을 낳아 시선은 시간을 손은 반사적으로 접시 위로 향했고 왼손으로 잡은 포크를 살짝 찔러넣는다. 부드럽게 들어가는 감촉이 손가락 끝을 향해 뇌 속으로 전달된다. 짜릿한 감각에 이어 오른손 나이프를 위에서 아래로 잘라낸다.


조그만 접시에 적당한 양을 덜어낸다. -끼 아악- 어디선가 비명소리가 들린 듯했지만 그것은 가볍게 무시한다.


드디어 포크는 입 안에 들어간다. 살짝 덜 찔린 시간은 조금 흘러내릴 뻔하다 급히 손을 놀린다. 맨 처음 놓인 시간을 보며 시각적 만족, 그리고 향을 맡으며 후각을 느껴본다. 마지막으론 혀의 하나하나 세포들이 시간을 감싸며 혀를 즐겁게 춤추게 한다.


인간 여성이 대부분 가지고 있는 특징들이 느껴진다. 다양한 감각들과 감정들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간다. 인간들이 표현하는 맛으로 따지자면 아마도 쓴맛이랄까.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단맛이 거의 없는 다크 초콜릿이라고 해야 되나… 어렵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뒤섞이며 만들어지는 앙상블. 짧은 순간이 지나갔다. 지그시 감았던 눈을 떠 다시금 시간을 집어 올린다. 검게 물들어 푸딩같이 출렁거리는 시간이 사랑스럽다. 이렇게 일요일의 식사 시간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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