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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상 Mar 20. 2016

뉴트리아

그 너머에

빌리의 세상은 언제나 축축했다. 그렇다. 말 그대로 축축한 것이다. 그의 삶은, 첫 번째 헤엄치기와 두 번째 식사하기로 압축하여 말할 수 있었다. 이 두 가지가 모두 물이 있는 곳에서 이루어졌으니 5년의 삶이 축축했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빌리의 부모님은 자신을 먼저 생각해주는 전형적인 부모였다. 특이하게 형제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일까. 다른 가족과는 다르게 빌리는 늘 혼자였다. 그 때문에서 인지 다른 뉴트리아가 멍하게 풀을 뜯고 있을 때 빌리는 종종 이 축축한 공간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고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한 고민도 오래 하지 못했다. 인간 사냥꾼들이 나타나 자신의 무리 중 몇몇이 죽어가거나 잡혀갈 때면 '내가 아니라 다행이야, 이런 생활도 나쁘지 않아.' 라며 자위하기 바빴다.


그렇게 빌리는 어둡고 축축한 이곳을 떠나 저 먼 곳의 어떠한 곳을 상상하는 것을 그만두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 어둡고 서늘한 이 공간과는 또 다른 어둡고 끈적거리는 느낌이었다.


획일화란 무서운 것이었다. 과거의 자신의 고민은 손에 잡힐 듯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득히 먼 곳에 위치해 그런 고민을 했던 자신을 더 뒤돌아 보지 않았다.


"다른 곳으로 가자."


멍하니 풀떼기를 뜯어먹고 있던 빌리에게 샘슨이 얘기했다.


샘슨은 빌리에게 유일한 친구였는데 그도 그럴 것이 꼬리가 다른 뉴트리아와는 다르게 심각하게 짧았기 때문이다. 뉴트리아들에게 꼬리는 자존심이었다. 더 긴 뉴트리아가 멋있고 강인하고 믿을만한 존재로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뉴트리아 세계에서 꼬리가 제일 짧은 샘슨이었다. 그런 모습에 형제가 아무도 없었던 빌리는 더욱 샘슨과 친해질 수 있었다. 어떠한 동질감이랄까.


"요즘 풀들이 맛이없네."

"더 위쪽으로 가면 괜찮은 장소가 있다고 들었어."


짧은 꼬리가 푹 내려가 시무룩하게 말하는 샘슨에게 빌리는 어디선가 들었던 얘기를 꺼냈다.


"그래? 가볼까? 아직 시간도 충분한 거 같으니 한 번 가보자!"


단단한 앞니를 위아래로 왔다 갔다 움직이며 쉴 새 없이 말하는 샘슨은 신이난 마음에 물갈퀴를 빠르게 놀렸다.


해가 머리 위에 떴을 때 즈음 빌리와 샘슨은 그들의 본능이 이끄는 대로 움직인 결과 만족할만한 장소를 찾아내었다. 수풀이 길고 곧게 뻗어있었고 이러한 것들이 군락을 이루며 지역을 덮었다.


샘슨은 도착하자마자 자신의 크고 동그란 눈을 크게 뜨며 코를 벌렁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매일 보던 머리 꺾인 수풀들이 아니었다는 게 주 이유였고, 드디어 배를 채울 수 있다는 행복감에서 이기도 했다.


"와하하하~"


샘슨은 눈 앞의 모든 것을 다 먹어버리겠다는 듯이 미친 듯이 뛰어갔다.


자신의 친구인 샘슨이 수풀을 보았을 때 빌리는 다른 것을 보았다. 신선하게 자라 생명감을 돋보이는 수풀 군락 뒤로 자신이 있던 공간과는 다른 어떤 것이 보였다. 언뜻 보이는 물은 햇빛을 받아 금가루가 흘러가는 듯했고,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다른 동물들도 그곳에 있는 듯했다.


빌리는 자신이 서있는 곳 주변을 돌아봤다. 신선하게만 보였던 풀들은 고개를 숙여 생기를 잃은 것처럼 보였다. 신나게 뜯어먹는 샘슨의 모습이 한심해 보였다.


양털 모양의 솜털과 길고 거친 털로 뒤덮여 게걸스럽게 풀을 탐하는 저 모습에 빌리는 역겨움이 밀려왔다. 마치 자신도 저랬을까라는 생각에 속이 울렁거렸다. 과거의 자신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라져버린 걸까.


밀려오는 회의감도 잠시였다. 빌리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샘슨, 잘 있어."

"어어... 으응......"


샘슨은 짧은 꼬리를 흔들며 빌리를 돌아보지도 않은 체 그저 먹기만 했다. 빌리도 굳이 다시 부르지 않았다. 자신의 눈 앞에 있던 모든 아름다움에 대해 떨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구둑을 넘어 저 너머를 향했다. 첫째 발가락과 넷째 발가락 사이의 물갈퀴가 불편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오랫동안 고민해왔던 과거의 모든 것들을 넘어, 그 소모해왔던 많은 시간들, 획일화에 찌들었던 나날들을 탈피한 순간이었다.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오랜만의 떨림이 반가웠다.


"반가워!"


지금까지 소리쳤던 것보다 더 큰 목소리로 새로운 세상에 소리쳤다. 빌리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근처의 새들이 날아올랐다.


-철컹-


녹슨 쇠가 부딪혀 나는 소리가 났다. 빠르게 달리던 빌리는 그 소리에 깜짝 놀랐다. 어떤 것인지 생각할 틈도 없이 자신의 눈 앞에 드리운 회색의 쇠창살은 그의 앞길을 막았다.


달리는 속도를 주체하지 못해 머리를 부딪혀 넘어졌다. 그 순간까지도 빌리는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어이! 여기야!"


피 냄새가 진동했다. 그리고 인간의 냄새도 났다.


"이 자식 엄청 큰데? 이 망할 것, 네놈은 독수리 먹잇감으로 딱이구나."


빌리의 눈 앞이 흐려져갔다. 자신이 꿈꾸던 세상은 고작 한 발자국 남았을 뿐인데, 단지 한 걸음만 남았는데 왜 이리도 앞이 안 보이는지 알 수가 없었다.


눈시울이 붉어져갔다. 머리에서 흘러나오는 피 때문일까? 아니면 눈물이 흘러나오는 것일까?


그렇게 빌리의 몸이 축축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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