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나에게 치매가?
농막이 완성되고 가을이를 입양한 나는 대체로 2~3주는 시골 농막에서, 1~2주는 서울 아파트에서 지내는 유사 자연인의 삶을 살았다. 가을이로서도 나를 따라 아주 헷갈리는 견생을 살고 있었다. 농막에서는 줄에 묶인 채 시고르자브종의 삶을 살아야 했고, 서울 아파트에서는 우아하게 미용하고 마루와 소파에서 뒹굴거리는 품종견의 삶을 살았다.
시골 농막 흙바닥에서 줄에 묶인 채 시골개의 삶을 살 때의 배변 문제는 운이 좋으면 밥 먹고 난 후에 산책하면서 배변 활동을 해서 큰 문제없이 피해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단 한 번의 실수만으로도 나를 육아 스트레스에 몰아넣는데 충분했다. 가을이의 배변 훈련을 하려면 가을이의 신체 리듬을 이해해야 했기에 밥 먹은 시간과 식사량, 똥 싼 시간과 똥의 색깔, 단단한 정도 등을 기록하는 일종의 육아(?) 일지를 썼다. 가을이의 배변 문제에서 촉발된 나의 육아 스트레스는 집중력 저하의 형태로 나타나서 이것저것을 잃어버리는 형태로 문제를 일으켰다. 6평짜리 좁은 농막 안에서도 나는 늘 뭔가를 잃어버리고 다시 찾기를 반복했다.
추석을 서울에서 쇠고 시골 농막으로 내려와서 가을이의 중성화 수술을 했다. 의사 선생님 말씀이 발정기의 수캐는 1km 떨어진 곳에 있는 암캐의 냄새에 이끌려서 정신없이 집을 나간 후 돌아오는 길을 찾지 못하고 유기견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가출 방지 차원에서 중성화 수술을 했다. 수술 후 하루 한번 드레싱과 두 차례 약을 먹이는 일은 내 몫이었다.
가을이의 중성화 수술 실밥을 빼던 날이었다. 읍내를 나간 김에 농수관 부품을 사가지고 황간에서 사발이로 갈아타고 농막에 돌아왔다. 당시 나는 황간 공영주차장에 사공이(2012년식 현대 i40 웨곤)를 세워두고 농막올 때는 사발이를 갈아탔다. 내가 없을 때도 인터넷을 통해 텃밭에 자동으로 물을 줄 수 있도록 스프링클러를 설치했다. 설치를 마치고 농막에 들어와서 핸드폰으로 시험을 해 보려는데 핸드폰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아까 황간에 세워둔 차에 두고 안 가져왔나?’ 싶어서 사발이를 타고 7km를 나가서 핸드폰 거치대를 확인했지만 거기에 없었다. 돌아와서 다시 한번 농막 안을 이 잡듯이 뒤져봤지만 핸드폰은 보이지 않았다. PC에 깔려있는 인터넷 전화 Skype가 생각나서 PC에서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호출신호가 계속 가는데도 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헐~ 농막 안에 없다는 얘긴데.. 도대체 어디다 흘렸을까..
농막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어디선가 멀리서 핸드폰 벨소리가 들렸다. 벨소리를 따라가 보니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느라고 농수관 연결 작업을 했던 자리에 핸드폰이 떡 하니 놓여있었다. 잃어버린 핸드폰을 찾아 사발이로 7km를 왕복하고, 1시간 넘게 이곳저곳을 뒤지며 마음 졸였던 것을 생각하니 몸에서 기가 쑥~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다음 날에는 가을이와 산으로 산책을 가서 휘슬을 불어서 돌아오게 하는 콜백 훈련을 했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농막 바로 뒤편 언덕 위에서 휘슬을 불어 가을이를 부르고 간식을 듬뿍 줬다. 농막에 돌아와서 휘슬을 잘 보관하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휘슬이 없었다. 혹시 아까 휘슬을 불고 언덕을 내려오다가 손에서 흘렸나 싶어서 땅바닥을 샅샅이 살피면서 언덕을 수차례 오르내리며 찾았지만 휘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끝내 휘슬은 찾지 못했다.
가을이와 함께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시골 고모님 댁 마당에서 딴 단감을 고모님께 갖다 드리려고 차 열쇠를 찾는데 이번에는 차 열쇠가 없다. '핸드폰은 왼쪽, 차 열쇠는 오른쪽, 지갑은 뒷주머니' 이게 내 루틴인데, 오른쪽 주머니에 차 열쇠가 없으니 또 멘붕이다. 서울에 와서 우리 집과 어머니댁을 왔다 갔다 했으니, 두 집을 왔다 갔다 하며 차 열쇠를 찾아 헤매었다. 결국 속을 끓일 대로 다 끓인 후 저녁나절이 다 돼서야 옷가방을 뒤집어서 탈탈 털었더니 그 속에서 차 열쇠가 툭 하고 떨어졌다. 그제야 차에서 내리면서 양손에 짐을 들고 가을이 리드줄을 잡느라 열쇠를 주머니에 넣지 못하고 가방에 넣었던 기억이 났다.
1주일 사이에 핸드폰, 휘슬에 이어서 차 열쇠까지 속을 끓이고 나니, 이 시점에서 완전히 꼭지가 돌았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정신과병원에 가서 치매 검사를 받아봐야겠다 싶었다. 우리 아들이 정신과 의사인데 차마 아들한테 내 치매 검사를 해달라고 할 수가 없었다. 가족들 모르게 병원에 가려고 네이버 지도에서 동네 정신과 서너 군데를 찾아서 전화를 해 봤지만, 진료를 보려면 보통이 한 달, 짧은 곳이 2주일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아들에게 전화를 하고 진료가 끝난 시간에 아들 병원에 찾아갔다. 간이인지기능검사를 한 결과 30점 만점에 30점이다. 특별한 이상이 없단다. 하지만 아들은 이왕 마음을 먹었으니 자기가 의뢰서를 써 줄 테니 큰 병원으로 가서 이런저런 검사를 해보라고 한다.
결국 나는 2022년 말 서울아산병원에서 신경심리검사, 유전자 검사, PET-CT, MRI, MRA 등 등 각종 치매 관련 검사를 받았고, 1년 뒤 2023년 말에 한 차례 더 신경심리검사를 받아 이전 결과와 대조하기까지 했다. 결론적으로 다행히 아직 치매는 아닌가 보다. 각종 검사 결과 이상이 없다는 성적표를 들고 의기양양하게 친구에게 자랑을 했더니, 이 친구가 하는 말이...
"허.. 큰일이네.. 치매 증상은 보이는데 병원에서 원인을 모르겠다는 말이네!"
그 친구는 내가 가을이를 데려온 것을 보고 '독거노인이 정서적 안정을 위해서 반려견을 입양했다.'라고 비아냥거리며 가을이와 나의 이야기를 브런치에 글도 썼다. 혹시 개나 고양이 키우세요? (brunch.co.kr) 나는 속으로 말했다.
'정서적 안정은 개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