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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타는 여여사 Nov 23. 2020

걱정 인형(worry dolls)

일상 이야기

과테말라에서 내려오는 전설 중에서 걱정 인형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두려움이나 불안감을 느낀 아이가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면 머리맡이나 베개 밑에 걱정 인형을 둬서 아이가 잠든 동안 인형이 아이의 걱정을 가져가게 한단다. 그러면 아이가 편하게 잠을 잘 수 있다고 한다. 하긴, 나도 어렸을 때 불이 꺼진 방에 누워 있으면 천장에서 뭔가 툭 떨어질 것 같고, 옷장에서 뭔가 확 튀어나올 것 같아서 울타리를 넘는 양을 수십 번 셌던 기억이 난다.    

  

걱정 인형의 몸은 솜이나 흙으로 만들고 그 위에 자투리 천이나 털실로 옷을 만들어 입힌다. 나무로 만든 걱정 인형까지 있는 것으로 보아 딱히 정해진 틀은 없어 보인다.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하나의 덩어리였는데 작은 인형을 만들어서 걱정 인형이라고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의미를 찾은 게 아닐까.    

   

크기는 작은 편이고, 보통 한 개만 만들지 않고 6개 정도 만들어서 걱정을 골고루 나눠준단다. 조그마한 인형에게 마구잡이로 걱정을 던져 주지 않도록 한 번 걱정을 넘긴 인형에게는 회복할 시간을 주는 의미다. 사람도 걱정이 많으면 머리가 터질 것처럼 아픈데 작은 인형은 오죽할까.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 세심하게 배려를 한 모습이 참 지혜롭다.        


인형에게 걱정을 넘기고 난 다음날 아침에는 인형을 쓰다듬어 주는 게 좋다. 인형도 불안에 떨었을지 모르니까 내 걱정을 덜어줘서, 밤새 나를 지켜줘서 고맙다는 의미로 말이다. 미신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안 하면 그만이고, 걱정 인형 덕분에 잠을 잘 잤다면 정신 건강에는 도움이 된 거니까.  

    

요즘 같은 시기에는 누구에게나 걱정 인형을 선물해 줘야 할 듯싶다. 조카들에게도, 동생한테도, 엄마한테도, 물론 나한테도 말이다. 두려움과 불안감으로 잠 못 드는 사람이 비단 아이만은 아니잖은가. 대놓고 말을 못 해서 그렇지 어른인 나도 온갖 걱정으로 밤에 잘 때는 무섭다. 어렸을 때는 단순한 걱정거리가 대부분이었다면 어른이 되고 나서는 복잡하고 해결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걱정거리가 한 보따리다.  

    

나이가 들면 걱정도 마치 숫자 나이만큼 불어나는 듯하다. 이런 기세라면 머리맡이 아니라 방안 전체를 걱정 인형으로 채울 수도 있겠다. 크리스마스 장식처럼 걱정 인형 가랜드를 만들어서 집안 곳곳에 비치해 두면 걱정이 사라져서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으려나. 필수 아이템으로 걱정 인형을 추천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걱정 인형이 두려움과 불안감을 모두 다 가져간다면 고맙겠지만, 걱정거리를 해결해야 할 사람은 정작 나라는 사실을 안다. 그럼에도 작은 인형에게 의지하고 싶은 건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이겠지. 어디에라도 의지하고 싶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 테니 걱정 인형을 한 보따리 사더라도 타박하지 말고 응원해 주자. 대신 아침에는 걱정 인형을 쓰담쓰담 해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사람이라면 그 정도 양심을 갖고 살아야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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