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 타는 여여사 Nov 28. 2020

김장하는 날

일상 이야기

11월 중순 이후부터 지인들과 대화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김장이다. 남부 지역은 12월 초중순부터 김장을 시작하는데, 서울이나 경기도 지역은 11월 중순부터 김장을 시작하는 듯하다. 우리나라가 좁다고 하지만 엄연히 위도별 온도 차가 나타나니 김장을 시작하는 시기도 지역별로 다른 것이다.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는 11월 중순부터 12월 중순까지 우리나라 곳곳은 짠맛과 매운맛으로 물든다.   

     

어떤 해는 배춧값이 폭등해서 김장을 포기하는 집도 생기고, 어떤 해는 배춧값이 폭락해서 배추 농가에서 트랙터로 배추밭을 갈아엎었다는 뉴스가 나온다. 태풍으로 피해를 입은 해는 고춧가루 값이 폭등해서 4인 가족이 먹을 김장을 하려면 돈이 얼마가 든다는 세세한 뉴스까지 나올 때도 있다. 채솟값 역시 뉴스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김칫소를 만들 때 무, 당근, 파 등을 대부분 넣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절임배추를 쓰니 좀 낫지 않느냐고 말했다가 지인에게서 세상 곱게 컸다는 핀잔을 들은 적이 있다. 해보지 않았으면 입을 다물어야 하는데 괜히 조잘거렸다. 어렸을 때 엄마가 김장하는 것을 도운 이후로 김장을 해본 적이 없기도 하다. 당시 우리 집은 8명이 먹을 김치를 버무려야 해서, 엄마는 배추를 백 포기 이상 사셨던 듯하다. 부엌과 목욕탕은 소금에 절인 배추로 가득 찼고, 삼촌들과 나눠서 절인 배추를 물에 씻어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담근 김치로 1년을 먹어야 했으니 엄마가 지시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짜증 섞인 불호령이 떨어지는 건 당연했지.  


김장하는 날. 이번 주말에는 김장을 해야 해서 집에 있어야 한다거나 시댁이나 친정을 가야 한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달력에 표시되어 있는 명절은 아니지만 엄마들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명절과 거의 동급인 날이다. 이날은 웬만하면 집에 있는 게 남은 연말을 편하게 보내는 일이기도 하다. 김장하느라 주말을 보내고 온 월요일에는 허리가 아프고 등짝이 쑤시고 어깨가 결려서 힘들다는 지인들의 호소가 이어진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있다.      


『김장했는데, 한 포기 줄까?』      


사람들 마음속에는 기본적으로 나눔의 DNA가 박혀 있어 보인다. 등짝 빠지게 김치를 담그고 맛이 있든 없든 주변에 나눠주려는 마음이 생기니 말이다. 그래서 나 같은 독거인들은 종류별로 김치를 얻을 때가 있다. 총각김치, 갓김치, 배추김치 등 일주일은 거뜬히 먹을 양을 받아 들면 미안하면서 고마움을 느낀다. 그 수고로움이 어떤지 알기 때문이리라.  

    

모임에서 만난 지인 역시 오늘 김장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내일은 당당하게 파업이 예정되어 있단다. 가족이 같이 한다고 하지만 진두지휘는 여자 몫이니 파업을 해도 충분하지. 내일은 우아하게 커피 한 잔 마시거나 미용실에 가서 산뜻하게 머리를 해도 좋을 듯하다.      


엄마는 오늘 김치를 담근다고 했다. 부산에 내려간다고 했더니 나한테 줄 생김치를 만드는 모양이다. 가족이 단출해진 이후로 내가 내려가는 날에 맞춰 엄마가 김장을 할 때가 있다. 자식을 만나는 날이 김장하는 날인 셈이다. 책장 사이로 떡 하니 버티고 있는 김치냉장고가 드디어 제 기능을 발휘하는 때이기도 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거의 다 왔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